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경복궁에서 찍은 빛바랜 흑백 사진이 한 장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손바닥 반만한 크기의 작은 사진이다. 내 옷차림으로 보아 초등학교 1학년 가을에 찍은 사진인 듯하다. 자리를 펴고 앉은 사람들 뒤로 경회루가 보인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사진 한 장이 어릴 적부터 경복궁을 친숙한 곳으로 느끼게 해주었었다. 그런 내 사진에 관해 얘기한 적도 없는데 친구는 덕수궁도 아니고, 창경궁, 창덕궁, 경희궁도 아닌 경복궁에서 만나자고 했다. 친구와 약속을 한 뒤 경복궁에 대해 공부했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태조 이성계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경복궁을 짓는 일이었다. 경복궁은 5대 궁궐 중 가장 먼저 지어졌으나 이곳에 왕들이 머문 기간은 1405년(태종 5년) 지어진 일종의 별궁인 창덕궁(昌德宮)에 비해 훨씬 짧았다. 경복궁에는 세종·문종·단종이 주로 기거했으며, 왕자의 난으로 인한 개성천도 기간 동안에는 빈 궁궐이었다. 왕위를 빼앗은 세조는 경복궁에 머무는 것이 편치 않았던지 창덕궁에 기거했다. 따라서 고종이 복원하기 전까지 경복궁은 임금이 살지 않는 이름만 궁궐이었다.
경복궁 내부는 정문인 광화문으로부터 홍례문과 근정문과 향오문을 일직선으로 배치했다. 이 사이 공간은 정사를 보고 의식을 행하는 업무공간이었다. 향오문 뒤에는 임금의 침전과 왕비와 후궁, 궁녀 등의 침소를 비롯한 제반시설이 자리한 후원이 자리잡고 있다.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고, 이에 대한 복구가 거듭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인해 모든 건물이 불탄 후 270여 년간은 폐허상태로 있다가 1865년(고종 2년) 대규모 재건공사가 시작되었다. 1868년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왔으나, 1876년에 일어난 대규모 화재로 다시 창덕궁으로 옮겼다가 1888년 재차 옮기는 등 여러 차례의 피해와 복구가 거듭되었다. 1904년 이곳에 통감부가 들어섰고, 조선총독부 건물을 건립하면서 본래의 모습을 완전히 잃었다가 1996년 12월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후 일부를 복원하였고, 아직도 공사는 진행중이다. 현재 다양한 국보급, 보물급 건축물과 석조문화재 등을 보유하고 있다.
친구는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가리키며 실감나게 설명했다. 경복궁을 돌아보는 동안 조선의 역사, 조선의 흥망성쇠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한 밤중에 침소에 들이닥친 일본군인들이 잠자는 민비를 끌어내어 살해하고 그 앞의 공터에서 불에 태워 죽였다는 대목에서는 비분강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대국들이 세력다툼을 벌이는 틈바구니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약소국의 설움이 밀려오면서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되었다. 과연 오늘의 우리는 어떠한가?
경복궁 근처 식당에서 곰탕을 한 그릇 시켜 먹으며 막걸리를 한 잔 마셨다. 식사를 하면 막걸리가 무제한 공짜라고 했다.
TV에서는 2021년 국력이 강한 나라 순위를 전하고 있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영국, 일본, 프랑스에 이어 대한민국이 8위라고 했다. 이 조사는 펜실베니아 대학 Wharton School과 몇몇 기관들이 협력하여 세계 78개국에서 17,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각 나라의 인구, 'GDP', 'GDP PC, PPP'에 근거한 것이다. 또, 미국의 군사력 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군사력은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일본 다음으로 6위라고 했다.
경회루를 비롯한 일부 건물들을 역사적 고증에 입각해서 복구 내지는 복원하기 위해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2021년 대한민국의 위상처럼 경복궁이 아름다운 궁궐을 갖춘 멋진 공원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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