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 앞에 고개 숙이며

조난자 전원의 무사귀환을 두 손모아 기도합니다

Cmaker 2020. 1. 24. 02:53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에 나섰던 한인 4명과 현지 가이드 2명이 실종되었다. 조난자들은 트래킹 도중 일기가 좋지 않아 되돌아오던 중 눈사태를 만났다. 뒤따라 가던 5명은 눈사태 광경을 목격하고 긴급 대피했다. 이들과 다른 팀의 가이드 한 명도 실종되었다고 하니 실제 조난자는 모두 7명이다.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네팔 특수부대 장병들이 투입되고, 특수훈련을 받은 구조견, 각종 장비 등을 동원했으나 기상악화와 계속되는 눈사태 등으로 단 한 사람도 구조하지 못하고 24일 구조팀 모두 철수했다.

 

   그들은 시누와에서 1박하고 히말라야 롯지를 지나 데우랄리로 향하던 도중 내리던 비가 폭설로 바뀌는 등 기상이 악화되어 철수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도 3년 전 이맘 때, 똑 같은 곳을 걷고 있었다. 필자는 히말라야 롯지(2920m)에서 하룻밤 자고 힌쿠 동굴(3100m)을 지나 데우랄리(3230m)거쳐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m)에서 점심식사하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까지의 여정이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당시의 기록을 살펴 보았다.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ABC 트레킹 지도를 옮겨 놓았습니다. 

지도를 자세히 보면 데우랄리라는 지명이 두 군데 나옵니다. 이번 사고에 등장하는 데우랄리는 오른쪽 상단에 표기된 데우랄리입니다. 


119()

 

히말라야 롯지(2920m)-힌쿠동굴(3100m)-데우랄리(3230m)-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MBC, 3700m)-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 4130m)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십오육 년 전에 친구 두명과 매주 산에 오르면서 다짐했었다. 언젠가 우리도 히말라야 베이스 캠프에까지 갔다 오자. 마운틴 윌슨, 마운틴 발디 등을 3~4년 동안 줄기차게 올라 다녔다. 그 중 한 친구와는 마운틴 위트니 정상 정복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텐트에서 하룻밤 자며 고산병을 직접 경험하고 바로 하산한 바 있으며 그 후에도 산을 찾았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바쁜 사업과 출장 등으로 소홀하게 되었고, 다른 한 친구는 신앙에 귀의하여 목사가 되었다.

 

결국 혼자 남은 나는 산골고니오 자연림 협회(San Gorgonio Wildness Association)에 등록해서 마운틴 레인저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산행을 즐겼다.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버켓리스트 중에 하나가 오늘 실현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부친 짐을 못찾고 셀폰도 잃어버리고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은 일정이 빡빡하다. 2900미터에서 4000미터를 뚫고 올라가야 한다. 인솔자는 일행의 산행 속도와 건강 상황에 따라 오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오르지 않고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에서 묵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아침에 룸메이트가 홍삼 엑기스를 주면서 필요하면 복용하라고 바이아그라 2알을 주었다.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면 약을 먹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다. 이미 늦다는 것이다. 그때는 무조건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약을 받자마자 한 알 먹고 남은 한 알은 잘 두었다.

 

히말라야 롯지에서 힌쿠동굴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고소에 적응하기 위해 천천히 걸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진다. 힌쿠 동굴은 긴 천장이 앞으로 쑤욱 나와 있었고 이렇다할 만한 특별한 것을 느끼지 못했다.

 

힌쿠동굴에서 데우랄리까지는 가벼운 오르막이다. 1시간 남짓 걸렸다. 데우랄리에서 MBC까지는 오르막길을 따라 몇 개의 작은 고개를 넘어야 했다. 2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이제 총 다섯 시간을 걸어 온 것이다. 가벼운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들 몇 사람 말고는 다행히 모두들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MBC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 먹은 후 약간의 휴식을 취했다.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MBC)에서

 

 

 

 

 

드디어 출발이다! ABC! 극적인 효과를 더해주려는 듯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3시간 정도를 걸었다.

 

 

 

MBC(3700미터)에서 ABC(4130미터)로 가는 도중에 잠시 쉬고 있다

 

 

 

ABC,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하얗게 눈 덮인 안나푸르나는 아래서 보던 그 산이 아니었다. 우리 일행이 도착한 ABC에는 이미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안나푸르나는 달빛에 반사되어 더욱 웅장하면서도 신비스런 모습으로 변해갔다.

 

 

기어코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눈물은 콧물을 동반했고 주체할 수 없이 가는 흐느낌으로 이어졌다. 고통을 견디고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안나푸르나의 장엄함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다. 또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시간이었다. 거칠게 부는 바람과 간간이 날리는 눈발이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을 스쳐갔으나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일찌감치 자려고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는다. 답답하다. 룸메이트는 귀에 셀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잠들었다. 코골이가 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깊은 잠에 들지 않은 듯하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화장실에 가야할 일이 생겼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물휴지와 휴지를 움켜쥐고 화장실을 찾아 나서는데 오마이갓, 하늘이, 온통 별들로 덮여 있다. 하늘이 내 걸음을 멈추게 했다. , 한 동안 입을 벌리고 쳐다보다가 임무수행을 위해 쪼그려 쏴를 하기위해 앉았다. 화장실 문을 열었으나 안탑깝게도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일행 중의 몇 사람이 나와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하늘을 보고 있었다. 달님도 거기 있었다. 반달, 쏟아지는 별들과 달빛에 비치는 산봉우리, 그리고 눈이 녹아 드러나 있는 지붕과 마당에 쌓인 눈, 아름다움에 빠져 한 동안 그렇게 있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너무 추웠다.

 

 

 

자리로 돌아와 발치에 있는 핫팩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른 하나를 가슴에 끼고 다시 잠을 청했으나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언제 잠들었는지 아무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120()

 

ABC(4130m)-MBC(3700m)-데우랄리(3230m)-히말라야 롯지(2920m)-도반(2505m)-뱀부(2335m)

 

 

 

아침 일찍 포터들이 밀크티를 들고 와서 방문을 두드렸다. 오늘은 567이다. 매일 아침 567이냐 678이냐에 따라 1시간 일찍 일어나고 1시간 늦게 일어나고가 정해졌다. 5시에 일어나 6시에 밥먹고 7시에 떠나는 것이 567이다.

 

푼힐 전망대 올라가는날만 4시에 일어났고 나머지 날은 둘 중에 하나였다. 아침 잠이 별로 없는 탓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 어머니는 4시에 깨워 공부를 시켰다. 9시면 무조건 취침. 어려서부터 훈련된 탓에 평생을 아침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다녔다. 대체적으로 밤에는 일찍 잠자리에 드는 편이다.

 

일출을 보기 위해 아침식사를 일찍 하기로 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남겨 두었던 바이아그라 한 알을 먹었다. 약의 본래 기능을 얻기 위해 사용하지 않고 다른 기능으로 이용하는 것이 바이아그라에게 미안하기는 했지만 어쩌겠는가? 제 팔자가 그런 걸. 약에게도 팔자가 있기는 한 건가?

 

누군가가 일출이 시작되었다고 외쳤다. 모두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눈덮인 안나푸르나 일봉과 남봉이 불타 오르기 시작했다. 전날 간간이 눈발이 날려 일출을 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이곳의 일출은 해뜨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다. 해가 서서히 올라오면서 그 빛이 산봉우리에 반사되면서 변화되는 빛의 반사를 즐기는 것이다. 그로 인해 나타나는 색의 변화와 서서히 어둠이 걷히는 장면들, 날씨가 흐리면 볼 수 없다. 구름이 심하게 껴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복 받은 사람들이다. 맑은 날씨 탓에 마음껏 아름다운 태양과 산봉우리들이 어울려 빚어내는 현란한 움직임을 즐길 수 있었다.

 

 

 

하산,

 

MBC를 지나 이틀 전에 하룻밤 묵어갔던 히말라야 롯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어떻게 내려왔는지 모른다.

 

올라갈 때 산사태의 위험이 있다며 산기슭을 피해 강 건너편으로 가서 강을 건넜었다. 내려 올 때는 산기슭으로 내려왔으나 다행히 별 일은 없었다. 일행은 올라 갈 때와 같은 길로 오느라고 한참 돌아오고 있었다. 모처럼 앞서게 되었다.

  

그후로 줄곳 선두에 서서 걷게 되었다. 사람들은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매일 맨 뒤에서 힘들게 따라오던 사람이 앞에 서서 걷는 것이 이상한가 보다.

 

뱀부까지 어떻게 내려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맨 앞에서 선두를 유지하고 오느라고 그랬을 거다. 그저 앞으로 앞으로만 걸었으니 무얼 제대로 봤겠는가?

 

뱀부에서 하룻밤 잤다. 밤은 여전히 추웠다.

 

 

 

하산길에


 

 

트레킹 기간 내내 한 방에서 지냈던 룸메이트와 마지막날 밤 -지누단다의 롯지에서




산에서 내려와 포카라의 한인 식당에서 삼결살 파티

 

 

 

 

 

 

 

뉴스를 전하면서 아나운서들은 말한다. 초등학생들도 갈 수 있는 아주 쉬운 트래킹 코스라고.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적절치 않다. 히말라야의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단지 위험이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해발 3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라 일기가 급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도 그렇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했다 해도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치고 쌓인 눈이 녹으면서 눈사태를 가져 온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어떻게 대치한단 말인가. 급작스런 일기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산악인 엄홍길이라도 눈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없는 것이다. 사전에 그런 위험한 지형을 피해 가는 방법 밖에 다른 방도는 없다.

 

 

 

필자의 기록에 의하면 히말라야 롯지에서 데우랄리로 가는 길에 산기슭을 피해 가는 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산 길에 그런 언급을 하고 있다. 올라 갈 때는 눈사태의 위험이 있어 산기슭으로 가지 않고 강건너로 가서 강을 건넜다는 기록을 하산길에서 언급하고 있다. 내려 올 때는 여러 팀들과 섞여서 내려오다가 산기슭으로 내려왔다. 때문에 아랫 길로 온 우리 일행들보다 선두에 서서 걷게 되었다는 기록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만일 그 때 눈사태가 났다면 오늘의 나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이렇게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트레킹 도중 내가 일행과 떨어져 걸을 때마다 현지 가이드 한 명이 따라 붙었다. 우리 일행 20명의 짐을 운반할 포터가 16, 취사팀이 9, 우리와 함께 걷는 가이드들이 4, 가이드 대장 1, 30명이 우리와 함께 움직인다. 가끔 나는 혼자 걷고 싶었다. 그러나 가이드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때는 두 명이 내 곁에 붙어 있었다. 한 명은 내가 지고 있는 배낭을 대신 지기도 했다. 

 

오렌지카운티의 어떤 교양클럽 교실들에서 히말라야에 두 번씩이나 다녀왔으니까 경험담을 들려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결론으로 해줄 말은 "절대로 가지 말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서운 말이 전해진다. "히말라야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있었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 필자도 안나푸르나에 이어 그 다음해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300미터)에 다녀왔다. 산소호흡기를 끼고. 두 번 다 오영철 대장이 리더였다. 그가 내가 말했다. 더 이상 높은 곳은 오르지 말라고. 그러나 난 아직도 꿈꾸고 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오르지 않고, 혼자 천천히 즐기며 걸을 그 날을.

 

 

 

다시 한 번 조난자들 전원 무사 귀환을 간절히 기원한다.

'대자연 앞에 고개 숙이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Frank G Bonelli Regional Park - San Dimas  (0) 2021.05.13
Yorba Regional Park - Anaheim  (0) 2021.02.04
히말라야 3  (0) 2020.01.17
히말라야 2  (0) 2020.01.17
히말라야 1  (0) 2020.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