지난 토요일 오후 San Francisco에 사는 셋째(작은 딸)가 오랜 만에 집을 찾았다.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던 중, 딸이 아빠 요즘 Netflix에서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보냐고 물었다. 그래서 최근에 봤던 것들 중에 이런 게 있다고 얘기했다. 제목은 하나도 기억 못하고 오직 드라마 스토리만 대충 기억나는 대로 설명해주었다.
딸이 혹시 'Better Call Saul'을 봤냐고 물었다. 봤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전에 아빠가 즐겨 봤던 'Breaking Bad'에 변호사로 출연했던 Bob Odenkirtk가 나오는 작품으로 아빠가 좋아 할 거라고 했다. 자기는 Breaking Bad도, Better Call Saul도 좋아하는 유형의 영화가 아니라고 한 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식구들이 모두 잠자리로 간 뒤에 혼자 남아 Better Call Saul을 봤다. 예전에 본 드라마였다. Breaking Bad를 보고 난 후에 전편을 다 보았었다. 그런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보면서 드라마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간혹 단편적으로 기억이 날 뿐이었다. 다시 보기로 했다.
토요일 밤에 시작해서 수요일 저녁에 3부 시리즈, 총 30회를 완전히 끝냈다. 먼저 본 것이 확실하지만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았다.
Chuck이 의도적으로 발로 차서 떨어뜨린 개스등이 방화로 이어져 화염에 휩싸이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 드라마에 대해서 몇 자 적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또 그 작품성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도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 단지 드라마 속의 등장하는 형제에 관해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드라마는 총 3부작으로 1부마다 10회를 배정했으니 총 30회이다. 1회가 짧은 것은 42분, 긴 것은56분으로 짜여 있으며 전체를 보려면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26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크게 두 줄기의 이야기를 큰 흐름으로 한다. 두 줄기는 각각의 흐름을 이어가면서 만나기도 하는 드라마이다. 하나는 변호사 형제의 이야기로 끌고 나가고, 다른 하나는 마약 카르텔에 관한 이야기가 엮어진다.
우선 형제는 형과 아우가 나이차가 제법 나고 성격이나 성장과정이 전혀 다른 점을 부각시킨다. 형은 커다란 변호사 그룹의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변호사이고 동생은 어릴 때부터 말썽을 많이 부리고 문제를 많이 일으키던 트러불 메이커였다.
형은 공부만 하고 사회생활도 빤듯하게 해서 변호사가 된 뒤에도 나름대로 명성을 얻고 실력이 있는 변호사로 확고하게 자리잡았고, 동생은 사기도 치고, 크고 작은 문제에 관련되어 형 속을 어지간히 썩이는 생활을 했다. 그러나 나름대로 온라인으로 법률 공부를 해서 변호사 자격증을 받았다. 그리하여 큰 기대를 갖고 형이 소속된 벌률 그룹에 입사하려고 하나 형의 반대로 그는 들어가지 못한다.
형은 건강상으로 아주 큰 문제가 있다. 모든 전자파, 전기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호릅곤란을 겪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한다. 때문에 집안 전체의 전기를 차단하고 그를 만나기 위해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셀폰, 시계, 밧테리가 장착된 모든 것들을 우편함에 넣어 두고 출입이 가능하다.
각가지 일들이 벌어진다. 인간의 심리를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 형이 동생에 대해서 갖고 있는 우려, 불신 등은 그의 경험을 통해 습득되었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동생에 대한 질투가 크게 작용한다. 우선 동생은 언변이 좋고 친화력을 통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쉽게 만들어 가며 사는 것에 비해 형은 권위와 명예 등을 중히 여기며 지도자로 자처하며 살아가기에 동생이 늘 못마땅하다.
동생에 대한 이런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머니의 임종시에 보여준 어머니의 태도에 기인한다.동생과 둘이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던 병실에서 동생은 배가 고프다며 무언가 먹을 것을 사러 나간다. 바로 그때 임종을 하는 순간, 어머니는 막내 아들의 이름만 되풀이 해 부른다. 어머니 저는 지미가 아니고 척이라고 얘기해도 어머니는 지미만을 찾는다. 늘 말썽이나 부리고 부모 속이나 썩이던 자식을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어머니는 걱정이 되었을 거다. 곁에 있는 자신은 안중에도 없고 동생만을 찾는 어머니를 보면서 형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의 묘한 표정에서 읽을 수 있지만 또 이어지는 그의 행동으로 강하게 그는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다. 의사가 물었다. 혹시 연락할 사람이 있냐고 없다고 했다. 그럼 혹시 이 병원 안에 다른 식구가 있느냐 묻는다. 만일 병원 안에 있다면 구내 방송을 통해 빨리 오게 할 수 있다고. 그러나 단호하게 말한다. 아무도 없다고.
결국 어머니는 동생의 이름만을 부르다가 숨을 거둔다. 음식을 사서 들고온 동생이 형에게 물었다. 어머니가 아무 말씀 없었냐고. 그 대답은 No.
한 번의 심리적인 상처가 평생을 지배한다는 얘기인데 정말 조심해야 한다. 형제자매 부모자식 간에도 무심코 하는 말 한 마디가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이글을 쓰면서 문득 우리 형제들이 떠 올랐다. 나는 3남 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나이 차이는 모두 3살씩 차이가 난다. 부모님이 계획적으로 출산을 하신 결과인지 어찌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렇다. 내 바로 밑에는 여동생이다.
어머니가 1999년 11월에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급히 나가 장례식을 치루고 4남매가 부모님이 사시던 아파트에 돌아와 가구나 어머니 유품 등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중에 몇 가지 기념이 될 만한 것이나 값나가는 것들을 여동생이 형제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그때 막내 동생이 어머니 침대 밑에서 무언가를 꺼내 한참을 읽고 있었다.
급히 미국에서 달려왔고 며칠 동안 장례식장에서 밤샘을 한 탓인지 몹시 고단한 나는 한잠 자고 일어났다. 그때 막내 동생이 어머니 침대 밑에서 나왔다면서 노트를 한 권 주었다.
동생이 읽고 있었던 바로 그 노트였다. 어머니가 당신의 심경을 토로하는 글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큰 아들인 나에 대한 걱정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큰 아들인 내 이름이 수십 번도 더 나왔다. 잘 돼야 하는데 미국에서 너무 고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으며 그런 일을 하니-당시 나는 가드닝 비즈니스와 비디오 가게, 학원 등을 운영하며 아침부터 밤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고생스럽겠는가 하는 것과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기대에 찬 글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동생이 이글을 읽으며 어떤 심정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막내 동생이 그렇게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을 걸로 여겨진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죽기 전까지 큰 형만을 걱정하며 보냈으니 좋은 마음이 되지는 않았으리라. 이미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속이 편치 않다. 동생들에게 더 잘해주라는 어머니의 유훈이라고 생각한다.
Better Call Saul은 8월 6일부터 에피소드 1을 방영하면서 시리즈 4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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