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방문

만날 때마다 자기 불행을 노래하는 친구

Cmaker 2021. 7. 26. 08:53
만나기만 하면 자신의 불행에 대해 늘어 놓는 친구가 있다. 친구가 나보다 세살 위이다. 불고기에 냉면이 먹고 싶다고 해서 종로의 한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시간이 지났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30여분 지나서 나타났다. 늦은 것이 자기의 잘못이 아니다. 식당이 대로변에 있지 않고 이렇게 좁은 골목에 있는 것이 문제다. 자기가 식당을 찾느라고 40여분을 헤매게 한 것은 완전히 식당의 잘못이다.


불고기와 냉면을 시켰다. 친구가 봉투를 하나 꺼내더니 300달러라면서 내게 내밀었다. 난 받지 않고 뭐냐고 물었다. 작년에 내게 미국사는 자기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조의금을 대신 내달라고 했는데 그 돈이라고 했다. 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 그런 적이 있다. 아니 그런데 300달러인지는 어떻게 아냐고 물으니 미국사는 친구가 너무 많은 돈을 조의금으로 내었다면서 전화로 얘기해서 알았다고 했다. 난 친구가 조의금을 내달라고 해서 얼마나 내냐고 묻지도 않고 친한 친구냐고 묻고 그렇다고해서 300달러를 장례식장도 아니고 그 친구집으로 직접 갖다 준 적이 있다. 마침 그 친구가 우리 회사 근처에 살고 있었다.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친구에게 그냥 도로 넣어두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친구에게 주려고 준비한 봉투를 내밀었다. 30만 원이 들은 봉투다. 여러해 전부터 친구를 만날 때마다 그가 불행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친구에게 주어왔다. 친구는 괜찮다고 했으나 남들이 보니까 빨리 넣어두라고 했다. 친구는 나의 강권에 못이겨 마지 못해 두 봉투를 다 챙겨 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불행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년 전 만났을 때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100세 가까이 살고 계신 어머니, 형제자매들 이야기를 끝없이 이어갔다. 이야기 속의 중심은 언제나 자신은 희생하고 있으며, 배려하고 있다. 그런데 형제 자매들은 언제나 자기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얘기가 끝날 것 같은데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렇게 불행하기도 싶지 않다. 언제 들어도 스토리는 하나다. 십여 년 전과 전혀 바뀌지 않았다. 등장인물도 똑 같고 심지어 표정, 손짓, 몸짓도 똑같다.


그런데 친구들 얘기할 때는 눈을 반짝이며 신이나서 그들이 자기에게 베풀고 있는 배려를 얘기한다. 미국에 살면서 자기 가족들 선물까지 챙겨서 보내주는 친구, 자기가 아플 때 직접 음식을 해다주며 보살펴 준 친구 얘기, 다 2년 전에도 들었던 얘기다.


도저히 더 참으며 얘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나가서 커피 한 잔을 하기로 하고 식당을 나왔다. 커피를 마시면서도 그는 여전히 자기는 불행하다고 했다. 그가 좀 불편해 할 것을 알면서 말을 끊었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의 불행은 남과 비교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당신처럼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냐? 어머니가 장수하셔서 좋고, 6명이나 되는 형제자매들과 아웅다웅하면서 살고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형제들 하나 없이 평생 사는 사람들도 꽤 많다. 


세상에 100% 만족한 삶은 없다. 석가, 예수, 공자도  참  힘들게 살았다. 남들이 보면 꽤 불행해 보일지 몰라도 나름대로 가치있는 삶을 살았기에 죽어서도 따르는 무리들이 세상을 덮고 있지 않은가? 


주변을 돌아보면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냐? 당신은 좋은 집에서 아들, 며느리, 그리고 손자와 잘 살고 있지 않은가? 


만나면 가능한한 빨리 헤어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 이 친구가 바로 그 사람이다. 커피를 마시는 둥 마는 둥하고 그가 사는 곳으로 가는 버스 정류소에 모셔다 드리고 그가 한 말들 속에 내게 도움이 될만한 말들을 추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나는 지하철을 타러 터덜터덜 걸어갔다. 사람들과 만났을 때 그 사람처처럼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더 굳히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남의 불행을 듣는데 2시간이나 허비한다는 것은 정말 큰 불행이었다.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하면 2시간 30분. 


과연 다음에 와서도 또 이 친구를 만날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ㅎㅎㅎㅎㅎ. 왜? 언젠가는 그도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리라 믿기에? 그의 불행을 듣다보면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도 한 요인이 아닐까? 


나는 정말 행복하다. 형제자매들과도 별문제 없고,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언제나 뵐 수 있고-내 마음속에 언제나 함께 하시니까- 자식들 모두 건강하게 잘 살고 있지 않은가? 13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손자가 있지만 그 또한 천국에서 행복할 것이고, 그를 기념하는 나무가 올림픽 공원 입구에서 잘 자라고 있다. 사업도 코로나로 어렵고 힘들지만 그런대로 견디어내고 있지 않은가?


진심으로 그가 불행 속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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