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기억에 남아 있는 선생님들 2

Cmaker 2005. 11. 9. 03:49

고 1때 선생님은 심 영진 선생님으로 수학선생님이셨다. 서울 사대나오신 분으로 점잖고 불필요

 

한 말씀을 거의 하지 않으셨던 분이다.

 

늘, 담배 냄새를 진하게 풍기시는 분이었다.

 

당시에 가장 싼 담배로 필터가 달리지 않은 담배를 피우셨다.

 

별로 말이 없으시고 안경너머로 웃음을 지며 쳐다 보시던 모습이 기억에 있고

 

당시는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었던 -아버님과 한판 싸움을 벌인 후 집을 나와 독서실과

 

친구집을 전전하며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역시 어머니께서 담임 선생님을 뵙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렸을 텐데 가정으로

 

돌아가라거나,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한다거나 하는 지도가 전혀 없었다.

 

결국 6개월만에 가정으로 복귀했지만 선생님의 영향으로 들어 간 것은 아니었다.

 

만나자고 하시더니 아버지께서 좋은 시계를 하나 사주시면서 집에 들어가라 해서 들어갔기 때문

 

에 담임 선생님께서 어떤 역할을 하시지는 않은 것이나

 

지금 생각해보면 큰 영향을 주신 것으로 생각된다.

 

내게 스스로 자신의 일을 판단해서 결정한 후 행동하는 삶의 자세가 형성되도록 지도하신 것이며

 

절대로 비록 상대방이 어린아이일지라도 강요하여 어떤 행위를 하도록 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 하도록 하는 자도방침을 갖고 계신 것으로 생각된다.

 

상대를 인정하며 사는 삶을 갖도록 해주신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고 2때 담임 선생님,

 

이원석, 이원식? 정확하게 성함이 기억나지 않으나 얼굴은 명확하게 생각난다.

 

별명이 당나귀이셨던 분이다. 역시 서울 사대 출신이셨다. 지리선생님

 

학년 초의 어느날 소변보러 화장실로 나가다가 학급 교실앞 복도에서 학급 조회하려 오시던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께서는 그날 무슨 언잖은 일이 있으셨던지 어데 무슨 일로 가느냐고

 

묻지 않고 다짜고짜 나를 패기 시작했다.

 

귀싸대기를 서너차례 때리시더니 교실로 끌고 들어가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다.

 

자리에 앉아 담임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부당한 구타를 당해 본적이 없었던 내가, 아무리 선생님들이 때리시더라도 내가 왜 맞는 지 정도

 

는 알고 맞았던 나인지라 오늘 왜 맞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알 수  없었다.

 

난 일어섰다. 책상을 뒤집어 엎고 선생님을 향해 소리치면서 가방을 들고 교실을 뛰쳐 나오며 난

 

소리쳤다.

 

나 XX 학교 안다녀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나의 분노를 어머니께 전달하였다.

 

결국 다음 날 어머니와 함께 학교로 와서 담임 선생님의 사과를 받고

 

학교에 다니기로 했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궁굼하다.

 

왜 그렇게 날 때리셔야 했는지?

 

한참 세월이 지난 후-80년대 중반쯤-에 서울 교육위원회에서 있었던 주임회의에서 선생님을

 

만났는데 참 안돼 보이셨다. 다른 분들은 교장, 못해도 교감들 하실 땐데 주임회의에나

 

참석하고 계셨으니..... 물론 교사에게 그 직책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들과 비슷하게

 

나이나 경륜에 겉맞는 직책을 갖고 살아야 하지 않나 싶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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