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하나가 아니다

How to have a good day

Cmaker 2020. 3. 21. 03:28

 

구체적으로 뚜렷하게 앓고 있는 병이 없으면서도 병원을 방문하는 일이 일상처럼 되어 버렸다. 지난해 10월 설사가 심해 대장내시경이나 위장 내시경 검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담당 의사를 만났으나 소변검사, 피검사, 대변 검사는 하라고 하면서 내시경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11월말에 의료보험을 바꾸고 담당 의사를 한국인으로 바꿨다. 그러나 의사를 바로 만날 수는 없었다. 3개월을 기다려 220일 처음으로 담당 의사를 만났다. 우선 언어가 자유롭게 소통되어 좋았다.

 

먼저 담당의는 중국계 여의사였는데 여러모로 불편했다. 담당의를 바꾸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그녀의 말과 행동 때문이었다. 내가 나의 여러 가지 증세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중간에 끊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에 하라는 등, 매우 고압적인 자세로 환자를 대했다. 환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20분인데 너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 되었다면서 얘기를 더 들으려 하지 않고 얘기 도중에 말을 끊고 나가버리기도 했다. 앞에 얘기한 것처럼 보험을 바꾸면서 담당 의사를 한국인으로 바꿨다.

 

담당 의사는 대장 내시경과 위장 내시경 검사를 하기 위해 예약을 하라고 했다. 담당의가 선정해준 위장내과에 전화를 걸어 318일로 예약을 했다. 의료시스템이 담당의사가 환자를 직접 검사 병원으로 보내서 검사를 받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담당의가 환자를 전문의에게 보내서 그의 소견에 따라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전문의를 만나는 것은 사실상 불필요한 단계라고 생각한다. 2월에 의사를 만났는데 전문의를 만나는데 한 달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위장내과 방문하기로 한 하루 전 날(17) 위장내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내일 병원 예약한 날인데 요즈음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니까 다음으로 연기할 수도 있다며 연기할 것을 종용했다. 나는 예정대로 의사를 만나겠다고 했다. 그러자 혹시 열이 높거나 호흡이 곤란하지 않은가 물었다. 괜찮다고 하자 환자들이 많으면 실내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자동차에서 대기하다가 들어 올 수도 있고, 실내로 들어오기 전에 열을 재겠다며 그런 불편을 감수하겠냐고 물었다.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그럼 좋다고 하면서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오라고 했다.

 

위장내과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두어 번 노크를 하자 문을 열어주었다. 간호사는 문을 열자마자 누군가 확인하고 체온계를 귀에다 들이 밀었다. 정상이라면서 들어오라고 했다. 간호사는 여러 장의 종이를 내밀면서 작성하라고 했다. 환자가 병원에 갈 때마다 작성해야 하는 서식이다. 모두 작성해서 주자 보험카드를 달라고 했다.

 

간호사가 키를 재고 몸무게를 측정했다. 다 형식적이다. 신을 신고 키를 재고, 옷을 입고 주머니 속에 모든 물건을 그대로 둔 채 몸무게를 쟀다. 진료실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의사가 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바쁘다는 듯이 허둥대었다. 그리고 내가 기록해서 제출한 서류를 보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지더니 519일 내시경 검사를 하라고 했다. 지극히 형식적인 절차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담당의사를 선정하고 만나는데 3개월을 기다려야 했고, 위장내과에 전화를 걸어 예약 후 한 달을 기다렸으며, 병원에 와서 서류를 작성하고 간호사가 키를 재고 몸무게를 재고, 10여분을 기다린 다음에 만난 의사는 약 2분 만에 진료를 마쳤다. 그리고 내시경 검사는 앞으로 또 두 달을 기다려야 한다.

 

잠시 후 간호사가 들어와서 아래층 약국에서 검사에 필요한 약물을 살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그 약물을 지금 사갈 수 있는 돈이 있느냐? 혹은 평소에 다니던 약국이 있다면 그곳에서 구입하겠는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약국에 가서 약을 구입해 가라고 하면서 검사 하루 전 날 마셔야 할 그 약물 사용 방법에 대한 한글 설명서를 주었다.

 

요즈음 진심으로 환자를 위해 일하려는 의사나 간호사를 만나기 어려운 듯하다. 모두가 바쁘다 바뻐를 외치며 허둥대며 무언가에 쫒기며 살고 있었다. 기왕에 해야 하는 일이라면 바쁘더라도 좀 여유를 갖고 환자들에게 편안하게 대하면서 만난다면 어떨까? 시간을 그렇게 더 많이 잡아먹는 것도 아닐 텐데 바쁘다는 것을 감추지 않고 환자들에게 보여줘야 하는지 의문이다.

 

약국에서 만난 월남계 젊은이가 그나마 우리들의 바람직한 미래라는 생각이 드는 행동을 했다. 내게 약물을 건네주면서 자세하게 약물 사용법을 설명해주었다. 다른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혹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면서 설명했다. 매우 친절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의 라스트 네임을 뭐라고 읽느냐고 물었다. AHN, 안이라고 발음한다고 하면서 그에게 왜 그걸 묻느냐고 되물었다. 다음에 같은 이름의 환자를 만났을 때 정확하게 발음하고 싶어서라고 그가 말했다. .

 

‘How we spend our days is, of course, how we spend our lives.’라는 Annie Dillard의 말이 떠오른다. 그렇다. 내가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모아져서 결국 나의 인생을 만드는 것 아닌가. 아무리 바빠도 바쁘다고 허둥대며 살지 말자. 가능한 한 여유를 갖고 즐겁고 유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자.

 

지난 33일은 필자가 미국에 살러 온 지 27년이 되는 날이었다. 미국에 와서 여섯 달 만에 시작한 일은 가드닝이였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가드너 한 명을 두고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라리 두 명의 가드너에게 일을 시키고 나는 다른 일을 하는 편이 더 낫다는 판단을 했다. 그들에게 자동차와 각종 가드닝을 위한 도구들을 줘서 일을 내보냈다. 그들이 고객들의 정원을 관리해주고, 그 댓가로 고객들이 보내준 돈으로 두 사람 임금을 주었다. 본인은 현장에서 직접 일하지 않고 운영만 해서 이익을 창출하는 사업으로 전환했다. 두 사람 인건비와 자동차 개스비, 기타 부대비용을 제외하고 나면 실제 수입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두 가지 일을 시작했다. 비디오 가계와 학원이다.

 

매일 아침 6시에 만나 두 명의 가드너가 일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집으로 돌아왔다가 10시에 비디오 가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1시경에 알바생이 오면 학원으로 가서 학원을 오픈하고,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에는 Fullerton에 있는 학원을 인수해서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Gardena에 학원을 하나 더 만들었다. 한 곳은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학원이었고, 다른 한 곳은 하교하는 초등학생들을 학교 앞에서 픽업해서 부모가 데리러 올 때까지 공부시키는 방과후 교실이었다. 학원을 마친 후에는 비디오 가게로 가서 문을 닫고 귀가했다. 즉 세 가지 사업을 네 곳에서 동시에 운영했던 것이다. 얼마 후에 학원 한 곳은 팔았고, 다른 한 곳은 문을 닫았으며 가드닝 비즈니스도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

 

1999년에는 당시 운영하고 있던 비디오 가계(Top Video)와 비디오 테입 홀세일 업체(Movie World)를 팔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것저것 사업들에 대해 조사하고 사업체를 인수하려고 하던 도중에 라디오 코리아에서 아나운서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지원서를 냈다. 마이크 테스트까지 마치고 마지막 면접을 하는데 당시 사장이었던 이장희 씨가 내게 물었다. 광고 영업을 해보지 않겠냐고?

 

이것이 내가 오늘 하고 있는 사업으로 연결될 줄은 몰랐다. 라디오코리아에서 광고영업을 하게 되었고, 1년 만에 광고영업국장이 되었다. 그리고 5년 뒤(2004)에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사업체를 인수하게 되었다.

 

사람 사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어렵고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미래를 위해 참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오늘 즐겁지 않으면 미래도 결코 즐거울 수 없다. 지금 즐거워야 한다. 마음 편하고 즐거워야한다. 지금 당장. 그래야 미래도 즐거울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How to have a good day.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종교적인 생활을 통해서, 혹은 취미생활로, 돈버는 재미에, 친구들과 만나 웃고 떠들며, ........ 이 모든 것이 내게는 다 부질없었다. 가장 즐거운 것은 내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든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내 마음 가는대로 따라가야 한다. 마음을 묶지 말고 어느 한 쪽에 치우치게 두지도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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