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골프 은퇴를 선언한 후, 첫 골프모임이 있다고 친구들이 알려왔다. 그리고 골프는 은퇴했지만 저녁 식사 자리에는 참석하라고 했다. 당연히 참석하기로 했다.
그날이 어제(2021년 3월 17일(수)) 였다. 6시 옹가네로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다.
친구들은 18번홀에서의 극적인 상황을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마지막 홀에서 한 친구가 파를 함으로써 오늘 승부가 무승부로 끝났다라고 한 마디로 요약되는 얘기를 언제 끝날 줄 모르는 드라마로 만들고 있었다. 나도 신나게 웃고 떠들며 그들의 분위기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넷이 골프를 쳤고, 나와 다른 한 친구-이 친구는 어깨에 문제가 있어 병원에 다녀왔다-가 합세해서 우리는 6명이 되었다. 술을 입에도 안 대는 장로님 한 분만 술을 마시지 않았고, 나머지 다섯은 술을 마셨다. 그 중에 세 사람은 술을 밑빠진 독에 물 붓듯이 마신다. 한 사람은 우버를 이용해서 왔고, 우버를 타고 간다 했고, 다른 두 사람은 옆에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 호텔에서 마실 양주까지 한 병 따로 준비해왔다고 했다.
중학교 어린 시절 얘기가 또 나왔다. 수백 번도 더 했을 얘기지만 우리 모두 처음 하는 얘기처럼 또 듣는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 된 듯 한데도 이야기는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안주가 조금 남았다면서 소주를 한 병 더 시키겠다고 한다. 내가 나서야 할 때이다. 이젠 그만 먹고 호텔로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호텔에서 양주를 마시며 남은 얘기를 나누자고. 안주를 남기고 갈 수 없다면서 양주는 양주고 딱 한 병만 더 하자고 했다. 이럴 때 단호해야 한다. 가자고 남은 사람들을 부추키며 일어섰다. 두 사람은 북경오리 요리나 랍스터를 사갖고 오겠다며 넷이 먼저 호텔에 가있으라고 했다. 바로 근처에 있는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다시 오늘 있었던 골프이야기를 하다가 부인들 얘기도 하고, 각자의 가정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뒤죽박죽 뭐가 뭔지 모르겠다. 다 식은 오리하고 육포 그리고 땅콩과 건포도를 펼쳐 놓고 양주를 마시며 쉬지 않고 이야기들이 계속된다. 술을 한 방울도 입에 안 대는 친구가 허리가 아프다며 먼저 가겠다고 했다. 나도 가겠다면서 얼른 따라 나섰다. 둘은 호텔에서 자고 나머지 둘도 일어서야 할텐데 조금 더 있을 모양이다.
열세살, 중학교 어린 시절 머리 빡빡 깎고 만나 55년을 보내고,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지나온 세월을 함께 하며 살아왔기에 우리들은 언제 만나도 그때로 돌아간다. 참 편리한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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