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비오는 날

Cmaker 2019. 2. 1. 06:53


   비가 온다. 로스엔젤레스에 비가 내린다. 오늘부터 닷새 동안 온다고 예고된 비다. Irvine에서 손님을 만나고 회사로 오는 도중에 비를 만났다. Irvine으로 내려갈 때 맑았던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더니 라디오에서 예고했던 대로 정확하게 11시 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는 비와 관련된 노래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었다. 비에 얽힌 추억들이 떠오른다.


  1960년대 너나 할 것없이 어렵고 힘들게 살던 시절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지방에 근무하고 있었고, 어머니 혼자 네 아이들과 살았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6년여를 살았던 빨래골 우리가 살던 집은 비가 좀 심하게 오면 천장이 샜다. 어머니는 빗물에 천정이 뚫어지거나 내려 앉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실을 천정에  매달아 놓았다. 실을 타고 흘러 내린 빗물이 밑에 바쳐 놓은 대야나 양동이 등에 고이도록 했다. 어머니와 장남인 나는 잠을 자지 않았다. 아닐 잘 수가 없었다. 대야에 물이 차기 전에 어느 정도 고이면 밖에다 버려야 했다. 장마철에는 부엌에도 물이 가득했고 아궁이에도 물이 찼다. 어머니도 나도 깜박 잠이 들어 대야가 넘쳐 방바닥이 물에 축축하게 젖은 뒤에 깨어난 적도 있었다. 뒷곁에 흙이 무너져 내려 밤새도록 흙을 퍼 나른 기억도 있다. 이제는 잊혀질만도 하건만 이렇게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더 뚜렷하게 기억난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아버지는 직장을 서울로 옮겼고 빨래골에서 조금 내려온 곳으로 이사했다. 성당에서 나보다 2학년 위인 한 누나를 만났다. 자기 여동생과 함께 성당에 나오던 누나였다. 누나는 명동에 있는 카톨릭계 여고에 다녔다. 성당 학생회에서 만나기만 하던 누나를 밖에서 만나기로 한 날도 오늘처럼 비가 많이 왔다. 돈암동 태극당에서 만났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고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누나가 큰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날 누나는 병원에 가는 날이라고 했다. 우리는 빗속에 우산을 함께 쓰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퇴계로에 있는 한 종합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그 후에 또 만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 빗속에 함께 걸어가던 기억만 뚜렷하게 기억난다.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 그 누나와 여동생, 두 자매가 모두 수녀가 되었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다. 세월이 한참 지났음에도 뚜렷하게 기억난다. 누나의 쌍커풀과 큰 눈동자가. 수녀님이 된 누나를 상상할 수 없다. 


   그날도 비가 이렇게 많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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