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2020년) 2월, 한국여행을 몇 개월 앞두고 여권을 챙겨 두려고 했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다. 평소에 여권을 넣어두는 여행용 가방 속을 샅샅이 살펴보다가 아주 뒤집어 흔들어도 나오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 두었음직한 곳을 구석구석 살펴보았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분명히 어딘가에 잘 두었을 텐데 찾을 길이 없으니 미치고 펄쩍 뛸 일이었다.
다시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구비서류와 한국 주민등록증, 미국여권 등을 다 챙겨서 LA 총영사관에 갔다. 주민등록증과 미국여권을 제시하고, 여권 재발급 신청서를 작성해서 준비해간 서류와 함께 접수하니 한 달 후에 와서 찾아가라고 했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었다.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했고, 국가 차원에서 해외여행을 가급적 삼가라 했다.
5월 4일 출발하기 위해 발권했던 항공권을 무기한 연기했다. 여권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한 달쯤 전(2021년 2월초)에 갑자기 여권을 신청했던 일이 떠올랐다. 총영사관에 전화했다. 이름을 대니 왜 이렇게 오랫동안 찾아가지 않았냐고 하면서 아무 때나 와서 찾아가라고 했다. LA까지 운전하고 갈 일이 끔찍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2021년 3월 3일(수) 총영사관을 찾았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이다.
총영사관 들어가기 위해 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차례가 되었다. 경비원이 주머니에 있는 것을 모두 꺼내 넣으라며 플라스틱 통을 내밀었다. 검색대를 통과했다.
안내창구의 여직원이 내게 접수증을 달라고 했다. 지참하지 않았다고 하니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써달라며 종이를 내밀었다. 한글이름, 영문이름,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해서 건네주었다. 잠시 컴퓨터를 두들기더니 작년 2월에 신청했기 때문에 폐기했다면서 규정상 재발급 후 6개월이 지나도 찾아가지 않으면 폐기처분한다고 했다. 내가 한 달 쯤 전에 전화상으로 문의하니까 빨리 와서 찾아가라고 했다고 하자 아무튼 지금 폐기된 상태라고 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신청서를 작성해서 필요한 서류를 갖고 다시 오라고 했다. 여직원은 몹시 서두르고 있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빨리 응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 앞에서 용무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필요한 것 중에 미국여권도 있었다. 집에 돌아와 미국여권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다. 지난 번 리얼 아이디를 만들기 위해 DMV를 찾을 때 여권을 지참하고 갔었다. 그런데 어디에다 두었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여권을 두었을 만한 곳을 다 뒤졌지만 나오지 않았다. 소파 뒤에 작은 가방 하나가 눈에 띄었다. 설마 여기에 두었을 리는 없는데 하면서 가방을 열어보니 한국 여권이 거기서 나왔다. 미국 여권을 찾다가 한국 여권을 찾게 된 것이다.
잃어버렸다고 신고한 여권을 찾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묻기 위해서 총영사관에 전화했다.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 않는다. 지금 받을 수 없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으면 그대로 끊어진다. 다시 걸고 또 걸었다. 계속 반복되었다. 셀폰으로 걸고 전화기로도 걸었다. 똑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기다리라고 해놓고 얼마가 지나면 그대로 끊어진다. 1시간이 지났다. 3시 30분이 되었다. 똑 같은 상태가 반복되었다.
LA 총영사관 웹 사이트에 가면 해결 방법이 있을까 하고 웹사이트로 들어갔다. 우선 회원등록을 하라고 했다. 등록을 하려고 하는데 전화번호를 입력하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 전화번호는 입력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셀폰 번호가 있어야만 입력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비슷한 사례가 있는가 ‘많이 묻는 질문과 답변’에서 찾으려 해도 나를 인증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입력하라고 하는데 나는 한국 전화번호가 없다. 별 수 없이 다시 찾아가는 수밖에 없는가 보다. 다시 신청하게 철저히 구비서류를 준비한 후에 방문해서 문의해야겠다.
무엇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이용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뭔가 불편하게 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실제 방문했을 때, 웹 사이트 이용 시, 전화할 때 모두 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걸어도- 한 시간을 시도했으나 통화할 수 없었다. 기다리라고만 할 뿐 받지 않고 그대로 끊어지는 전화 시스템, 무엇이 문제인가? 그냥 답답할 뿐이다.
미국 여권을 어디에 두었을까 고심하다가 자동차 안을 살펴보기로 했다. 차안의 잡동사니들을 넣어두는 곳을 열어 보았다. 거기 누런 봉투를 꺼내 들여다보니 그 속에서 미국여권이 방긋 웃고 있었다. DMV에 다녀오면서 차안에다 두고 그냥 내린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여권, 미국 여권 다 있지 않은가? 과연 분실신고 했던 여권 사용이 가능할까?
2021년 3월 5일(금) 오전 9시 10분부터 전화를 총영사관에 걸었다. 그러나 받지 않는다. 여전히 안내문만 반복해서 들려줄 뿐이었다. 그러다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끊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렇게 씨름하다가 드디어 통화했다. 9시 37분. 어렵게 통화가 되었다고 하자 하루에 1,000통 이상이 걸려온다면서 빨리 용건을 얘기하라고 한다. 간단하게 짧게 물었다. 답이 돌아왔다. 다시 찾은 여권은 쓸모가 없다고 했다. 여권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면서 신청하러 올 때 찾은 그 여권도 갖고 오라고 했다.
2021년 3월 8일(월) 오후 1시 30분에 총영사관에 갔다. 먼저 그 경비원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주 친절했다. 먼저 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창구의 여직원도 아주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지금 사진 찍는 기계가 고장이 나서 밖에서 찍어 와야 한다면서 윌셔길 건너편에 사진 찍는 곳이 있다고 알려줬다. 경비원에게 사진 찍는 곳이 어디인가 물으니 따라오라면서 밖으로 나와 사진관을 손가락으로 가리켜주었다.
사진관으로 갔다. 사진 2장을 즉석에서 찍어주는데 17달러 60센트라면서 찍을 것인가 아닌가 물었다. 거참 고약하다. 악덕업자다. 5달러가 합당한 가격이고, 10달러만 받아도 이해하겠는데 폭리를 취하고 있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찍었다.
사진을 찾아 들고 와서 번호표를 뽑아 들었다. 잠시 기다리자 모니터에 번호가 뜨면서 761번 8번 창구로 오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8번 창구의 직원은 남자였다. 한 사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8번 창구직원을 나무라고 있었다. 그러면서 총영사를 만나겠다고 했다. 총영사를 불러 달라고 했다. 직원은 총영사가 나올 때까지 저쪽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나를 맞이했다. 그 직원에게 상황 설명을 한 번 했는데 잘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한국에서 발급받았던 여권을 분실해서 신청했고, 일 년 쯤 지나서 찾으러 오니 파기 처분했다고 해서 다시 신청하는 거다. 그런데 잃어버렸던 여권을 찾았다. 세 번을 얘기해서야 이해하는 눈치였다. 그때 아까 크게 소리쳤던 사람이 다시 와서 내가 얘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소리치며 총영사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다시 한 번 전화를 해달라고 했다. 뭔 일인지는 모르지만 참 예의도 없다. 그쪽에서 방방 뜨니까 젊은 직원은 또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그리고 다시 저쪽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내 일을 계속하는데 이번에는 창구 안에서 나이든 직원이 나타나 나를 도와주고 있는 직원에게 무어라고 했다. 직원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이든 직원이 창구 밖으로 나와 그 사람을 데리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신청서를 접수했다. 4주 후에 와서 찾아가라는 얘기를 듣고 나왔다. 오늘은 대체적으로 직원들이 친절하게 느껴졌다. 왜 비 오는 날하고 오늘은 다른 분위기였을까? 어쩌면 내가 입은 옷 때문이 아닐까? 지난번에는 히말라야에 갈 때 입었던 점퍼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비가 오고 바람도 불어 따뜻하게 입었었다. 이번에는 양복을 입었고 구두를 신었다. 내가 어떤 옷을 입었는가가 상대방의 나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생각하니 좀 거시기한 마음이 들었다.
(한미 복수 국적자는 미국 출입국시에는 미국여권을 사용하고 한국 출입국시에는 반드시 한국여권을 사용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