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親年
오늘도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한다. 언제나처럼 은영은 아는 노래의 제목들을 생각나는 대로 쳐놓고 노래를 부른다.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이젠 제법 술꾼이 되었다. 술을 마시고 나면 의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노래방 기계를 처음 장만했을 때는 매우 쑥스러워 했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하다. 한 서너 곡을 부르고 요새 연습하기 시작한 ‘그리움은 저멀리 떠나고’를 막 부르려고 폼 잡는데 어머니가 방에 들어서며 소리친다.
“또, 시작이냐? 노래도 못 부르는 년이 무슨 노래를 한다고 만날 그 지랄인지 모르겠다.”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면서 허구한날 술 쳐먹고 노래질 이냐?”
어머니가 딸에게 집안에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있다고 야단하는 것이 잘못일까마는 내일 모레 칠순인 어머니가 사십이 넘은 딸에게 그것도 내일 모레 대학 졸업하는 딸을 둔 한 아이의 어미가 된 딸에게 이 년, 저 년 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 싶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민 길 떠나는 부모 따라 미국에 와서 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먹고 살기 바빠 한국 식당에 웨이추레스로 나선 것이 나이 마흔이 넘어서까지 그 일을 하고 있다.
병일을 만난 것도 은영이 일하던 식당에서였다. 식당에 와서 가끔 식사를 하고 소주를 마시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눈빛이 심상치 않더니 한 번 밖에서 만나 잔다. 몇 차례 만나 영화구경 하고 디즈니랜드에도 가보고 바닷가에도 갔었다. 그리고 둘은 결혼했다.
나이 스물에 만나 스물 하나에 결혼하고 스물 셋에 딸아이를 낳고 그리고 이십여 년이 흘렀다. 시집가서 이 년은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를 제대로 했다. 밤늦게까지 식당에서 일하고 돌아와 시어머니 챙겨드리고 식구들 아침식사 준비하고 식당에 출근했다가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 오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
병일도 온 종일 일하고 돌아와 피곤할 텐데도 밤 늦은 시각까지 자지 않고 기다렸다. 은영은 하루 종일 고생했다며 맞이해 주는 병일 때문에 하루의 피로가 싹 가셨다. 또 어깨도 주물러 주고 팔다리도 마사지 해주는 병일은 하루 하루를 새로운 날로 만들어 주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심심해서 못살겠다며 한국으로 돌아가 버리고 병일과 둘이 사는가 했더니 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 살던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봐주겠다며 함께 살자 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돌 지난 아이를 어디 맡기고 일 나가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이렇게 친정어머니와 살기 시작한 것이 이십년이 흘렀다.
은영보다 열 살이 많은 병일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서울대학교 출신의 병일은 한국에서 잘나가던 회사를 팽개치고 미국으로 유학 왔다고 했다. 유학 와서 학비를 벌려고 이 일 저일 따라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고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해서 돈벌이가 좋다는 페인트 사업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말이 좋아 사업이지 순 우리말로 하면 ‘뺑끼칠하는 일’이다.
일을 맡아서는 일당이 낮은 외국인 노동자들 몇 사람 고용하여 페인트 칠을 하는 일인데 정말 수입은 좋았다. 아파트는 일은 쉽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아 주로 주택 일을 골라가며 했다.
결국 결혼 후 십 년이 지나서 둘은 오렌지 카운티 애나하임(Anaheim)에 꽤 괜찮은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풀타임으로 죽어라고 일했던 은영은 하루 대여섯시간씩 파트 타임으로 일을 했고 병일은 계속해서 열심히 일했다. 둘은 금방 부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삼년 전 노동절 연휴에 병일은 라스베가스에 호텔을 예약했다며 모처럼 단 둘이 떠나자고 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 여행으로 라스베가스에 다녀 오고서는 처음이었다.
어머니와 딸아이 저녁식사를 챙겨주고-사실을 말한다면 어머니가 딸아이 챙겨주는 것을 보고-병일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떠났는데 새벽 1시나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연휴의 라스베가스는 만원이었다. 쉽게 돈을 벌려는 이들의 뜨거운 열기와 이들의 돈을 게임이라는 형식을 통해 빼앗아 가려는 사람들의 간교한 속셈이 한데 어우러져 들끓는 사막의 무더운 기온을 더욱 더 높여 주고 있었다. 낮과 달리 밤의 열기는 유혹의 냄새까지 담고 있었다. 낮에 숨겨 놓았던 유혹을 밤에 드러내 놓는 것인지도 모른다. 은영은 본래 낮보다는 밤을 더 좋아했다.
병일은 은영에게 백 달러를 주면서 이것만 하라고 했다. 병일도 백 달러만 한다고 했다. 은영은 백 달러를 동전으로 바꿔 기계 앞에 앉았다.
하얀 플라스틱 통에 담긴 동전의 무게는 제법 묵직하다. 처음에는 하나씩 넣고 기계를 당기며 놀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전은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놀이에 몰두하면서 구멍에 넣는 동전의 숫자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하나에서 둘, 셋, 늘어나며 동전 떨어지는 소리도 제법 커지기 시작한다. 두두둑에서 덜덜덜덜, 따다다다다, 밤새도록 손이 새까맣게 된 줄도 모르고 신나게 놀았는데도 플라스틱 통의 무게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병일을 찾아보니 블랙잭 테이블에 앉아 멋지게 담배를 피며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하얀 옷을 입고 하얀 모자를 쓰고 페인트 칠을 하던 그 손으로 카드를 잡고 게임에 몰입해 있는 병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은영은 그날 밤을 잊을 수가 없었다. 뜨거운 기운과 그 짜릿한 손 맛을 통해 은영은 새로운 절정을 알게 되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은영에게 집중되고 곧 카지노에서 기계를 관리하는 사람이 달려오더니 축하한다고 한다. 단 한번에 수만 달러를 갖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병일과 은영은 그리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은영은 주로 이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골몰했고 병일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상이라도 하는 듯 똥씹은 표정을 하고 운전에만 집중했다.
병일의 걱정은 결국 현실로 나타났다. 라스베가스에서 돌아 온 이후로 은영은 그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수만 불은 그리 많은 돈이 아니었다. 대형 스크린의 텔레비전, 노래방 기계, 그리고 딸 아이가 갖고 싶어하던 컴퓨터를 남겨 놓고 나머지 돈들은 어디로 갔는지 한 달도 지나기 전에 은영의 손을 떠났다.
친정 어머니께 처음으로 천 단위의 용돈을 드리고 한국에 계신 시어머니께도 제법 많은 돈을 부쳐드렸다. 병일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중학교 동창, 고교 동창, 대학 동창, 학교 별로 초대해서- 매일 술 마시고 노래하고, 은영이 일하는 식당 가족들까지 초대해서 먹고 마시고 놀았다.
한 달이 되기 전에 수중에 돈은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담배 연기 뿌연 곳에서 카드를 잡고 있었던 병일의 모습과 소란한 기계음,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하얀 통을 들고 이 기계, 저 기계 옮겨 다니며 손잡이를 잡아 당기는 자신의 모습이 아른거려 은영은 그 어떤 일도 손에 잡을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일해서 팁과 일당을 합해 백 달러 안팎의 돈을 벌던 은영이 손잡이를 당겼다 놓으며 단 한 번에 수만 달러를 벌었으니, 은영이 일년 동안 안 쓰고 안 먹고 번 돈을 모아야 가질 수 있는 돈을 불과 몇 시간 만에 그것도 축하 소리를 들으며 사인까지 해주며 받았으니 어찌 그 감격을 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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