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149

암,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다

20여 년 전부터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고 지내는 후배 부부와 만나 점심을 함께했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후배이기에 올해 무슨 좋은 계획이 있는가 물었다. 후배는 잠시 주춤하더니 올해는 예년처럼 여행을 많이 다니지는 못할 것 같다며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했다. 현재 암세포가 발견된 상태라면서 자세한 암의 정도는 며칠 뒤에 하기로 한 정밀 검사 결과를 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후배는 주로 남성들에게 발병하는 암으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나의 선친께서도 같은 암에 걸려 수술을 받고 완치 판정을 받았고, 그 후로도 십수 년을 더 사셨기에 얼마든지 완쾌가 가능하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집으로 돌아와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가 검사한다는 날 이후로 혹시 연락을 하지 않을까 기다렸으나 그는..

기본 2024.01.26

혁신위원회

12월에 들어선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순이다. 백화점들의 장식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한 지 오래 되었고 라디오에서도 크리스마스 캐롤이 하루 종일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연말연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한국 정치 이야기가 꽃을 피우고 있다. 필자와 자주 만나는 어르신들은 정치 이야기를 아예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들리는 소리를 어찌 할 수는 없다. 한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맥도날드나 파네라 등의 다른 테이블에서 들리는 소리를 제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신문이나 라디오, TV 등을 비롯해 유투버들이 하는 얘기를 옮기고 있다. 서로 언성을 높이며 뜨거운 토론을 벌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목소리 큰 한 사람이 얘기하고 다른 사람들은 입 다물고 듣는 ..

기본 2023.12.06

그럴 리가 없다

요즈음 대한민국은 지방 한 도시시장을 거쳐, 도지사를 지낸 후에 대통령에 출마해 0.7%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낙선한 분의 재판으로 시끄럽다. 그는 대선에 실패한 뒤에 국회의원이 되었고, 거대 야당 대표가 되었다. 그가 재판에 회부된 것은 시장, 도지사 재임 중에 있었던 여러가지 불법 혐의 때문이다. 그 많은 혐의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입에 올리고 싶지는 않다. 오늘은 그 중 가장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는, 그래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그 분이 도지사로 재임할 때는 도지사 공관 행사 등 명목으로 대량의 샌드위치와 과일 등을 종류별로 구입한 뒤 법인카드로 결재한 후 도지사 자택으로 정기적으로 배달시켰다고 한다. 한 번에 적게는 10인분, 많게는 30인분 정도가 배달됐다고 ..

기본 2023.10.27

단식투쟁

요즈음 세상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극명하게 편을 나눠 무리를 지어 다니며 서로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하며 다툰다. 오직 적 아니면 내 편이요, 내 편 아니면 적이다. 직장에서도, 친목 모임에서도, 심지어 교회에서도 그렇다. 이런 세상이다 보니 정말 조심해야 한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집단 따돌림 당하기 십상이고 적으로 간주되어 집중 공격을 받기도 한다. 박근혜 씨가 대통령으로 출마한다고 할 때 '박근혜 씨는 대통령 후보 자격이 없다'고 칼럼에 썼다가 집중 포화를 받은 적이 있다. 전화로 심하게 나무라는 분도 있었고, 초등학교 동창생 한 명은 어떻게 네가 그럴 수가 있냐고 몹시 실망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타운뉴스로 찾아와서 ‘당신은 좌파냐’고 신랄하게 퍼붓고 가는 분도 있었다. 그 뒤로 정치나 시..

기본 2023.09.01

랄프 공원에 울려 퍼진 광복절 노래

랄프 공원에 울려 퍼진 광복절 노래 이역만리(異域萬里) 고국을 떠나 살면서 고국과 관련해 감격에 겨워 가슴 뭉클함을 느끼는 순간은 흔치 않다. 지난 8월 15일 광복절 아침, 감동과 감격으로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매일 아침 8시 부에나파크시 Gilbert St.과 Beach Blvd. 사이 Rosecrans Ave. 선상에 있는 랄프 레저널 파크(Ralph B. Clark Regional Park)에서 60~70여 명이 모여 함께 체조를 한다. 평균연령이 80대 초반 정도 되니까 90을 넘긴 분들이 몇 분 계시고 80대 후반을 달리는 분들도 적지 않다. 한국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외국인들도 10여 분 있다. 그 체조팀에서 광복절이던 지난 15일 체조를 마치고 광복절 기념식을 거행했다. 작년 ..

기본 2023.08.22

새만금 잼버리 유감

새만금 잼버리 유감 지난 9일, 서울의 친지들 몇 분이 백화점, 올림픽 공원, 조계사, 덕수궁, 경복궁 등지에서 외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무리 지어 다니는 사진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8월 1일 시작한 월드 잼버리가 12일 끝나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대원들이 중간에 야영장을 나와 서울 근교로 흩어져서 야영 대신 도시 관광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집행부가 판단을 잘 했다. 35-6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그늘 하나 없는 곳에서 무리하게 야영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훌륭한 결정을 했다. 그리고 야영 생활보다는 도시 관광이 훨씬 더 재미있고 유익하다. 야영이야 어디서 하든 비슷비슷하지 않은가? 단지 다른 나라에서 온 나와 모습이 다른 또래의 대원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재미가 더 있을 뿐이다. ..

기본 2023.08.12

치매

치매(癡呆)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든 이곳에서든 만나는 지인들이 서로 자기에게 치매 증세가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증세라는 것이 건망증 수준인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예를 들면 가스레인지에 음식을 데우기 위해 올려놓았다가 깜빡 잊어 냄비를 새까맣게 태웠다. 가끔 친한 친구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한 말을 자꾸 되풀이 한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까맣게 잊는다. 나 역시 해당되는 사항이 하나 둘이 아니다 보니 대화에 끼어들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치매 검사를 받은 분도 있었다. 필자도 지난해에 주치의가 치매 검사를 하겠다며 다섯 개의 단어를 말하면서 내게 5분후에 물을 테니 암기하라고 했다. 그 첫 머리 글자를 외웠다. ‘자동차, 만년필, 복숭아, 책상, 시계’라고 하는..

기본 2023.07.26

제18차 샤카디타 세계대회

지난 6월 23일 서울에서 제18차 샤카디타 세계대회가 개막되었다. ‘위기의 세상 속에 깨어있기’라는 주제로 27일까지 코엑스와 봉은사에서 계속된다. 모든 논문 발표와 워크샵, 각종 전시 및 문화 공연 등은 코엑스 1, 2, 3층의 크고 작은 미팅 룸과 컨퍼런스 룸 등에서 열리고 아침 명상과 하루 세 끼 공양은 봉은사에서 진행한다. '샤카디타'는 산스크리스트어로 '부처의 딸들'이란 뜻이다. 즉 '샤카디타 세계대회'를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여성불자 세계대회라 할 수 있겠다. 이때 불자라 함은 비구니 스님들과 여성 신도들을 다 통털어 이르는 말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비구니스님과 여성 불자들 3,000여 명이 4박5일 간 올바르게 깨어 있는 방법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체험하고 공감하는 귀한 시간을 갖..

기본 2023.06.23

암을 이겨낸 친구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몇해 전 평생을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친구가 은퇴후에 암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고등학교 6년을 함께 다니면서 같은 반을 한 적도 있었던 친구다. 가깝게 어울려 지낸 적은 없었지만 말없이 얌전하게 앉아있던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기억속에 남아있는 친구였다. 암세포가 침투한 장기의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하고 재활 치료를 받고 있을 때, 마침 고국에 와있던 내게 점심을 대접하겠다며 초대했었다. 친구는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친구는 새차를 구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젊어서부터 오픈카를 타고 싶었다면서 신성일이 즐겨 탔다는 무스탕인지 머스탱인지를 살 것이라고 했다. 나는 다음에 올 때는 그 차를 꼭 태워달라고 부탁했었다. 올해초 친구는..

기본 2023.06.09

아버님

내가 다니는 병원 간호사들은 나를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물론 나만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 병원을 찾는 남자 환자들은 아버님, 여자 환자들은 어머님이라고 부른다. 환자들은 모두 그들의 아버지이고 어머니가 되는 셈이다. 모든 환자들을 극진히 자기 부모님처럼 모시려는 마음의 표현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그냥 이름을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 ㅇㅇㅇ님, 혹은 ㅇㅇㅇ 씨라고 부르면 더 편할 것 같다. 노인은 중년 다음에 해당되는 일련의 단계로 인생의 최종 단계다. ‘늙은이’에 비해 ‘노인’은 완곡한 표현이다. 요즘은 더 완곡함이 느껴지는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늙은이든 노인 혹은 어르신이든 말하는 사람에게 객관화되어 있음에 비해 ‘아버님’이나 ‘어머님’은 매우 주관적이다...

기본 2023.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