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났다. 아무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이 환하게 켜졌으나 그 누구도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 있었다. 출연진, 제작진, 심지어 배우들 매니저들의 이름까지 자막으로 오르고 있었으나 나 역시 엉덩이를 쉽게 들지 못했다.
경성 반도호텔 악단장 ‘강옥’(황정민)과 그의 딸 ‘소희’(김수안). 그리고 종로 일대를 주름잡던 주먹 ‘칠성’(소지섭), 온갖 고초를 겪으며 살아 온 위안부 출신 ‘말년’(이정현) 등 각기 다른 사연을 품은 조선인들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일본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들이 함께 탄 배가 도착한 곳은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해 노동자로 착취하고 있던 ‘지옥섬’ 군함도였다.
남자들은 매일 해저 1,000 미터 깊이의 막장 속에서 가스 폭발의 위험을 감수하며 노역을 하고 여자들은 유곽에서 몸을 팔아야 하는 유녀(遊女)로 전락한다. 강옥은 딸 소희와 자신의 안녕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간다. 칠성과 말년도 각자의 생존을 위해 고통스럽게 이어간다.
한편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자 광복군 소속 OSS 요원 ‘무영’(송중기)은 독립운동의 주요인사인 ‘학철’(이경영)을 구출하라는 지시를 받고 군함도에 합류한다. 그러나 학철은 독립을 위해 투쟁한 인물이 아니라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조선인 광부들을 이용했던 철저한 위선자였음이 밝혀진다.
일본 전역에 미군의 폭격이 시작되자 일본 수뇌부들은 군함도에서 저지른 온갖 만행을 은폐하기 위해 조선인들을 갱도에 가둔 채 폭파하려고 한다. 이를 알게된 무영은, 강옥, 칠성, 말년을 비롯한 조선인 모두와 군함도를 빠져나가기로 결심한다. 처절한 전투를 거치면서 우리의 주인공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탈출에 성공한 이들이 배에서 원폭투하로 피어오르는 장대함을 보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인터넷 여기저기에 군함도에 대한 감상평이 많이 올라와 있다. 어느 영화나 그렇듯이 비판적인 시각도 있고 호평도 있었다. 지나치게 많은 홍보와 애국적인 영화라고 선전한 것에 비해 그 내용은 빈약했다는 비판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비판하는 이들은 역사적 아픔에 대한 접근과 이를 어떻게 극화했는가에 큰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그들은 상업영화의 속성에 부딪혀 식상했고, 비판적 글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시각으로 어떤 사명을 띤 영화로 봐서는 곤란하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 아닌가. 즉 재미로 보는 킬링타임용 영화로는 손색이 없었다는 말이다. 하물며 크게 기대를 걸지 않고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으로 영화 시작 2시간 전쯤에 친구의 연락을 받고 인터넷에 들어가 표를 예매하고 급히 달려간 사람에게 큰 기대가 있을 턱이 없지 않은가.
역사적인 사실로 그 내용 자체가 식민지 식민들의 처절한 삶과 돈벌이에 혈안이 된 자들에 관한 것이기에 전체적으로 어둡고 칙칙할 수밖에 없는 영화이나 그 속에 적절한 유머와 인간미를 가미해서 끌어가고 있어 나름 재미를 주고 있다.
출연 배우들이 중량급이라 산만한 역할 분담으로 영화의 집중도가 떨어지거나 그들의 역할이 다소 약화될까 우려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각 배우들의 존재감이 훼손되지 않도록 잘 처리했다. 특히 나이 어린 배우 김수안은 관객들이 배우들과 하나 되어 가슴 졸이고 아파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려 할 때마다 웃음 짓게 하는 역할을 잘 했다.
스토리에 있어서도 영화 전체를 스토리로 엮어 깊게 뿌리 내리기에도 벅찬 시간임에도 영화는 물론 배우 각 개인 스토리의 전개에 있어서도 짧은 시간에 무리 없이 간략하게 잘 만들었다.
리드미컬하고 박진감 있는 극의 전개와 리얼한 사운드를 통해 영화의 몰입도를 높여주고 있다. 거기다 상당히 디테일하고 웅장한 규모의 세트장은 한국영화가 그렇지 하는 시각을 갖고 온 관객들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영화의 배경이 된 군함도는 나가사키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8km 떨어진 해상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섬의 둘레가 콘크리트로 덮여 있고 고층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아파트가 늘어선 모습이 마치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1890년 매입해 1974년까지 석탄 탄광을 운영했으며 1940년부터 1945년까지 노동자를 강제 징용하여 채탄 노역을 시켰다. 당시 식민지인었던 조선인들도 강제 노역에 동원됐으며 이들 사이에서 군함도는 혹독한 노동 조건 탓에 ‘감옥섬’, ‘지옥섬’으로 불렸다.
1986년 일본의 시민단체인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에서 사료로 제시한 화장 매장 인허증에 따르면, 1925년부터 1945년 사이 군함도 탄광에서 총 1,295명이 숨졌으며 이중 122명이 조선인이었다. 하지만 군함도 탄광에서 강제 노역에 동원된 조선인이 총 몇 명이었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군함도는 1974년 탄광 폐쇄로 모든 거주자가 떠난 이후 지금까지 무인도로 남아 있다. 2009년부터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일본이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하자 한국 정부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한국 정부는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전쟁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할 수 없으며 설사 등재한다고 해도 조선인 강제 징용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은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에서 노역을 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가 징용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발언했다. 그 후 한국 정부는 군함도에 관광객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한국인 강제 징용과 관련한 내용을 담은 안내판 설치를 요구했고, 일본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군함도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군함도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직후 다시 강제 징용을 부인하고 나선 것은 물론, 군함도에는 조선인 강제 징용과 관련된 어떠한 안내문도 내 걸지 않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5일 일본 종전일을 맞아 열린 추도식에서 5년 연속 일본의 전쟁 가해 사실에 대한 반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시바야마 마사히코 자민당 통재특별보좌를 통해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공물 대금을 납부하고 “참배에 갈 수 없어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다. 일본의 역사 왜곡과 후안무치의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나아질 징후보다 악화될 기미가 더 많아 보여 안타깝기만 하다.
영화 군함도는 인간 내면에 잠재해 있는 이기심, 위선, 증오, 자만, 이로 인한 음습함이 지배하는 가운데 사랑, 인간애, 조국애, 애국심 등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현실로 돌아오기까지 제법 시간이 필요했다.
엄지를 척 들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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