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에베레스트
정초에 여행을 떠났다. 북경에서 열차를 타고 티벳의 라싸로 가서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5,200m) 까지 갔다. 그리고 네팔로 넘어가서 카트만두에서 LA로 돌아왔다.
지난해에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4,130m)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내려왔기에 이번 여행을 가볍게 생각했다. 열차와 버스, 그리고 지프로 이동하며 거의 걷지 않으니까 크게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일주일 이상을 해발 4,000m에서 5,000m를 넘나드는 고산지대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랐던 것이다.
해발 4,000m가 넘어서면서 몇 걸음 걷지 않아도 숨이 가빴고 작은 동작 하나에도 호흡이 거칠어졌다. 앉았다 일어나는 데도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급기야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차기 시작했다.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거의 뜬 눈으로 날이 밝기를 기다려야 했다. 평소 머리가 바닥에 닿기만 하면 즉시 잠이 들었기에 불면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 나이 먹도록 숨 쉬는 일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소가 부족하면 호흡이 곤란하고 결국 그 상태가 심각하면 숨이 끊어지는 것 아닌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높은 고산지대에 올라간 우리들은 죽음의 근처까지 갔다 온 것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조차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죽음은 그저 ‘숨을 쉴 수 있는가 아닌가’ 그 차이에 불과한 것 아닌가?
나만 힘든 것이 아니고 일행들 대부분이 그러하기에 그나마 스스로를 위로했다. 현지인 운전기사와 가이드를 제외한 모두가 힘들어 했다.
일행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던 인솔자가 내게 산소호흡기를 착용하라고 했다. 산소호흡기는 버스 안에 딱 하나 밖에 없었다. 그것을 착용하라니 내가 제일 상태가 심각한 것인가? 다른 사람들도 모두 힘들어 하고 있는데 왜 내게? 그러나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안내하는 대로 맨 앞자리로 가서 산소호흡기의 호스를 코에 끼고 앉았다. 약간 비린 듯한 냄새가 엷은 바람소리를 내며 코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몇 번 크게 들이켜고 입으로 길게 내뿜었다. 한결 호흡이 편안해졌다. 그때부터 인솔자가 곁에 앉아 고산 지대를 지나는 동안 모든 일정을 함께 했다. 산소호흡기 덕분에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고 가벼운 바람소리를 내며 코로 들어오는 비릿한 냄새에 익숙해졌다.
4,200미터 롯지에서 하룻밤 묵어야 했다. 인솔자는 그날 밤, 나와 함께 한 방을 쓰겠다고 했다. 상태가 꽤 심각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사실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목은 부어 있었고, 혀에는 돌기가 돋기 시작했다. 혓바닥은 딱딱하게 굳은 채 짝짝 갈라져 있었다. 혀 밑에는 커다란 부스럼 같은 것들이 생겨나 있었다. 산소 결핍이 가져다 준 피해들이었다. 그나마 산소호흡기 덕분에 편히 잘 수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살펴보니 모두 걷기를 힘들어 하고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난 호흡이 곤란할 뿐 두통이나 어지러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인솔자는 3,000미터 정도 내려 올 때 까지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도록 조처했다. 덕분에 편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고통 받고 있는 다른 19명의 일행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왜 그렇게 숨쉬기조차 힘들어 하면서 높은 산에 오르려 하는가? 거기 무엇이 있어서일까? 고통을 견디며 오르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함일까? 고통을 참고 견딘 뒤에 얻는 즐거움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죽을 수도 있는 그런 고통을 견디면서 얻어지는 것은 기쁨이라고 할 수는 없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여행이란 낯설고 물 설은 곳으로 떠나는 그 모든 여정 자체를 즐기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닌 그 과정을 기꺼이 찾아 나서는 것은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일상은 예측 가능하고 끝없이 되풀이해야 하는 삶의 현실이다. 그 굴레로부터 벗어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삶을 마주해 보는 것. 그리고 그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성찰과 각성. 그것이 여행의 목적이고 의미가 아닐까 싶다.
여행에서 돌아 와 시차 적응이 안 되어 무조건 잠을 자다 보니 깊은 밤이나 새벽에 깨어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에베레스트에 닿기 위해 호흡곤란을 겪으며 머나먼 길을 이동했던 여정에서 남은 것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본다.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서 있던 에베레스트를 기억하며 맑은 정신으로 긴 여정을 되살려 보고 있는 이 시간도 여행의 일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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