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미역국 2015년 1월에 쓴 글을 옮겼습니다.

Cmaker 2019. 2. 15. 23:53

미역국


   딸이 넷째를 낳았다. 셋째가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있는데 또 낳았다. 연락을 받고 부지런히 달려가 보았다. 예쁘고 귀여운 사내아이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자리를 잘못 잡고 있어 수술을 해서 낳았기에 걱정되었으나 산모도 아이도 건강하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가능한 한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한다는데 우리 딸은 넷이나 낳았으니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새 생명의 탄생을 기뻐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서 걷지를 못한다. 세월을 꼭 잡아두고 있는 듯 패기만만하던 아버지였다. 워낙 건강해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함께 걸을 때면 먼저 걸어가서 기다리곤 했다. 이제는 걷는 것은 고사하고 혼자 일어서지도 못한다. 화장실 가는 것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다.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잊고 가끔 혼자 일어나려고 시도하지만 일어나지 못한다. 쩌렁쩌렁하던 목소리에도 힘이 다 빠졌다. 당신의 육신은 말을 듣지 않는데 본인은 예전처럼 사용하려고 하여 주위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 와중에 며칠 전 아버지가 심장박동기를 새것으로 교체했다. 이른 아침에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으로 향했다. 새벽길을 다니다보니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두툼하게 옷을 입어도 싸늘한 기운을 어쩔 수 없다. 손도 시리다. 봄이 오나 하면 순식간에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겨울로 들어선다.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병원 가는 길에 가로수들도 어느새 모두 겨울준비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심장박동기 교체수술은 잘 되었다. 앞으로 10년은 끄덕없다고 의사가 말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혼자 힘으로 움직일 수가 없으니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야했다. 답답한 듯 한숨을 쉬다가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TV만 골똘히 쳐다보고 있다. 그러다가 생각난 듯 가끔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고 계속 되뇐다.

 

   아버지가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4년 전부터 틀니가 잘 맞지 않아 음식을 잘 씹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갑자기 호흡이 곤란해지곤 해서 응급실을 자주 드나들었다. 3년 전 여름에는 백내장 수술까지 했다. 전립선염 수술을 해야 했고 서너 달이 지나서는 보청기를 해야 했다. 그 동안 아버지를 모시고 치과, 심장내과, 안과, 비뇨기과 등을 다녔다. 10년 간 사용하던 심장박동기도 이번에 다시 교체한 것이다. 아버지의 계절은 서서히 추운 겨울을 향해 깊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병실에 앉아 있으려니 아침을 걸러 배가 고팠다. 마침 한국인들이 많은 병원이라 그런지 아침식사로 미역국을 내준다. 일인분을 더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갖다 주는지라 침대에 걸터앉아 아버지와 같이 미역국을 먹었다. 씹을 수가 없어서 못 먹겠다는 아버지를 반 강제로 드시게 하면서 허겁지겁 먹었다.

 

   먹다보니 문득, 이게 무슨 미역국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넷째아이를 낳았으니 미역국은 딸아이가 먹어야하는 것이 아닌가.한 생명을 이 세상에 데리고 오느라 수고한 산모가 먹고 몸을 추슬러야 하는 음식이다. 그런데 이제 치아도 거의 다 빠지고 혼자 걷지도 못하는 구십을 바라보는 아버지와 육십이 넘은 아들이 먹고 있으니 미역국을 먹고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라는 생각에 잠시 숟가락을 놓았다. 아버지가 "왜 따뜻하게 더 먹지 그러냐?"하며 쳐다본다. 이 아들을 세상에 데리고 온 아버지가 말이다.

 

   인생은 하루아침에 11월로 접어든다. 연로한 아버지가 가면  또한 갈 때가 있을 것이다. 이제 막 태어난 손자도 자라서 80대 할아버지가 되기까지 긴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릴 것이다. 그 사실을 한평생이 지나간 다음에야 깨닫게 되리라. 그러나 세상에서 떠났다고 하여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버지가  안에 살아 있듯이  또한 자식들 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태어남과 죽어감이 모두 자연의 순환 속에 녹아들어 있지 않은가.


   미역국은 아직도 김을 올리고 있었다. 먼 옛날, 첫 아들을 안고 기뻐하던 아버지도 이 미역국을 드셨을 것이다. 그때 아버지는 노쇠한 당신의 겨울날을 지키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기대하고 계셨을까. 생을 대물림할 때 먹는 미역국, 맛있게 먹으면 된다. 감사하게 먹고, 노인들이 세상을 뒤로 하고 그 뒤를 이어 아이들이 태어나는, 그래서 영영 저물지 않는 이 삶을 기쁘게 받아들이면 된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드리며 말했다. "아버지, 씹을 수 없으면 국물이라도 많이 드세요." 그리고 나도 아버지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미역국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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