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0시 05분 카트만두로 떠난다. 오래 전부터 꿈꾸던 일이다. 대학 시절 히말라야 원정을 다녀온 친구를 부러워했다. 그 친구는 같은 대학에 다녔으며 한 동네에 살았다. 졸업 후에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친구는 몇 차례 더 다녀왔고 동상으로 발가락을 잘라냈다고 했다. 지금은 소식이 끊겼지만 아직도 친구를 생각할 때면 부러움이 앞선다. 히말라야는 언제나 꿈꾸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는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스트어로 눈(雪)을 뜻하는 히마(Hima)와 거처(居處)를 뜻하는 알라야(Alaya)의 합성어로 '눈의 거처', 즉 눈이 사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에는 8,000미터가 넘는 고봉이 14개나 있다. 14개 봉우리의 베이스캠프가 대부분 5,000미터가 넘는 곳에 위치해 있으나 안나푸르나만 4,130미터에 위치해 있기에 일반인들의 접근이 용이하다. 줄여서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라고 부르며 이번 트레킹의 목적지이다.
안나푸르나는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안나푸르나에는 농부들이 농사를 짓는 논과 밭이 있으며 인류가 오른 최초의 8,000미터대 산도 안나푸르나이다. 안나푸르나에 맨 처음 길을 낸 구릉족이 올해로 2,000번이 넘는 새해를 맞이했다고 하니 이 길의 나이도 2,000년을 넘긴 셈이다. 그 긴 세월 무수한 발자국에 의해 다져진 길에 발 디딜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랜다.
남가주에 살면서 이곳에 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먹고 살기 바쁜 탓도 있겠지만 LA는 사막이라는 얘기만 들어왔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지금부터 15~6년 전 친구들과 산을 찾기 시작하면서 이곳에도 아름다운 산이 즐비하고 눈이 쌓일 정도로 높은 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10번 산타아니타 길에서 내려서 구불구불 길따라 올라가면 수많은 트레일이 나온다. 그 길을 친구들과 올라 다녔다. 2년쯤 다니다가 마운틴 볼디로 주무대를 옮겼다. 아이스하우스 캐년 트레일을 주로 올라 다니다가 스키헛트레일이나 데빌스 백본 트레일로 가끔 정상을 오르기도 하면서 주말이면 거의 빼놓지 않고 다녔다.
친구들과 히말라야 트레킹을 약속했다. 미국 본토에서 가장 높다는 마운틴 위트니 도전에 나선 적도 있다. 하루 자고 이튿날 정상에 올랐다가 돌아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첫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뜬눈으로 지새웠다. 친구는 잘 잤다. 다음날 머리가 너무 아파 걸을 수가 없었다. 소위 고산병 증세를 경험한 것이다. 그대로 하산하고 말았다.
이번에 제일 염려되는 것이 바로 이 고산병이다. 물론 히말라야 정상에 도전하는 것은 아니나 3,000미터가 넘는 산에서는 고산병 증세가 나타난다고 하니 걱정이다.
나는 산으로 향하는 내 마음을 본능이라고 생각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찾게 되는 본능, 단 한 번도 여기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도 없었다. 그리고 산으로 향하는 이 마음은 결국 히말라야로 향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히말라야행은 자연스러운 결정이었고 내 결정을 발표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젠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드디어 가냐는 표정을 지었고, 언제 떠나는가 물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이 경비가 얼마나 드는냐였다.
지난해 말에 심한 독감에 걸려 고생하다가 히말라야로 떠나기 이틀 전에 병원을 찾았다. 혹시 트레킹중에 독감 증세가 심하게 나타나 일행에게 영향을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약을 지어 먹고 떠나겠다는 생각으로 선배의 병원을 찾았다. 히말라야에 간다고 하자 선배는 “왜 그런 짓을 하냐?”며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돈 생기는 일도 아니고 시간 빼앗기고, 몸도 고단하고, 오고 가느라고 여비도 만만치 들지 않을 텐데 왜 그런 짓을 하냐고 지금 이라도 그만 두라고 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과연 나는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하고 있을까?
분명히 이 세상에는 적어도 인간에게는 그 가치를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힘들여 걸으면서 얻어지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에 예정대로 비행기에 오를 것이다. 또 선배가 묻는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떠난다. 설령 그 답을 찾지 못할지라도 어려서부터 마음속에 묻고 키워 왔던 젊은 날의 꿈을 실현시킨다는 보람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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