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일찍 출근한 날

Cmaker 2021. 2. 5. 10:23

   

출근길 라디오에서는 각종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CSU LA 캠퍼스를 코로나 19 백신 접종을 위한 장소로 선정했다면서 16일부터 접종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접종을 쉽게 하기 위한 배려라고 했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진작 그렇게 했어야 했다. 이어서 설을 맞이해서 한국계 은행들이 한국으로 송금하려는 사람들에게 요금을 받지 않고 송금을 해준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새해 인사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설이라니.

 

평소보다 일찍 도착했다. 곧장 사무실로 올라가지 않고 앞뜰로 갔다. 제법 따뜻해졌지만 아직 바람은 차다. 잔디 틈바구니에서 머리를 치켜세우고 활짝 핀 노란 꽃봉오리들이 여기저기서 반겨준다. 사람이 심지 않았지만 저 혼자 자라 꽃을 피워내고 진 후에 씨를 남겨 세상에 퍼트리는 자생력 강한 꽃이다. 비록 제멋대로 나서 자라고 있지만 샛노란 그 꽃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잔디와 건물 사이에 이름도 알려 하지 않고 지난 가을 사다가 심었던 꽃 중의 일부가 여전히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정성껏 돌보았지만 일부는 시들고 생명력을 잃은 지 오래다. 꽃들의 색상이 화려하다. 보랏빛 작은 꽃들, 빨갛게 물들은 꽃잎을 두텁게 모아 핀 꽃들, 연보라색 꽃잎을 꼭 다물고 봄을 기다리는 꽃. 그 외에도 각종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있다. 손바닥만한 뜰에 스스로 피고 지는 꽃들과 사람이 심어 놓은 꽃들이 제각기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바쁘게 왔다 갔다 하다 보니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을 눈으로 보면서도 마음으로는 보지 못하며 살고 있었다. 오늘 여유로운 시간이 생긴 것은 봄이 가까이 왔음을 느껴보라는 대자연의 깊은 뜻이리라.

 

한 귀퉁이에는 무엇인지 모르고 뿌린 씨앗들이 새싹을 내밀고 있다. 성급하게 고개를 쑤욱 내밀고 있는 것들을 보니 영락없는 열무다. 지난해 말에 4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 방을 치우다가 편지봉투에 씨앗이 담겨 있어 가져다 뿌렸는데 열무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왜 그 씨앗을 뿌리지 않고 모셔 두었을까? 아버지가 남겨둔 그 열무의 싹들이 추운 겨울을 준비의 시간으로 삼고 버티다가 따뜻한 기온이 감지되면서 앞 다투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가는 세월은 늘 아쉽다. 뒤돌아보느라 오는 세월을 즐기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지난 일에 집착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겨울에 깊이 빠져 있었나 보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 아닌가. 그런데도 겨울에 익숙해져 있던 몸과 마음이 어느새 다가온 봄을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움츠리고 사는 동안 화사한 봄이 바로 옆에 와 있었다.

 

행복도 이 봄처럼 슬며시 왔다 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마음의 여유가 없어 어느새 곁에 와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친다면 무슨 소용인가. 과거의 좋았던 날이나 힘들었던 기억에 집착하며 사는 것은 아닌가,

혹은,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과거나 미래만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면 오늘, 지금 이 순간을 무심히 지나치는 것이 아닐까? 씨앗을 모셔 두기보다 뿌려야 한다. 그래야 그 열매를 맛볼 수 있지 않은가.

 

오늘 행복해야 한다. 지금 봄을 느끼고 즐겨야 한다. 봄은 영원하지 않다. 잠깐 왔다가 사라진다. 물론 올봄이 가고 나면 내년에 또 봄이 온다. 그러나 내년의 봄은 올해의 봄과 같지 않다. 이번 봄은 우리 인생에 단 한 번 경험하는 유일한 시간이다.

지금 곁으로 다가 오고 있는 봄을 만끽하자. 봄의 기운을 흠뻑 들이키고 온 몸으로 느끼고 즐기며 코로나 바이러스로 웅크렸던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우자.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우리도 더불어 흘러간다. 거대한 대자연의 순환 속에 찾아오는 이 봄을 무심히 흘려보내지 말아야 할 빛나는 행복이다.

 

코로나 19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숨을 거두었던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가. 사업상 겪는 피해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겪고 있는 심리적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루 빨리 코로나19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예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마음껏 웃고 이야기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해가 거듭될수록 설날에 대한 추억이 더 뚜렷해진다. 늘 근엄한 표정을 잃지 않았던 아버지도 설날 아침에는 활짝 웃으며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나눠주셨다. 부모님은 세상을 떠났고, 아이들은 다 컸다. 손주들도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세뱃돈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어릴 적 외할머니가 정성스럽게 차려주셨던 설음식들이 그립다. 떡국, 갈비찜, 찹쌀떡, 유과, 식혜와 수정과....

 

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두 직원이 앞 다투어 주차장에 들어서고 있다. 오늘 또 새로운 일과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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