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소설

침입자

Cmaker 2008. 8. 27. 02:45

 

 

 

 

 

 

 

·                                 침입자(侵入者)

내가 그 짐승들과 만난 것은 잠에서 막 깨어 나서다. 냉장고에서 찬 물을 꺼내어 마시려고 부엌으로 가던 중이었다무언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창을 내다 보니 다섯 마리가 아버지가 정성으로 가꾸고 있는 더덕 밭을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그들의 가장이 식구들을 거느리고 아침 산책을 하다가 물을 마시기 위해 잠시 들린 듯 싶었다. 그들이 이곳을 방문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라 꽤 오래 된 듯 했다. 걸음걸이에 여유가 있었고 물 마시면서 샤워하는 모습도 자연스러웠다. 오랜 가뭄으로 물을 얻기 어렵던 차에 인적 없는 샘을 발견하여 아침 저녁으로 다니며 물도 마시고 샤워도 하면서 온 가족이 즐겨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다 이해를 한다. 단지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내 허락도 없이 담장을 뛰어 넘어 왔다는 것이다. 주거 침입, 목욕탕 무단 사용, 경작지 훼손 등 그 죄명을 열거하자면 서너 개 더 들 수도 있겠지만 이쯤 해도 충분히 현행범으로 체포하여 감옥으로 보낼 수 있다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며 정당방위를 가장해서 총살 시켜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좀더 지켜보고 싶었다. 그 다섯 중에 아빠, 엄마가 있을 거고 자녀들이 있거나 형제, 혹은 사촌들이 있지 않을까? 아니면 부모님을 모시고 내외가 자식까지 데리고 3대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얘기할 때는 건성으로 들었다. 세 마리라고 했다. 이른 아침에 몰려드는 새 떼에게 헛일 하지 말라고 대추 나무에 그물-우리는 그물이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을 씌우기 위해 부엌 쪽에 난 문으로 나가다가 그들을 만났다고 했다. 6.25 참전 용사로 인천 상륙 작전에서 한 몫 하신 영원한 해병이 그냥 물러 났겠는가?

당신의 밭을 망쳐 놓은 그들에게 응징을 가하기 위해 아버지는 골프채를 들고 나가셨다고 한다. 그러자 그들도  아버지가 범상치 않은 분임을 눈치채고 담장을 훌쩍 뛰어 넘어 가버렸다고 했다.

 

내가 산 그 집에는 할머니 혼자 살고 있었다. 자녀들은 다이아몬드 바(Diamond Bar)에 살고 두 내외가 전원 생활을 하기 위해 이 집을 사서 대추나무를 심고 닭도 키우며 살았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사막 한가운데에 혼자 살기 외롭고 무서워서 팔려고 내 놓았다고 했다. 신문에 난 5에이커 농장, LA에서 1시간 반 거리, 1800 스퀘어피트/ 3, 화장실 2, 환한 집 이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가 불러주는 주소를 몇 번이고 되물어 가며 적었다. 나 보고 언제 오겠냐고 물었다. 요즈음은 아들 집에서 살고 있다며 그 시간에 맞춰 오겠다고 했다. 퇴근 후 저녁 밖에 시간이 없다고 하자 그러면 주말이 어떠냐고 했다.

토요일 오후, 아이들을 태우고 아내와 집을 나서며 거리와 시간을 측정하기로 했다. 98마일, 2시간, 이것이 우리가 처음 방문 하면서 기록해 놓은 것이다. 60 East, 57 North, 10 East(당시에는 210번이 생기기 전이다), 15 North, Bear Rd. 에서 내려 East로 가다가 18South로 바꿔타고10여분 후Vista에서 내린다. 비포장 도로로 5분 정도 가면 우측에 아담한 집이 게이트 안에 자리하고 있다. 집들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고 나무없는 산들이 둘러 싸고 있는 해발 3,000피트 사막에서의 생활, 재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대추나무 농장에서의 전원생활, 내가 평소에 꿈꾸던 노년 아닌가?

 

할머니는 무조건 팔고 싶다고 했다. 혼자 살기에는 너무 무섭다고 했다. 요즈음은 아들 집에서 살고 있다며 집을 비워 둘 바에야 파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며 아들들도 팔라고 성화라는 것이었다. 아내와 나는 우선 환한 그 집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서기 위해서 세 번의 문을 열어야 하는 시스템도 맘에 들었다. 농장으로 들어가는 게이트를 열고 또 주택으로 들어가는 게이트를 연 다음에 차고 문을 열어야 한다. 마치 견고한 성을 들어서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 자리에서 사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좀 더 생각하기로 하고 그날은 자리를 파했다.

 

퇴근하기가 무섭게 사막으로 향했다. 혼자서 자동차를 몰며 차 안에서 미래의 전원생활을 즐겼고 사막의 석양과 별과 무더위를 즐겼다. 밤이 되었음에도 한 낮에 덥혀진 땅덩어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후덥지근한 기운 속에 담겨진 흙냄새는 얼마나 자극적이었던가? 석양의 붉은 노을과 밤 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은 나를 미치게 했다. 특히 나무가 전혀 없는 돌산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밤의 빛은 나를 강하게 유혹했다.

아내 몰래 일주일 내내 그곳에 다녀왔다. 왜 이렇게 늦느냐는 아내에게 애인이 생겼다고 농담을 하면서 진짜 애인이 생긴 듯 착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 루선 밸리(Lucerne Valley)는 나를 매료시켰다. 

 

Post Office라는 간판을 보고 이곳의 우체국은 밤에도 영업을 하나보다 생각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 보았다. 전형적인 미국 시골의 술집이었다. 그들은 동네 친구들이었다. 술집 주인, 일하는 종업원, 술 마시러 온 손님들도 모두가 친구인 작은 도시에 낯선 사람이 들어서니 일제히 쳐다 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모두가 서양 사람들인 곳에 동양인 혼자 들어선 것이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맥주 한 병을 달라고 했다. 맥주 한 병과 잔을 던지듯이 앞에 놓는다. 얼린 잔에 차디찬 맥주를 부어 마실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저 그렇다. 맥주를 마시며 이제는 내가 낯선 그들을 구경하기 시작한다. 담배에 찌든 삐쩍 마른 사내가 담배를 피우며 연신 마시고 있었다. 그 옆에 그 사내의 국민학교 동창이며 지금은 옆집 아줌마가 된 뚱땡이 아가씨가 멀뚱멀뚱 천장을 보며 팝콘을 집어 먹고 있었다. 별로 말이 없는 두 사람과 달리 그 옆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 아줌마는 벌써 취했는지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그녀를 둘러싼 그녀의 고등학교 동창들은

잰 언제나 빨리 취한다 말이야.

아냐 아직 취하려면 멀었어.

그래, 재는 웃옷을 벗어야 취한 거야.

남녀가 섞여 떠들어대고 있었다.

네 개의 당구대가 있는데 세 곳은 사람이 없었고 한 곳에서는 조금 일찍 은퇴한 듯한 사내 하나와 우편 배달원 옷을 입은 40대 남자가 당구를 치고 있었다. 우편 배달원 옷을 입은 사람은 이곳의 종업원인가 싶었다. 그 집의 상호가 Post Office니까 종업원이 우편 배달원의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고 손님이 당구를 치고 싶어하는데 상대가 없어 대신 함께 놀아주고 있구나. 이렇게 제멋대로 상상을 하면서 맥주를 서너 병 마셨다. 

낯선 내게 말 걸어주는 이 하나 없었고 아무도 눈길 조차 주지 않았다. 나 역시 낯선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들어서서 자리에 앉으며 한 바퀴 둘러 본 뒤에는 집을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 것도 아닌 이방인이었고 그들 역시 내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그들만의 세상에 침입한 침입자일 수도 있다.’ ‘그들이 매일 밤 만들어 내는 세계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해 허락받지 않고 들어온 침입자’, 나는 마시던 맥주 잔을 던지듯이 내려 놓고 밖으로 나왔다.  

 

한참 후에 안 사실이지만 포스트 오피스라는 술집은 그곳에 없었다. 내가 꿈을 꾼 것일 수도 있고 그곳에 있는 포스트라는 술집을 포스트 오피스라고 지레짐작으로 읽었을 수도 있다. 내 기억이라는 것이 워낙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한 마디 더 한다면 포스트라는 술집이 있는 지도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그곳의 광경이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은 어쩌면 영화의 한 장면과 바꾸어 기억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우편 배달원의 옷을 입은 사람은 그곳에 사는 주민인데 일을 마치고 들려서 놀고 있는 것을 내 멋대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 날 회사에서 조금 일찍 나와 루선 밸리에 저녁 무렵에 도착할 수 있었던 나는 저녁 식사를 하려고 중국음식점에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종업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양 사람이었다. 인구 7천에 불과한 작은 마을의 식당이 이렇게 바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앉을 자리로 안내하는 종업원을 따라 가면서 낯선이의 마음이 된다. 이곳이 낯설다.

음식을 시키니 한국 김치까지 내다 준다. 아니, 김치를 어디서 났느냐?고 마치 내 허락도 받지 않고 김치를 내 놓고 있느냐는 듯이 물었더니 주방 아주머니 중에 한 분이 예전에 한국 식당에서 일을 해서 김치를 잘 만든다고 하면서 한국 사람이 오면 김치를 내 놓는다고 했다. 한국 사람이 자주 오냐고 하자 가끔 온다고 했다. 아주 제법 근사한 김치였다. 양배추를 썰어서 만든 김치가 아니라 배추를 절여서 소금기를 빼내고 제대로 양념을 해서 만든 김치를 이 사막의 도시 루선밸리의 작은 중국 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니 그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그 때, 동양인 부부와 여러 아이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분명히 한국사람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그 부부에게 인사를 했다. 한국 사람이라고 했다. 자리가 없어서 기다려야 한다며 입구에서 기다리겠단다. 잠시후 자리가 나서 그들이 자리를 잡자마자 한 자리를 더 만들어 달라고 하고 그들 틈에 끼어 앉았다. 나까지 모두 열 명이 식탁에 앉았다. 이미 배불리 먹은 뒤라 음식 생각은 없었지만 얘기하고 싶었다. 서양 사람들만 가득찬 식당에서 만난 한국인인 우리도 시끄럽게 떠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두 내외는 아이를 일곱이나 낳았다고 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남편은 미군에 입대해서 공수부대 하사관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마흔 세살에 상사로 제대한 후 이곳에 정착했으며 지금은 부동산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난 궁금한 게 많았다. 한국 사람이 얼마나 살고 있느냐? 주로 무엇을 해서 먹고 사느냐? 그는 아주 성실하게 내게 답변해 주었다. 음식을 먹으며 물을 마시며 여유 있게 교사가 학생에게 설명하듯이 답변해주었다.

한국 사람들은 루선밸리에 다섯 가구가 있다고 했다. 한인 교회도 있는데 루선밸리 뿐만 아니라 인근의 다른 마을에서도 많은 신도들이 온다고 했다. 이곳의 집을 사려고 한다고 하자 어느 집이냐고 물었다. 주소를 대자 그 할머니를 잘 안다면서 그 가격에 그 집을 사면 괜찮은 가격이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그 집을 사기로 결정한다. 그는 그 집을 얼마에 사야 할 지 가격까지도 알려줬다. 할머니가 부른 가격에서 조금 낮춘 가격, 나도 그 정도면 부담이 돼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는 그 농장을 좋아했다. 농촌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농사일을 하다가 서울로 상경해서 독학으로 학업을 지속 했다. 군에서 육이오를 치르고 전쟁 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 군에서 제대한 후에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오일육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공직을 떠나 이런 일, 저런 일 하면서 자녀들 대학까지 교육시키느라고 등골이 휘고, 오 년여를 앓다가 가신 어머니 병수발로 기진맥진해 계신 아버지께 농장은 그야말로 편안한 일터였을 거다.

농장의 고된 일을 마다 않고 혼자 다 하셨다. 먼저 사시던 분이 닭을 치면서 거름으로 쓰려고 모아 놓은 계분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말라 비틀어져 있는 계분에 흙을 사다 섞어 대추나무 밑에 적당히 땅을 파서 계분을 넣고 흙을 덮는 일을 아버지 혼자서 다 하셨다. 바람이 심한 곳이라 나무들이 똑 바로 바르게 서 있지 못한다. 나무마다 지주목을 세우고 굵은 철사줄로 묶어 놓아 아무리 심한 바람에도 버틸 수 있게 하셨다.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겠다고 하며 혼자서 한 달이상 머무른 적도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농장에 가기를 싫어했다. 주말마다 가면서 투덜거리고 도착해서 떠날 때까지 투덜거렸다. 오면서도 투덜거렸고 와서도 투덜거렸다. 왜 주말에 그곳에 가야 하냐고 온 식구가 불평불만이었다. 아버지와 나만 좋아했다.

 

차고에 자동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아이들을 깨우기 위해 뒷문을 열려고 하는데 무엇인지 작은 물체가 그리 빠르지 않은 동작으로 물을 받아 덥히는 온수 탱크 밑으로 들어간다. 새앙쥐다. 얼마전부터 그들의 배설물로 보이는 것들을 발견하고 아내는 쥐들이 차고에 살고 있다고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쥐똥이 이렇게 작고 예쁘냐며 이것은 쥐가 아니라 우리가 본적이 없고 이름도 모르는 예쁘고 귀여운 동물일 거라며 무시했었다.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며 아내는 쥐약을 사다 뿌리라고 했었다.  

나는 쥐를 제일 무서워 한다. 그 쥐를 본 것이다. 새끼라 동작이 다소 둔했기에 내 눈에 띈 거다. 아내와 아이들을 내려 놓고 바로 동네의 마켓으로 갔다. 쥐약을 샀다. 초록색 작은 가루를 음식물 위에 뿌리고 차고 구석구석에 뿌려 놨다. 그러나 차고에 살던 쥐들은 일체 설치물을 건드리지 않았으며 그 이후로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아내만 농장에 가기 싫은 이유를 하나 더 갖게 되었다. 

 

어느 겨울날 주말에 가기 싫다는 식구들을 달래서 농장에 갔었다. 저녁을 잘 차려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누웠다. 첫잠이 들랑말랑 했을 때 아내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여보, 아무래도 불안해서 안되겠어요.”

, 잠을 안 자고 그래? 잠을 못자니까 걱정만 하게 되는 거야. 빨리 자

여보, 이 소리 좀 들어봐요.”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그래.”
이 바람소리가 안들린단 말에요?”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소리로 표현할 수 없는 온갖 요란한 소리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금방 지붕이 날라갈 듯한 무시무시한 소리였다. ‘이처럼 큰 소리가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니. 거참.’ 아이들은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흔들어 깨운다. 축 늘어져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한 놈씩 안아다 차에 눕힌다. 짐을 잽싸게 싸서 차에 싣고 농장을 빠져 나왔다.

다음 날, 집에서 좀 쉬라는 아내를 뿌리치고 혼자 농장으로 갔다. 처참한 모습이었다. 태풍이 지나가면 이런 모습일거다. 지붕은 반쯤 날라가 있었고 온 집안은 모래가 덮고 있었다. 지붕 일을 하는 후배에게 전화를 해서 당장 날라 오라고 했다. 교회에서 예배 시작 직전에 전화를 받은 후배는 2시간을 달려서 왔다. 마침 진행 중이던 공사가 없다며 내일 당장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예상하지 않았던 거금을 들여 지붕 공사를 해야 했다.

나무들도 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몸통이 반쯤 휘어진 것은 보통이고 뿌리가 반 쯤 들린 나무들도 있었다. 이로 인해 아버지가 한 달 이상 머무르며 나무마다 지주목을 대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하는 여러가지 일들 중에 가장 손쉬운 일이 라디오를 듣는 일이다. 라디오를 켠 후에 자신이 듣고 싶은 방송만 찾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이것이 귀찮으면 좋아하는 방송을 켜 놓은 상태에 두며는 아무 때고 시동만 켜면 라디오는 자동으로 켜진다. 그날도 시동을 켜자마자 라디오에서 소리가 났다.

찾아 오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무료로 나무 한 그루씩 나눠 준다는 것이었다. 공짜로 나무를 나눠 준단다. 한 손으로 운전하면서 한 손으로 주소를 받아 적었다.

담장이 없어 바로 그 집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가정 집을 사서 마당을 세멘트 콩크리트를 해서 흙을 밟을 수 없게 만든 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각종 나무들이 심어진 검은 플라스틱 화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나무를 주신다고 해서 왔는데요. 아무 거나 가져가면 되나요?”

저쪽에 있는 나무들 가운데 골라 가시면 됩니다.”

꼭 하나만 가져가야 되나요?”

원하시면 하나 더 가져 가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염치불구하고 하나 더 가져 가지요. 그런데 방송까지 하면서 무료로 나눠주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저는 이 나무들을 루선벨리의 농장에서 기르며 로스엔젤레스에 화원에 내다 팔았지요. 그런데 화원이 문을 닫게 되어 갖고 온 나무들을 친구 집으로 옮겨와서 무료로 나눠주는 겁니다. 방송국에 아는 분이 있어 교민들에게 알려 달라고 부탁했지요.”

루선벨리요? 저도 그곳에 농장이 있는데요.”

, 그러세요? 저는 본래 목사입니다. 기도원을 짓고, 교회도 짓고 학교도 지을 생각으로 한 십여년 전에 그곳에 약 30에이커의 땅을 사서 조금씩 개간을 해왔지요.”

그럼 지금 교회도 있고 기도원도 운영하고 계시겠네요?”

아닙니다. 저 혼자 죽어라 하고 땅만 파고 있지요. 그 결과 지금의 병든 이 모습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을 자세히 쳐다 보았다. 백발이 성성하고 앞니는 빠져 있었고 얼굴은 까맣게 탔고 눈병이 났는지 눈은 오랫동안 빨간 빛을 띄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외모만으로 보면 목사님과는 거리가 먼 거친 황야의 늑대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힘이 많이 드신가 봐요.”

  처음에는 아주 좋았지요. 밖에서 텐트를 치고 자도 꿈이 있기에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지쳤어요. 더 이상 지탱할 힘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나무들도 많이 키우셨잖아요?”

  저거요.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지는 줄 알면은 놀라실겁니다. 루선벨리는 농사짓기에 적합한 땅이 아닙니다. 우선 물이 없지요. 물을 지하에서 끌어 올리려면 물이 있을 만한 곳에 시추를 해서 찾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구멍하나 파는데 만불 정도 먹히지요. 그나마 수량이 많은 곳을 찾으면 다행인데 물이 많지 않은 곳이라면 일이년 후에 다시 구멍을 파야지요. 다시 만불이 듭니다. 그 뿐 아니라 바람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요. 바람에 다 날라 가니까요. 나무고 집이고 온갖 것을 다 날려 버리는 겁니다. 거기다 짐승들로 인한 피해도 무시 못합니다. 코요테, 여우, 야생화된 개떼들도 있고 열매를 따먹는 새떼의 공격도 만만치 않지요. 토끼들도 어린 식물의 순을 따먹기도 하지요. 먹이 사슬이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불개미도 떼지어 다니며 괴롭힙니다.”

  그래도 좋은 점도 있잖아요. 농사를 하니까 건강해지고 열매를 따다 팔기도 하고 보람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보람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열매가 상품으로서 가치를 갖으려면 색깔과 크기 등이 어느 정도 돼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곳에서 자라는 사과, , 자두 등은 크기가 너무 작습니다. 색깔도 좋지 않고요.”

대추는 크기도 크고 아주 달아서 상품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대추는 그런대로 괜찮습니다만 거의 대부분 새들의 먹이가 되고 말지요. 심지어 새 뿐만 아니라 토끼나 야생 개들, 코요테 등도 대추를 몰래 와서 먹고 간답니다. 저는 지난 십여년 동안 안 심어 본 나무가 없으며 길러보지 않은 채소가 없습니다.”

그럼 짐승들도 길러 보셨어요?”

, , 염소, 토끼 등 왠만한 것은 다 길러 봤지요. 그것 역시 견디질 못합니다. 너무 더워서 견디기 어렵고 바람이 심하게 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거기다가 야생 짐승들의 습격도 잦은 편입니다. 닭들은 들쥐들이 와서 내장을 파먹어도 모르고 있어요.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줄 알고 몸을 내맡기다가 목숨을 잃는 거지요.”

그럼 어떤 작물을 기르면 괜찮을까요?”

그곳에서는 동식물 그 어떤 것도 기를 수 없는 곳입니다. 가능한한 빨리 팔고 나가십시오.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빨리 파시는 게 돈 버는 겁니다.”

그 때 나는 목사님의 말씀을 귓등으로 들었다. 나는 그곳에 사는 게 아니고 주말에만 가서 쉬었다가 오는 거니까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아버지와 포도나무를 심고 있었다. 포도 묘목을 사다 심었다. 목사님 말씀처럼 새 순이 나오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와서 순을 없애곤 했다. 그러나 아버지와 나는 나무를 사다가 계속 심고 있었다. 누가 이기나 보자는 식이었는데 목사님 말씀을 들은 후에는 나무 심는 일을 중지하였다. 그냥 심어져 있는 나무들이나 잘 보살피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고운 시선으로 그들을 창문너머로 지켜 보고 있었다. 그런데 자식들이 너무 고약하게 생겼다. 삐적 마른 것까지는 그런대로 봐줄 수 있는데 뾰족하게 나온 주둥이하고 야비하게 생긴 눈하며 특히 그 몸뚱아리 색깔은 바라보고 있는 내 기분을 더럽게 만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한국 아이가 저 놈들에게 물려 죽었다는 보도를 본 기억이 났다. , 왜 여태까지 그 생각을 못했냐?

나도 서서히 한마리의 야수가 된다. 뒷문을 열고 뛰쳐 나갔다. 그들을 향해 무어라고 소리치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한 마리씩 여유있게 담장을 훌쩍 넘는다. 그리고는 천천히 걸어 간다. 두목인 듯한 놈이 마지막으로 담장을 넘어 몇 발자국 걷다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걸음을 멈추고 쳐다본다. 아니 노려본다. 우린 눈이 마주쳤다. 오랫동안(?) 서로 노려 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뭐하는 짓이냐? 저들이 덤벼들기라도 하면 어쩌자고 맨손으로 그것도 팬티 바람으로 달려들었냐? 내가 먼저 눈을 돌렸다. 천천히 등을 돌린 후 문을 향해 여유있게 걸었다. 문을 열자마자 허겁지겁 집안으로 들어섰다. 급하게 창문으로 갔다. 다행히 그들은 가버리고 없었다.

기분 더럽다. 칠남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즈음 우리 집 같은 크기면 값이 얼마나 하지요? 내 놓으면 집은 빨리 팔리겠습니까? 아니 무조건 집을 좀 팔아주십시오.

 

 

코요테[coyote] (포유류)  

출처: 브리태니커

prairie wolf, brush wolf, little wolf라고도 함.

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개과(─科 Canidae) 동물.

코요테라는 이름은 아스텍어 코요틀(coyotl)에서 유래되었으며, 알래스카에서부터 코스타리카에 이르는 초원에서 발견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코요테의 분포범위의 동쪽 경계는 애팔래치아 산맥이었는데, 20세기 동안 뉴잉글랜드, 뉴욕, 미국의 동부지역까지 서식범위를 넓혔으며, 이전에 늑대가 존재하던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늑대보다 크기가 작고 몸무게가 가벼운 코요테는 어깨높이가 약 60㎝이고, 몸무게는 약 9~23㎏이며, 꼬리길이 30~40㎝를 포함한 몸길이는 약 1~1.3m이다. 털은 길고 거칠며, 등쪽은 회색을 띤 황갈색이고, 배쪽은 흰색이다. 다리는 붉은색이고, 꼬리는 털이 많고 끝이 검다. 그러나 털색과 몸의 크기에서 상당한 지리적 변이를 보인다.

짧게 짖는 밤의 '세레나데'와 쓸쓸하게 길게 짖는 소리로 유명한 코요테는 원래 야행성이며, 단독으로 또는 교대로 사냥하는데, 꼬리를 아래로 내리고 달리며 때로 64/h의 속도를 내기도 한다. 주로 설치류와 멧토끼류를 잡아먹고 살지만, 썩은 고기와 대부분의 동식물도 먹는다. 코요테는 굴 속에서 지내는데 60~63일의 임신기간이 지난 후 봄에 6마리나 그 이상의 새끼를 낳는다. 암컷과 수컷의 부부관계는 때로 일생 동안 유지되며 새끼들이 독립할 때까지 같이 먹이고 보살펴준다. 코요테는 사육중인 개와 쉽게 교배되며, 잡종 코이도그(coydog)라고 한다. 재빠르며 영리하다고 평판이 나 있는 총명한 동물인 코요테는 사람들에게 남획되고 있는데, 그것은 이들 코요테들이 가축이나 사냥동물들을 잡아먹으며, 그 피해가 매우 과장되어 전해진 데 따른 것이다. 그러한 학대에도 불구하고 코요테들은 인간 가까이 사는 데 잘 적응해, 로스앤젤레스의 교외처럼 인구가 많은 지역에도 규칙적으로 출몰해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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