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가 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에 전화기를 꺼놓는다. 자다가 전화 소리에 잠이 깨기도 싫고,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누군가와 얘기하기 싫어서이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일이다. 아버지가 계시던 양노병원에서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이 오기 때문에 꺼둘 수가 없었다. 깊은 잠에 들었다가 전화소리에 깨는 일도 자주 있었다. 이제는 급한 용무의 전화가 올 리 없기에 꺼둬도 된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편이다. 보통 9시가 넘으면 잠이 오기 시작한다. 일찍 자 버릇하다 보니 서너 시에 깨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깨어나서는 전화기를 켠다. 밤사이에 대단한 소식이 있을 리 없지만 이 또한 습관이다. 전화기를 켜니 한국사는 중학교 동창생 KK가 전화했었다. 한국은 지금 오후 8시 30분쯤 되었다. 지금 깨었다고 문자를 보낸다. 곧 전화가 걸려 왔다.
약간 들뜬 목소리다. 지금 친구들과 만나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면서 8명이 모였다는 것이다. 옆에 친구를 바꿔준다. 돌아가면서 한 사람 한 사람 통화했다.
K, 1966년 중학교 1학년 1반 같은 반이었다. K는 말을 더듬었다. 학급 아이들이 심하게 놀리곤 했다. 자주 다퉜으며 힘으로는 이길 수 없으니까 상대방을 물었다. 몇 번 그런 일이 벌어지자 친구들은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 친구는 평소에는 말을 더듬었으나 웅변을 할 때는 더듬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성공회 신학대학으로 진학해서 신부가 되었다. 현재 성공회 동대문 성당 주임신부, 내년에 정년퇴직한다. 서로 안부를 묻고 새해의 복을 빌어준다. 옆에 친구를 바꾼다.
S,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을 했다. 딱 한 번 S의 집에 놀러 갔었다. 재미나게 놀다 왔다. 그리고는 함께 어울린 적이 없었는데 지난 9월 아버님 상에 조문을 와서 만났다. 반갑다. 안부를 묻고 다음 사람을 바꾼다.
P, 10월에 LA를 방문해서 3주 정도 머물다 갔다. 중학교 시절을 거의 함께 했던 친구다. 고등학교를 다른 학교로 진학했지만 함께 놀았다. 고교 졸업후 바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군대 갔다 와서 대학에 진학했다. 9년 늦게 입학했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대기업에 취직해서 부장까지 승진하고 자신이 근무하던 회사의 도움으로 사업을 시작해서 지금도 현업에서 일하고 있다.
T, 중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이다. 고교시절 카톨릭학생회에서 함께 활동하기도 했으나 대학진학해서는 학과가 다르다 보니 자주 만나며 지내지는 못했다. 그리고 인연이 된 것은 T의 동서가 모기업미국 법인 사장으로 근무했는데 그 사람과 가깝게 지내면서 서로 근황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아버님 상을 당해 한국에 갔을 때 만났다. 모 자동차 회사 이사까지 승진했다가 정년하면서 방계 회사 사장으로 근무하다가 내년에 은퇴한다고 했다. 다음 친구를 바꾼다.
M, 중 3때 같은 반이었다. 얌전한 친구였다.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정년퇴직하고 집에서 지낸다고 했다. 아들이 고시 패스해서 판사가 되었고, 딸은 시집가서 잘 살고 있다고 했다. 학창시절이나 사회에서나 서로 분야가 달라 연락 없이 지냈으나 친구가 아버님 문상을 와서 만났다.
J,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다. 집이 명륜동이었고, 자주 가서 놀았던 기억이 있다. 고1때는 함께 영어 과외공부를 함께 하기도 했다. 친구는 평생을 여고 수학교사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을 했는데 학교에서 계속 근무해달라고 해서 일주일에 3일 출근한다고 했다. 부인이 약사로 일하고 있으며 언제나 웃는 낯으로 밝게 살고 있다.
N, 평생을 엔지니어로 일하고 은퇴 후에 부인이 운영하는 약국 셔터맨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번에 치질로 고생하는 친구가 미국에서 사기 힘든 약이 있다고 해서 친구에게 부탁해서 약을 택배로 받은 적이 있다. 약값을 주겠다고 했으나 받지 않겠다고 해서 못 갚고 있다.
다시 KK를 바꿨다. KK는 늘 하루에 한 번 이상 카톡과 SNS에서 만나고 있다. 그는 엔지니어로 평생 일하다가 은퇴했으며 부인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했다. 히말라야 가고 싶은데 함께 갈 친구가 없어서 못 간다고 한탄하는 친구다. 내가 말했다. 네가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친구가 없어서 못 간다는 게 말이 되냐고? KK는 내말을 이해 못하는 눈치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까. 친구는 만날 때마다 옛날 얘기를 한다. 내가 안티푸라민을 신체의 어느 부위에 바르면 몸에 좋다고 바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 화장실에서 그걸 바르고 화끈거려 혼났다고 한다. 난 전혀 기억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친구는 분명히 내가 그랬다는 것이다. 난 생각 안 난다.
친구들은 1차를 마치고 2차에 있다면서 소란스러운 가운데 한 사람 한 사람 전화를 바꿔 가며 통화했다. 나도 그 자리로 달려가고 있었다. 추억의 한 가운데로.
사람은 추억으로 산다.
친구가 보내준 그날의 정경
나도 거기 있었다. 틀림없이 추억의 한 가운데
친구들의 중학교 시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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