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에서 4학년으로 올라갈 때, 학교에서 4학년 담임교사 명단을 알려주면서 자녀의 새 담임선생님으로 원하는 사람을 표시해 제출하라고 했다. 나는 학생들을 엄하게 교육하기 때문에 한인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선생님을 표시했다. 그 결과 경쟁이 치열했지만 원하는 선생님 학급에 편성되어 운이 좋았다며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아이가 4학년이 되고 석 달 쯤 지나서 담임이 만나자고 했다. 아들이 자기 의견을 발표할 때 거수를 한 다음에 선생님이 지목하면 발표를 해야 하는데 지목하기 전에 답을 얘기하고, 수업 중에 쉬지 않고 떠들며, 제자리에 앉아 있지 않고 마구 돌아다니는 등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가 아닌가 의심된다면서 전문의를 만나 보라고 했다.
사전을 찾아보았다. ADHD 증후군은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증상으로 주의력 저하 등이 원인이며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불가능하다. 유전적 혹은 뇌의 생화학적 이상 등의 원인으로 여자보다 남자가 3~4배 정도 많다. ADHD 증후군의 합병증은 학업에 대한 관심 상실, 친구와의 교제 기회 상실, 자신감의 결여, 반항 또는 비행 등으로 나타나며, 심한 경우 우울증이나 불안증 같은 정신질환으로 연결될 수 있다.
아이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산만하기는 하지만 병적이라고 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너무 건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서둘러 담임선생님이 준 몇몇 의사 가운데 한 사람에게 전화해서 예약했다.
의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 퇴근 시간이라 트래픽이 심해 병원이 있는 리버사이드까지 거의 1시간 반이나 걸렸다. 의사는 다른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었다. 40분 이상을 기다렸다. 정작 의사를 만나서는 딱 10분, 이것저것 물어보았을 뿐 특별한 조처는 없었다. 그러면서 다음에 또 오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은 ‘시간낭비, 돈낭비’라고 하면서 앞으로 잘하겠다고 했다. 그 후로 개별 면담 통지를 받지 않았다. 아들은 동네 농구팀에서 활동하고 고교 진학해서는 주전으로 뛰었으며 오렌지카운티 고교 전체 선수 중에 베스트 10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학교 팀 주장을 맡는 등 맹활약 했다. 학업 성적도 우수하여 평점도 4.2 정도를 유지해서 명문 사립대학 중의 하나인 Bowdoin College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농구 선수로 입학하면서부터 주전을 맡았으며 2학년을 마치면서 농구를 그만 두었다. 일 년에 학비가 6만여 달러가 되는데 4년을 한 푼도 내지 않고 다닌다. 그뿐이 아니다. 3학년을 마치는 2018년 올 여름에는 Willis Tower라는 회사로부터 인턴으로 오라는 통지를 받았다. 시간당 26달러, 주당 40시간 일하며, 주택비로 매 2주마다 750달러를 준다고 한다. 과연 아들이 ADHD였을까?
4학년 담임선생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우선 그 선생님은 아이의 학업 성적 진작을 위해 과외를 하라고 권유했다. 그리고 과외 선생님으로 LA 시청에 근무하는 자신의 아들을 추천했다. 그래서 과외도 시작했다. 그러나 단 한 번 오고 그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대고 오지 않았으며 과외는 흐지부지 되었다. 담임선생님은 자신의 남편이 하는 부동산 투자 설명회에 참석하라고 알려 오기도 했다. 그러나 투자할 돈도 없고 투자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가지도 않았지만 불쾌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때 그 선생님으로부터 지적을 받지 않고 그대로 두었더라면 아이는 계속해서 교실에서 돌아다니는 등 무질서한 행동을 반복했을 거라고 생각되기에 감사하는 마음이 되었다.
이런 얘기를 한국에 사는 친구에게 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미국에도 그런 선생님이 있냐고 물었다. 아이의 성향에 문제가 있다며 학부모 면담을 요청하는 선생님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아들에게 과외 받게 하고 자기 남편의 비즈니스에 이용하려는 선생님을 얘기하는 것인가 친구에게 묻지 않았다. 그냥 세상 어느 나라나 선생님들은 다 비슷비슷하다고 말했다.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오는 날 (0) | 2019.02.01 |
---|---|
제자들과 만나 추억에 빠져 (0) | 2019.01.03 |
약(藥) (0) | 2017.12.20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0) | 2017.12.16 |
김장 (0) | 2017.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