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부터 전화가 하루에 한번씩 걸려 오는 것이었다.
전화 받는 직원이 출장 중이라고
얘기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기 때문에 전화를 받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신분증은 돌려 받아야 하고.....
그렇게 1주일 정도 흘러간 뒤
나는 결국 그 경찰관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신분증을 찾아 가셔야죠.
예. 그렇잖아도 만나려 했는데 출장중이었습니다.
언제 시간이 괜찮으신지요?
편하신 곳으로 제가 나가겠습니다.
워커힐에서 뵐까요?
아닙니다. 잠실로 오시지요. 어느 길의 ###장 1층에
다방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6시경에 뵙지요.
알겠습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지난 일주일동안
내 무용담 아닌 무용담을 들어 주었던
직장 동료들에게 전화의 내용을 얘기하자
학설이 여러가지로 나타났다.
백만원은 줘야 하지 않겠는가
오십만원이면 된다.
적어도 한 삼십만원은 갖고 나가서 줘야 한다
이미 음주운전으로 적발할 생각은 없고
돈을 받아 먹으려는 수작이니까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수중에 돈이라고는 달랑 십만원 뿐이었다.
돈 꾸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내가
돈을 꿀리가 있는가
그냥 십만원만 달랑 들고 나갔다.
참, 십만원짜리 구두표도 한장있었다.
약속 장소로 가보니
러브호텔이었다.
일층 다방에서 만나서
화장실쪽 옆문으로 2층 객실로 올라 갈 수 있는
본시 숙박이 목적이 아니고 사랑에 굶주린 이들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방,
비밀스런 만남이 필요한 이들의 휴식 공간을
제공해 주는 러브호텔이었다.
잠시 기다리니 잘생긴 체격이 건장한 사람이
내게로 다가 오더니 안녕하십니까하고 자리에 앉는다.
반갑습니다.
그날 많이 취하셨지요.
무슨 소리닙까? 난 술 안먹었습니다.
어이가 없는지 대답이 없다.
여깄습니다.
신분증을 건네 준다.
일단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어데가서 대포나 한잔 합 시다. 나 오늘은 차도 안갖고 나왔고.
이렇게 해서 우리는 명일동 근처의 낙지 잘하는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낙지에 소주 두어병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우리는 서로를 잘 아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그분 이름은 송##, 나이는 나보다 서너살 아래
나를 형님으로 모시겠단다. 자신의 고민들을 털어 놓는데
지금 기억에 남는 그분의 고민은 딸이 셋있는데-젊은 사람이
애도 많이 낳았다-아들 낳기 위해 더 나아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심각하게 해결책을 얘기해 주었다.
무조건 낳아야 한다. 안 낳고 고민하지 말고 무조건 낳아서
키워야 한다고 또 딸이면 어떻게 하냐는 그에게
딸이면 어떠냐 꼭 낳아라. 그리고 아들 낳을 때까지
계속해서 낳아라.
소주가 4병째 되었을 때, 송순경이 한잔 사겠다고 잠실로 가잔다. 그래 네 동네에 가서 한잔 더하자.
우리는 잠실로 갔다.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차도 팔고 술도 파는
그런 찻집으로 기억된다. 카페라고 하나..
아무튼 우리는 그곳에서 2차를 하고 헤어졌다.
맥주로
그 이후로 난 송순경을 만나지 못했다.
새 아우가 생겨 가끔은 보고 싶고 그리워 했으나
연락을 하지 못했다.
-1991년,1992년,1993년,
내 인생의 혹독한 시련기였던 탓에 어떻게 그때를
지났는지조차 기억에 없다-
그가 그 이후에 아이를 얼마나 더 낳았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 이후에 내가 그에게 형님 역할을 한 것은
우리가 만났던 그해 1990년 경찰의 날에
축 경찰의 날이라고 축전을 보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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