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7일) 헝팅턴 비치를 찾았다. 아침식사를 하고 바닷가를 걷다가 스마트폰을 넣는 케이스를 파는 가게에 잠시 멈췄다. 가격을 보니 하나에 20달러였다. 멋진 바닷가 풍경으로 장식된 케이스를 하나 사고 싶었다. 평소,현재 갖고 있는 것이 금이 가고 일부가 깨졌기 때문에 교체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과연 내 폰에 맞는 사이즈가 있을까 하고 이것저것을 끼워보니 다행스럽게도 맞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두 개를 들고 비교해 보기도 하고 헌 것을 빼고 새 것으로 교체해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런대로 현재 것이 깨졌고 금이 갔지만 이제 곧 새로운 모델의 스마트폰으로 교체할 시기인데 그때 가서 새 폰에 맞는 케이스를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점을 나왔다. 몇 걸음 걷다가 옛 케이스를 다시 전화기에 끼우려고 하니 전화기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생각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미 케이스에 전화기가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또 다른 케이스를 끼우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상점에서 이것저것 고르면서 내 전화기 케이스를 뒷주머니에 넣는다는 것이 그 상점의 것을 넣고 내 전화기에는 그대로 케이스를 끼운 채 나와서 뒷주머니의 것을 전화기에 끼우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그때 잠깐 ‘그냥 가도 주인은 모를 텐데 그대로 갈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가버리면 그만 아닌가’. 그때 내 안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아니 네가 그런 사람이었냐? 겨우 그 정도의 인간이었어?’ 짧은 순간이지만 부끄러웠다. 한 없이.
다시 상점으로 들어가 나도 모르게 들고 나왔다며 진열한 곳에 걸어 두고 나왔다. 속이 후련했다.
바로 그때 요즘 한국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있는 사건이 떠올랐다. 삼성증권 사태, 삼성증권 사건, 혹은 삼성증권 사고라고도 칭하는 경제사건이다. 또 누군가가 한 건하려다가 대형사고를 터트렸나보다 생각하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각종 언론들을 비롯해 인터넷 등에서 요란스럽게 떠드는 데도 무심했었던 그 사건이 그때 떠오른 것이다.
비치에서 돌아오자마자 사건의 개요를 살펴보았다.
지난 6일 삼성 우리사주 조합원인 직원 2,018명에게 현금 배당 28억1000만원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담당 직원의 실수로 주당 1,000원을 1,000주로 잘못 입금했다. 이로 인해 지급될 총 3,980만원의 배당금이 무려 112조 원어치 주식으로 뿌려졌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삼성증권은 이 사실을 직원에게 전파했고 착오 주식 매도 금지를 공지했다. 하지만 그사이 직원 16명은 이미 잘못 입고된 주식 501만 3,000주를 주식시장에 매도했다. 이로 인해 갑작스럽게 주식이 시장에 대거 풀리면서 삼성증권 주가는 한때 전일 종가 대비 약 12%가량 급락(3만9,800원→3만5,150원)했다.
한 직원의 사소한 실수가 초래한 사고의 충격은 일파만파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있지도 않은 주식, '유령주식'이 실제 판매로까지 이어졌다. 보유하지도 않는 주식을 판매하려 했을 때 회사와 금융당국의 감시 시스템이 가동하지 않았다. 증권사 직원이 마음만 먹으면 가공의 주식을 찍어낼 수 있다는 방증으로 여겨지면서 부정적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요즈음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면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란을 이용해야 한다. 6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란에는 '삼성증권 시스템 규제와 공매도 금지'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랐다. 청원인은 "(삼성증권 시스템은) 회사에 없는 주식을 배당하고 없는 주식이 유통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렇다면 공매도는 대차 없이 주식도 없이 그냥 팔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며 "증권사가 마음대로 주식을 찍어내고 파는 것은 사기 아닌가요? 금감원은 이런 일 감시하라고 있는 곳 아닌가요? 짜고 치는 고스톱인가요?"라고 지적했다. 이어 "서민만 당하는 공매도 꼭 폐지해 주시고 이번 계기로 증권사에 대대적인 조치를 취하고 조사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해당 청원은 10일 드디어 20만을 돌파했다. 20만이 넘었기 때문에 곧 청와대의 답변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엄격히 따져보면 이번 사건은 공매도가 핵심적인 사안은 아니다. 삼성증권이 실수로 잘못 기재 했고, 그것들이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로 시장으로 팔았다는 것이 핵심 포인트이다. 공매도가 가능한 시스템도 문제이긴 하지만 '유령주식'임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던 직원들이 판매에 나선 행태가 더 큰 문제가 아닌가.
나도 모르게 내 주머니 들어온 스마트 폰 케이스를 돌려주지 않고 그대로 왔다면 예쁜 케이스를 갖게 되어 즐거웠을지 모르지만 그로 인한 내 마음속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빨리 돌려줌으로써 나는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2,018명이나 되는 많은 직원들이 갑자기 엄청난 금액의 주식을 배당받았으나 그중에 고작 16명만이 팔아치웠을 뿐 나머지 2,002명은 팔지 않았다. 이를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들 모두.
증권시장에서 일하는 직업인으로서 직업윤리의식이 부재한 것을 넘어서서 한 인간으로서도 어처구니 없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것이 밝혀질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러했다는 것은 어쩌면 직원들 몇몇이 짜고 저지른 일인 아닌가 의심되기도 하나 그 정도로까지 생각하기는 싫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다.
만일 2018명 전원이 한 사람도 이를 팔지 않고 그대로 정정되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일이 되었을까?
후속 조처가 계속 진행되고 있으니 아직 이 사건이 해결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이 글을 쓴 후에 이루어지고 있는 내용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
삼성증권은 '유령주식' 사태로 피해를 본 일반투자자들에 대해 사고 당일인 지난 6일, 주식을 판 모든 투자자에게 당일 최고가 기준으로 보상하기로 했다.
삼성증권은 보상대상을 6일 하루 전체로, 피해 차액도 당일 장중 최고가인 주당 3만 9800원을 기준으로 적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증권 주식 100주를 당일 최저가였던 3만 5150원에 팔았다면 차액인 4650원에 100주를 곱해 46만 5천원을 돌려받는다.
다만 이날 주가가 떨어지자 일단 팔았다가 당일 다시 매수한 경우는 재매수한 가격에서 처음 매도가를 뺀 만큼을 돌려받는다. 증권사의 매매수수료와 증권거래세 등 각종 비용도 함께 보상받는다.
삼성증권이 법원에서 인정될 수 있는 최대로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유리하게 보상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삼성증권이 법적 소송이나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미 회사 신뢰도가 상당히 추락한 상황이라, 소송을 떠나 피해자를 제대로 구제하지 않을 경우 닥쳐올 여론의 질타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증권은 피해자를 최대한 보상하는 것이 향후 발생할 법적 비용보다 더 적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피해 투자자 접수는 어제까지 600여 건에 육박했고 이중 실제 매매손실 보상 요구는 107건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다. 6일 이후에도 삼성증권 주가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뒤늦게 주식을 팔았거나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평가 손실을 본 투자자들의 불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과제로 남아 있다. 삼성증권 주가 하락이 지속될 경우, 투자자들이 보상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보상기준은 개인투자자에 한정된 것이어서 연기금이나 외국인이 피해보상을 요청할 경우 여기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가 우리 증권거래 시스템 문제를 드러냈는데, 12일부터 다른 증권사들도 현장점검 이뤄진다.
금융감독원은 오늘부터 우리사주 조합을 운영하는 15개 상장증권사를 현장 점검한다. 삼성증권 사고를 계기로 증권사 우리사주조합 배당시스템에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서이며 교보, 대신, 미래에셋대우, 메리츠, NH 등 15곳으로 17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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