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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식 하던 날

Cmaker 2019. 1. 4. 04:46

 

2019년 시무식을 1월 2일 했습니다.

 

12월 28일(금) 업무를 마치고

29일, 30일, 31일, 1일, 나흘을 신나게 먹고 마시고 놀았습니다.

 

1월 2일 오전 7시 30분 비행기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는딸을

6시 30분에 LA 공항에 내려주고

8시 약속이 잡혀 있는 이비인후과로 달려갔습니다.

 

도착하니 7시 30분,

닥터가 간호사들(2사람)을 모아 놓고 일장 연설 중이었습니다.

 

잠시 앉아 기다렸지요.

 

7시 40분, CT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면서 닥터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유창하지 않은 한국어로

 

콧구멍을 스캔해 놓은 화면을 보여주면서 이 부분이 모두 검게 나와야 정상인데

하얗게 나왔다며 코안에 불필요한 살들이 생겨서 그렇게 되었으며

숨쉬기 힘들 거라고 했습니다.

 

이를 치료하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했습니다.

 

첫째, 수술해서 불필요한 살(용정)들을 떼어내는 방법

둘째, 소금물 스프레이를 매일 하루 두 번씩 하고 약물을 뿌려두는 방법

 

수술해도 완치가 되지 않고 또 재발될 수 있으며 수술해도 두 번째 방법은

계속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만났던 의사도 수술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재발되기 때문에

수술해봐야 큰 효과가 없다는 겁니다.

 

두 번째 방법을 택했습니다. 의사는 약국에 가서 약물이 들은 스프레이 기구를

할인해주는 쿠폰을 주면서 의사의 처방 없이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집에 한국에서 의사가 써준 처방전으로 사온 것이 세 통이나 있기에

살 필요가 없었습니다.

 

회사에 도착하니 8시 15분, 문이 꼭 닫혀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습니다. 회사 문을 오랫만에 열어 봅니다.

출근할 때는 항상 열려 있었기에

 

새해 첫 출근하는 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니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제 방으로 들어와 방문을 꼭 닫아 놓고 혼자 조용한 시간을 즐겼습니다.

오늘 시무식에서 무슨 얘기를 할까 궁리도 하고.

 

9시 29분 밖이 소란했습니다.

해마다 떡을 해갖고 오는 친구가 떡을 들고 온 겁니다.

친구는 초등학교 동창생입니다.

친구는 저보다 1년 선배였는데 6학년을 한 번 더 다니게 되어

한 반에서 공부했지요. 그때는 중학교 입시가 치열하던 때라

명문 중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6학년을 두 번 다니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일종의 재수지요.

 

친구는 그때도 키가 크고 덩치가 커서 맨 뒤에 앉아 있었고

저는 중간 정도의 키라 가운데 앉아 있었기에 함께 어울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친구입니다.

 

그런데도 기억속에 뚜렷이 자리 잡혀 있었던 것은

친구가 거의 말없이 뒷자리에 앉아 묵직하게 앉아 있었고

형님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겁니다.

 

초등학교 6학년, 1년을 함께 다녔지만 단 한 번도 말을 섞지 않았고

같이 어울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40여 년이 지나 LA에서 만났을 때 단 번에 그를 알아 봤고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6학년을 두 번 다녔다는 사실도 알았지요.

 

그 후로 친구는 매년 시무식 때마다 떡을 한 시루씩 해갖고 왔습니다.

떡을 놓고 그냥 가곤 했는데

어느 때부터 시무식에 참석해서 덕담도 함께 나누고

샴페인 잔도 부딪히며 직원들과 함께 하게 되었지요.

 

늘, 시무식은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면서 새해의 포부를 밝히고 자신의 바램 등을

얘기하는 시간을 갖은 후, 건배를 하고 음식을 먹는 순으로 진행합니다.

 

친구 차례가 되었습니다. 친구는 은퇴를 준비하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친구가 부득이 하게 자신의 계획과 달리 소셜을 일찍 받게

되어 은퇴 계획에 차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직원들은 그저 은퇴를 위해 돈을 모으고

재산을 정리하라는 말로 들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는 회사를 위해서 일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들 자신을 위해서 일하라고 했습니다.

가족, 특히 여러분들의 부인과 자녀들을 위해 일하라고.

 

음식을 먹고 샴페인과 와인을 마시며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두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지난 번에 캘리포니아 제 39지구 연방하원 의원에 출마했다가 아깝게 낙선한

영 김 의원의 남편 찰스 김과 그의 USC 후배 한 분이.

 

덕담을 나누다 손님들이 갔습니다. 집에서 이제 쯤 일어나

배고파 할 아들이 생각났습니다.

집으로.

 

한참 가는데 친구가 전화했습니다. 함께 도 닦던 친구였는데 예수를 만나

깨달았다며 신학교에 가서 몇 해 공부하고 환갑에 목사가 된 친구입니다.

새해 인사를 나누다 갑자기

점심을 함께 하자고. 오케이 기수를 꺾었습니다. 식당으로

아들에게 전화했습니다. 식당으로 오라고. 아들은 체육관에 운동하러 가는 중이라며

아빠가 투고해 오라고 했습니다.

 

식당에서 배불리 먹고 아들 것을 싸들고 나와 식당 옆의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또 다른 친구가 전화했습니다.

LA에서 치과병원을 운영하는 친구입니다.

점심 같이 먹자고.

오마이갓, 일단 방금 먹고 나왔던 식당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친구와 커피를 마시는데 아들이 전화했습니다. 운동에서 돌아왔는데

아빠는 어디쯤 계신가 묻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픈 모양입니다.

이리 와서 투고해 놓은 음식을 갖고 가라고 했지요.

총알같이 달려와 아들은 음식을 갖고 가고

잠시후 친구가 연락왔습니다. 지금 식당에 도착했다고

목사 친구와 함께 다시 식당으로 갑니다.

두 사람은 제 큰딸의 결혼식에서 만난 적이 있고 친구가 목사가 되어

개설한 성경공부에도 함께한 적이 있기에 구면이었습니다.

목사는 인사만 하고 가고

친구가 맛있게 먹는 걸 보면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가만히 보니 친구 얼굴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딘가 이상해졋습니다.

친구는 내가 먼저 달라진 자기 얼굴에 대해 이야기 해주기를

기다리는 듯 한데 먼저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기에. 예전 얼굴이 훨씬 더 좋았걸랑요.

 

드디어 친구가 입을 열었습니다.

자기 얼굴이 달라지지 않았냐고

그러면서 눈이 커보여서 자기는 좋다고 했습니다.

메디케어를 받는 연령이 되어 첫 번째로 한 것이

쌍커풀 수술이었다는 겁니다.

쌍꺼풀 수술은 성형수술이 아니라면서 메디케어 적용이

된다면서 내게도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도 하지 않은 쌍꺼풀 수술을 왜 내가 합니까? ㅎㅎㅎㅎ

 

친구가 식사를 끝내자마자 역시 옆의 찻집으로 이동

차 한 잔을 마시고 친구는 부리나케 LA로 떠났습니다.

 

이렇게 재미나게 새해를 엽니다.

여러분 모두 신나는 2019년 만드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