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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a Fe Springs의 작은 정원 이야기

지난해 6월 내가 일하는 회사는 26년의 Garden Grove 시대를 마감하고 Santa Fe Springs로 이사했다. 새로 이사한 회사 건물 앞에는 작은 화단이 있다. 사람들은 그 화단을 맥도날드와 세븐일레븐을 잇는 통로로 이용하고 있었다. 앞에 멀쩡한 인도를 두고 잔디를 지나 화단을 넘어가면 한 5~6초 정도 빨리 갈 수 있기에 이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남의 화단을 밟고 가면서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지나 다녔다. 잔디가 깔려 있는 부분 말고는 흙바닥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필자가 미국 와서 처음 한 일이 가드닝 비즈니스였다. 잔디를 깎거나 나무를 돌보는 일은 종업원들이 했지만 명색이 가드닝 비즈니스를 업으로 했던 사람이 까짓 손바닥 보다 조금 더..

기본 2021.09.17

언론중재법 개정안

가능한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다루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소모적인 논쟁을 하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사는 얘기를 나누는 편이지만 가끔, 아주 가끔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내 견해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서 올린다. 물론 언제나 주장하지만 나는 어느 한 편에 치우치는 것을 지극히 싫어한다. 어느 한편에 서서 열을 올리면서 논쟁하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그 어느 쪽도 항상 옳은 주장만을 펼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그때 그때 내 생각을 정리하는 즐거움을 갖고 싶을 뿐이다. 오늘은 요즈음 뜨거운 잇슈가 되고 있는 언론중재법개정안에 대해서 내 생각을 정리해봤다. 과거에는 입법·사법..

기본 2021.09.02

보리 심은데 보리나고 유채 심은데 유채난다

제주도에서 한 달 머물 때 제주 장날, 장터에 간 적이 있다. 아들의 안내로 찾아간 장터는 거대한 재래시장이었다. 그 크기는 말할 수 없이 컸으나 옛날 시골 장터의 맛을 느낄 수는 없었다. 아무리 봐도 거대한 시장일 뿐이었다. 파는 물건도 우리가 수퍼마켓이나 동네 마트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이었고, 야채나 과일 등도 뭐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매우 크게 실망하고 무언가 살 것이 없을까 궁리하며 다니다가 한 상점에서 씨앗을 팔고 있었다. 무슨 씨앗인가 보니 보리씨앗이었다. 다른 씨앗들도 있으면 좀 샀을텐데 보리 씨앗만 있었다. 보리 씨앗을 한 봉투 샀다. 3000원이라고 했다. 그 씨앗을 타운뉴스 화단에 뿌렸다. 내가 없는 동안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몽땅 다 뽑고 무엇을 심을까 궁리하다가 보리 씨..

기본 2021.08.27

1987년 Alaska Camp Gorsuch

언젠가부터 이맘때가 되면 마음은 알래스카에 가있다. 1987년 여름, 알래스카 Chugiak에 있는 보이스카우트 야영장 ‘캠프 고르서치’에서 보냈다. 앵앵거리며 달려들던 모기, 모기를 퇴치하기 위해 온몸에 바르던 끈적끈적한 모기약, 회색빛 호수, 베어 마운틴, 어둠이 찾아오지 않는 하얀 밤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특히 캠프를 찾는 소년들을 위해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봉사하던 젊은이들을 잊을 수 없다. 가끔 사진첩을 보면서 그때의 추억 속에 빠져 며칠이고 헤매 다닌다. 월요일 소년들이 들어와 금요일 밤 캠프파이어를 하고 캠프를 떠난다. 캠프에는 아무도 없다. 멀리 한국에서 온 지도자를 캠프에 혼자 둘 수가 없어 스텝들은 돌아가면서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숙식을 시켜..

기본 2021.08.21

신통력이 있는 건가? 예지력이 있는 건가?

LA 화단에서 중견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제자가 전시회를 한다며 그 제자의 후배인 제자가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런데 일정표를 보니 주치의와 만나기로 한 날이다. 아내만 다녀오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접수 창구에 비치되어 있는 노트에 접수 기록을 마치고 앉아 있는데 창구 직원이 나를 부른다. 예. 하고 다가가니 오늘 왜 왔냐고 묻는다. 예약이 되어 있다니까 오늘이 아니고 내일이라면서 하루 일찍 왔다고 한다. 그럼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니 잘 왔다고 한다. 닥터 장이 내일부터 여름휴가를 가기 때문에 내일부터 진료를 할 수 없어 예약 환자들에게 진료일을 연기한다고 전화하고 있었단다. 신통력이 있는 건가? 예지력이 있는 건가? ㅎㅎㅎㅎ. 어쨌든 거참 거시기하다. 전시회 가서 그림 구경하고 제자들과 밥먹고 웃고..

기본 2021.08.18

유채꽃 이야기

한국 출장에서 돌아오니 타운뉴스 화단 한쪽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던 유채꽃은 다 지고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다행히 직장 동료 한 분이 씨앗을 받아 두었다며 건네주었다. 지난봄에 예쁜 꽃을 뽐내던 유채는 씨앗만 남겨 놓고 떠났다. 우리네 인간이 나이 들면 늙고 병들어 앓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처럼, 꽃을 피우며 자신의 생명력을 자랑하던 식물이 서서히 시들다 사라지는 것도 자명한 자연의 섭리이다. 그런데도 유난히 가슴이 시린 이유는 비닐봉지에 담긴 작은 씨앗들이 고국에 머물면서 만났던 친구들의 모습과 교차되면서 만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번 한국 방문 기간 중에 만난 중·고등학교 동창생 20여 명 중 다섯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직업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 다섯 명 중 두 명은 자기 사업을 하..

기본 2021.08.15

복수국적

96일간의 고국방문을 마치고 지난 8월 10일 귀국했다. '어디에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에 역점을 두고 살았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어디에 사느냐'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어떻게'가 중요하겠지만 '어디에'도 무시해서는 안 되는 요소라는 얘기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특정 지역에 모여 사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조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면서 고국에 돌아가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다가 이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국생활을 꿈꾸었으리라. 더군다나 4~5년 전부터 한국정부는 65세 이상자에게 복수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복수국적을 지닌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으며..

기본 2021.08.13

2021년 와흘리 아이와 대치동 아이

몇가지 해결할 일이 있어 14박 15일의 격리생활을 감수하면서 한국을 찾았다. 격리생활을 마치자마자 하나 둘 볼일을 보면서 가끔 친구들 만나는 낙으로 지내고 있다. 5인 이상 모이는 것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어 최대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넷에 불과하지만 오히려 서너 명이 만나니 더 오붓하고 좋았다. 지난 월요일, 제주도 와흘리에 사는 친구가 모처럼 상경했다고 연락이 와서 또 다른 친구도 불러내어 셋이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아들네 식구들과 같이 지내고 있다는 제주도 친구는 오전에는 근처 휴양림이나 오름, 제주 올레길, 한라산 둘레길 등을 걷고 하교시간에 맞춰 학교로 가서 손자를 픽업하고 있다고 했다. 5학년인 손자는 정규 과정을 마치고 방과후 교실에서 각종 특별활동을 하고 보통 3시 20분에서 4시 사..

기본 2021.06.18

남산길 산책

친구와 남산길을 걸었다. 친구가 남산길을 걷자고 하자마자 신이 났다. 남산에 오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서울에서 다녔고, 대학 졸업 후에도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심지어 남산에 있는 대학에 다녔음에도 남산에 오른 적이 없다. 기껏 남산에 오른 것이라고는 초등학교 때 당시 남산 입구에 있던 드라마센터에서 우리 반 친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화랑관창이라는 연극을 보러 왔던 것이 전부다. 친구는 전철 6호선 한강진역 1번 출구에서 만나자고 했다. 친구의 안내로 한강진역 1번 출구 근처에 있는 용산국제학교를 끼고 돌아 남산길로 접어들었다. 남산은 초입부터 서울타워까지 그리고 내려오는 전 구간이 말끔하고 깨끗했다. 그 어디에도 휴지 한 조각 버려져 있지 않았다. 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기본 2021.06.05

균형 잡힌 마음

한국 도착 후 14박 15일간의 격리생활을 마친 다음날, 한국 비구니회관 법룡사에서 모임이 있었다. 본각 스님, 석광훈 성공회 신부, 미국에서 온 전진효 풀러턴 아가페교회 선교목사, 김종국 장로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생명, 삶, 그리고 현재'라는 주제를 놓고 좌담의 시간을 가졌다. 중간에 불교 신도인 안영모 씨가 참여했다. 모두 필자와 인연이 있는 분들이다. 본각과 안영모, 김종국은 대학에서 만난 철학과 동창생들이고, 석광훈 신부는 중·고등학교 동창, 전 목사는 미국에서 만난 친구이다. 나의 귀국에 맞춰 만나서 뜻있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로 본각스님이 마련한 자리였다. 필자의 진행으로 시작된 좌담회는 시작부터 참가자들의 열정적인 발언과 경험담이 장내를 후끈 달궈 몇 시에 마칠 것인가를 미리 정하지 ..

기본 2021.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