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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위원회

Cmaker 2023. 12. 6. 05:34

 

12월에 들어선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순이다. 백화점들의 장식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한 지 오래 되었고 라디오에서도 크리스마스 캐롤이 하루 종일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연말연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한국 정치 이야기가 꽃을 피우고 있다. 필자와 자주 만나는 어르신들은 정치 이야기를 아예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들리는 소리를 어찌 할 수는 없다. 한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맥도날드나 파네라 등의 다른 테이블에서 들리는 소리를 제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신문이나 라디오, TV 등을 비롯해 유투버들이 하는 얘기를 옮기고 있다. 서로 언성을 높이며 뜨거운 토론을 벌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목소리 큰 한 사람이 얘기하고 다른 사람들은 입 다물고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제도 건너편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문득 빵장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마을에 빵장수가 살았다. 그는 이웃에 사는 농부에게 매일 아침 버터를 샀다. 어느 날 농부가 가져온 버터를 보니까 정량보다 조금 모자라 보였다. 빵장수는 그날부터 며칠 동안 농부가 가져 온 버터를 저울로 일일이 달아보았다. 예측한 대로 모두 정량 미달이었다. 화가 난 빵 장수는 버터를 공급하던 농부를 법정에 고발했다.

 

재판관은 농부의 진술을 듣고 놀랐다. 농부의 집에는 저울이 없었다. 그는 빵장수가 만들어 놓은 1파운드짜리 빵의 무게에 맞추어 버터를 자르고 포장해 납품했던 것이다. 빵장수는 이익을 더 남기기 위해서 1파운드짜리 빵의 규격과 양을 조금 줄였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농부는 줄여서 만들어진 빵에 맞추어서 버터를 만들었으니 당연히 그 버터가 함량 미달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농부가 버터를 만드는 기준으로 삼은 것은 빵장수가 만든 빵이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금의 한국 정치도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상대의 크기와 역량에 의해 서로를 비교해가며 정치를 하고 있다. 따라서 그 어느 쪽을 살펴봐도 규격에 맞는 버터를 만들어낼 수 없는 지경에 빠져 있다. 국민을 위한 정치, 나라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를 내다보면서 정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모든 정치인들이나 정부의 각료들 모두가 하나같이 자신의 안위와 정치적 이득을 계산하며 입을 열고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혁신이란 낡은 것을 바꾸거나 고쳐서 아주 새롭게 하는 것이다. 즉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 관습, 조직, 방법 등을 완전히 바꾸는 것을 가리킨다. 그 혁신을 하겠다고 나섰던 한국의 야당과 여당에 대해 살펴보자.

 

민주당은 지난 6월 중순에 한국외국어대학교 김은경 교수를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혁신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노인 폄하발언과 그 후 혁신위원장의 가족사까지 밝혀지면서, 혁신위원장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국민들은 아무리 좋은 내용의 혁신안을 만들어도 흠결 있는 사람이 만든 건 권위가 안 선다. 흠결 있는 사람이 어떻게 혁신을 얘기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혁신안은 존중받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두 달여 만에 혁신위 활동은 중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혁신위가 주장한 불체포특권 포기안은 합당한 결정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당내 집권 세력에 의해 제동이 걸리면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지난 1023일 연세대학교 인요한 의대교수를 혁신위원장으로 영입했다. 두어 달을 보내 놓고 큰 기대를 가졌던 국민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혁신위에 큰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 혁신위원장은 당내 기존 세력에게 희생을 요구했다. 거부하는 분위기를 간파한 인 위원장은 희생안을 수용하지 않을 거면 자신을 공천관리위원장에 추천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러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지어 혁신위가 의결한 인적쇄신 요구가 당 최고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이처럼 여당, 야당 모두 혁신위 활동은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그동안 혁신안이 없어서 혁신을 못 했던 게 아니다. 혁신에 대해 수백 수천의 참신한 안들이 이미 나와 있지만. 기득권 세력들이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야 할 것없이 양당 혁신위원회는 불협화음이 일더라도 기득권 세력들과 승부를 벌여야 했다. 그리하여 내로남불온정주의’, ‘계파간의 결속등에 실망해서 당을 떠난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참신한 신인들이 몰려 들어오는 계기를 만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 기대감을 끌어올리지도 못했다. 오히려 일부 소외 세력들이 더 당을 떠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지 않았나 싶다.

 

현재 재판에 계류 중인 당대표의 여러 혐의, 전 당대표의 돈봉투 진상조사 등에 대해서 한 마디도 언급하지 못하는 혁신위를 어찌 혁신위라 할 수 있는가. 여당 혁신위도 마찬가지다. 당대표나 대통령의 권한에 맞서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 않은가.

 

환골탈태(換骨奪胎)하지 않고 혁신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인들이 나의 손익을 계산하기보다 국민의 안녕과 국가의 이익을 우선하는 자세로 2023년의 대미를 장식하고 대망의 2024년을 맞이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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