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후 L선배(83살) 전화를 받았다. 며칠 여행 다녀왔더니 M선배(86살)가 전화 메시지를 남겨 두었는데 목소리가 너무 안 좋다면서 혹시 M선배를 최근에 만난 적이 있는가 물었다. 만난 적은 없지만 두 달 전쯤에 M선배와 통화한 적이 있는데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자 L선배는 M선배와 연락해서 점심이나 저녁식사 약속을 잡으라고 했다.
M선배 댁으로 전화했다. 형수가 받았다. 귀가 어두우신 모양이다. 내가 누구인가 알리기 위해 큰 소리로 몇 차례 반복해야 했다. 선배와 통화했다. 수요일(12/18) 12시에 LA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M선배가 운전을 못하기에 댁으로 모시러가겠다고 했다. L선배와 당일 10시에 만나서 LA로 이동해 M선배를 모시고 식당으로 갈 생각이었다.
퇴근길 Orangewood길에서 Beach Blvd.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무언가 두고 온 기분이 들었다. 무엇일까? 아차, 스마트폰을 두고 왔다. 다시 가서 갖고 올까말까 잠시 망설였다. 그냥 가기로 했다. 스마트폰, 좀 멀리 하고 싶었다. 잠들기 전까지 끼고 다닌다. 언제가 부터 내 몸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식사할 때는 물론, 목욕할 때도, TV 보면서도, 화장실에서도 두 눈을 부릅뜨고 들여다본다. 하루 저녁 스마트폰을 안 들여다본다고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가속 페달을 밟는다.
식탁에는 랩탑이 있고, TV를 볼 때는 테블렛이 있다. 스마트폰이 없어도 SNS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화기가 없어도 아무 지장이 없다. 외부와 직접 통화내지는 문자를 주고받을 수 없지만 그 밖의 것은 모두 가능하다. 전화기가 없는데도 테블렛에는 문자가 떴다. 후배다. M선배가 후배에게 전화해서 내가 전화를 안 받는다며 내게 연락해서 전화를 하라고 했다면서 보낸 문자다. M선배와는 전화통화를 하면서 수요일(12/18) 점심식사를 하기로 약속한 바 있지 않은가. 아마 변경사항이 있어서 전화했나보다. 전화가 없으니까 전화를 할 수는 없다.
화요일 사무실에 도착해 스마트폰 부터 살펴보았다. 오후 6시 퇴근후 다음날 오전 9시 출근할 때까지 문자 메시지와 카톡 메시지가 10여개 이상 뜬다.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는 메시지, 재밌는 글들, 꼭 필요한 연락은 없었다. 후배가 보내준 메시지는 이미 랩탑으로 확인한 바 있다. 후배에게 답글을 보내고 M선배에게 전화했다. 선배는 내가 LA의 식당에서 만나기로 한 것을 모르고 오렌지카운티로 당신을 모시고 내려가는 줄 알았다며 그래서 11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통화가 끝난 후 M선배가 전화해 LA에서 만난다고 해서 11시 30분까지 와도 좋다고 알려주려고 전화했다고 했다.
수요일(18일) 10시 한남체인 주차장에서 L선배 부부를 만나 LA로 향했다. M선배는 정장을 하고 기다리고 계셨다. 모시고 식당으로 갔다. 날이 제법 차가운 편인데 굳이 밖에서 식사를 하자고 했다. L선배 부부는 한사코 실내로 들어가길 원했으나 M선배가 워낙 강력하게 밖에 자리 하기를 원하니까 어쩌지 못했다.
식사하면서 M선배는 일제로부터 독립 운동하던 당신 부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와 건국준비를 하던 때의 일화까지 이어졌고, M선배가 1969년 미국으로 떠날 때, 부친께서 포옹을 하시려 하는데 뿌리치니 부친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서....’ 그러셨다고 했는데 정말 그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고 했다. 부친께서는 1970년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M선배는 당신 작은 아들 부부가 너무 지나치게 예수를 믿는 바람에 열심히 다니던 교회를 나가지 않게 되었고, 장로나 목사까지 싫어하게 되었다면서 지나치게 종교를 믿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얘기하자 L선배는 당신 부친이 목사였음을 일화를 들어 얘기하면서 상기시켜 주었다. ㅎㅎㅎㅎㅎ.
배불리 먹고 커피를 마시러 이동할까 하니 그냥 여기서 헤어지자고 했다. M선배를 댁에 모셔다 드리고 L선배 부부를 모시고 오렌지카운티로 향했다. 차안에서 L선배가 말했다. 나는 M선배 부친이 목사인 줄 몰랐네.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