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야 산다.
넷이 모여 하룻밤을 자는둥 마는둥 보내고 캠프에서 오전 4시쯤 일어나 어젯밤 먹다 남긴 삼계탕으로 닭죽을 쑤어 5시에 아침을 먹고 6시경 나왔다.
원래 계획은 오봉을 지나 여성봉을 거쳐 송추계곡으로 넘어가 ‘전’을 잘 부치는 집에서 전을 먹고 탕수육과 짜장 짬뽕이 유명한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고 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늘을 찾아 계곡 속을 누비며 이곳저곳 헤매다가 간식으로 준비해온-일행중 80살 자신 분의 83세 누님이 정성껏 만들어 보내주신- 샌드위치를 두 차례에 걸쳐 나눠 먹다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계곡 흐르는 물속에 발담그며 놀다가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오봉을 거쳐 송추 계곡으로 넘어가서 전을 먹고 짜장면을 먹기에는 배가 너무 부르다. 그냥 여기 이 그늘 속에서 쉬었다 가자.
그때 내가 말했다. 지금 시각이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고 배도 부르니 내친 김에 수락산으로 가서 올라갔다 오자. 한 분이 맞장구를 쳐준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등반대장께서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86세이신 한미삼지회 회장께서 여러분의 의견에 맞기겠다고 했다. 그때 아까 내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를 하셨던 분이 “냉정히 생각해보니 수락산은 도봉산과 달리 땡볕일텐데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잘 생각해보자”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의견을 긴급히 철회했다. 그리하여 그냥 아까 남겨 두었던 샌드위치를 더 먹고 내려 가기로 했다.
산을 내려와 전철 타러 역으로 가는 도중 회장님께서 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 하고 가자하여 그럴듯한 집을 찾아가 앉았다. 막걸리에 빈대떡을 시키니 아주 근사한 반찬들까지 대령시켜 주어 이미 부른 배의 사정을 잊고 다시 덤벼 들었다.
막걸리 세 통에 빈대떡 한 점과 정성으로 만들어준 반찬들까지 싹 비우고 앞으로의 ‘한미삼지회’의 앞날에 대해 논의했다. 통 술을 마시지 않던 분도 한 잔 하시고 해서 우린 막걸리 세 통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식당문을 나설 수 있었다.
역으로 가는 길에 복권을 2만원 어치 샀다. 그리고 한 분이 보관하기로 했다. 당첨되면 한미삼지회를 위해서 쓰던 회원들끼리 나누던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했다.
전철을 타고 한 분은 두 정거장 가서 내리고 셋은 군자역에서 내려 갈아타고 천호역에서 또 갈아탔다.
그리고 내가 제일 먼저 내리고 한 분이 몇 정거장 더 가서 내리고 회장님은 또 갈아타고 서너 정거장 더 가셔야 한다. 전철에서 내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를 10여분 정도 지나고 있었다. 일찍 시작한 하루는 이렇게 더디게 간다. ㅎㅎㅎㅎ.
그러나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 연속으로 이어졌던 1박 2일은 눈깜빡 할 사이에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