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갱 4

[스크랩] 고갱

[신의 날]-1894 -캔버스에 유채, 69.9*89.9cm-헬렌 버치 버틀레트 기념 컬렉션1890년 고갱은 브르타뉴에서의 생활에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문명에 때묻지 않은 생활을 찾아 더 먼곳으로 떠났다. 그는 1893~96년에 한 차례 귀국했을 뿐, 생애의 나머지를 남태평양에서 보냈다. 그가 타히티에서 그린 그림은 브르타뉴에서 그린 것들만큼 대담하지는 못하지만, 거기에서는 남태평양의 토속 예숙이 준 영향을 느낄 수 있다.이 은 고갱이 1894년 일시 파리로 돌아갔을 때 그린 작품이지만, 단순하고 명쾌한 형태이며 밝고 대담한 색채 구사에 그의 이러한 변천이 잘 나타나 있다. 브르타뉴에서부터 고갱이 추구하던 종교적 체험이라는 주제는 여기에서도 다루어지고 있으나 에서 추구되었던 성서적 주제는 이에 토속신의 이..

[스크랩] 고갱작품 이야기

[테하마나의 선조(Merahi Metua No Teha'amana)]-고갱(Paul Gauguin) -54*76cm1893년.그림의 여인은 고갱이 꿈꾸던 야만의 이브라고 할 수 있다. 이 여인은 고갱의 정부로 등에 등장한다  [나부습작(裸婦習作,Study of a Nude)]-고갱(Paul Gauguin) -79.5*111.4cm고갱은 일요화가(日曜畵家)로서 코로나 쿠르베의 영향에 의한 그림을 그리다가 1874년 피사로와 만나 차츰 당시의 파리 화단에 물결치고 있던 인상파(印象派)의 화론(畵論)에 공감하여 갔다.이 작품은 1881년 제6회 인상파전(印象派展)에 출품되었는데 그때 유이스만스의 격찬을 받아 하나의 일요화가에 지나지 않던 고갱의 이름을 크게 높이는데 성공한 그림이다. 유이스만스는 '조금 부풀..

[스크랩] 고갱 작품 이야기

[언제 결혼하니? (When will you marry?)] -고갱(Paul Gauguin)-77*105cm1892년작. 캔버스 유채. 105 x 77cm. 스위스 바젤 미술관 소장. 프랑스에서의 생활이 어렵고 문명세계에 대한 혐오감으로 1891년 아내와 자식을 뒤로 하고 남태평양의 타이티섬에서 그린 그림이다. 타히티에서 그린 고갱의 작품에는 재미있는 제목이 많다. . , 등, 그 외에도 대화의 단편을 제목으로 하고 있는 것이 많다. 일체의 인공적(人工的)인 여벌문화가 없는 타히티의 생활에는 그 일상의 한 장면 장면이 상징적인 의미성(意味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892년 7월에 그는 부인 메트에게 '나는 많은 일을 하고 있소. 지금에 와서야 이 토지와 그 향기를 알게 되었소, 나는 타히티 ..

[스크랩] 후기인상주의 /고갱

Gaugin, Paul (1848 - 1903) 아레아레아(기쁨) 유채, 75.0*94.0cm, 1892년파리 출생.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이다. 1865년 견습선원이 되어 상선(商船)을 탔으나 1871년 어머니가 죽자 선원생활을 그만두고 파리로 돌아와 증권거래점의 점원이 되어 점원생활을 하였다. 1873년에는 덴마크 출생 메트 소피 가드와 결혼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윤택해졌다. 이 무렵부터 회화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여 특히 인상파의 작품을 수집하고 있었는데, 27∼28세부터는 일요일마다 본격적으로 회화연구소에 다녔다. 1876년 처음으로 살롱에 출품하여 C.피사로(1830∼1903)를 사귀게 된 것을 계기로 1880년 제5회 인상파전 후로는 단골 멤버가 되었다. 1882년 피사로의 소개로 P.세잔,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