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귀한 손님이 왔다. 홍경표 선생님이다. 이분은 1978년 필자가 보이스카우트 지도자 훈련을 받을 때 훈련강사였으며, 그 후 보이스카우트 서울연맹에서 지도자 활동을 함께 했던 분으로 스카우트 스승이며 동지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미국에 이주한 후에도 한인 보이스카우트 대를 만들어 봉사하고 있는 분들을 도와 함께 일했다. 직접 대활동은 하지 않고 주로 카운슬러로 대원들의 진급에 필요한 기능장 중의 몇 가지를 심사하는 일을 했다.
그러던 차에 2006년 한인지도자를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미국에서 한인 보이스카우트 지도자 훈련을 개설했다. 한국연맹과 미국연맹으로부터 훈련 수료증을 받는 최초의 훈련이었다. 이때 홍선생님도 한국연맹에서 파견한 다른 두 분과 함께 훈련강사로 참여했으니까 이번에 12년 만에 재회한 것이다.
우리는 반갑다고 얼싸 안지도, 소리치며 반가움을 표시하지도 않았지만 서로 벌어진 입을 한 동안 다물지 못했다. 한국에서 스카우트 활동을 함께 했던 다른 두 분도 함께 했다. 감격스러운 시간이었다.
서울연맹 훈련담당 훈육위원이었던 홍 대장님은 마른 체구에 호리호리한 키로 외모는 연약해 보였지만 강단 있고 산악 활동을 활발히 하는 분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어느 해 하계 야영대회를 지리산에서 하기로 결정하고 답사를 떠나는 홍 대장님을 따라 나섰다.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서울 연맹에서 만나 다른 한 분의 차를 타고 뱀사골로 향했다. -두 분은 모두 나와 띠동갑으로 12살이 많았다- 부지런히 달렸지만 뱀사골에 도착해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산행을 시작할 때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랜턴을 켜지 않고 별빛과 달빛에 의지해 셋은 말없이 산길을 걸었다. 세 사람의 발자국 소리와 풀벌레 소리만 산길을 덮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온몸이 땀에 젖어들 무렵, 걸음을 멈추고 하룻밤 비박을 하기로 했다. 비박이라는 말은 독일어(Biwak)와 프랑스어(Bivouac)로는 야영을 뜻하며, 우리나라와 미국 등에서는 텐트 없이 밤을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두 사람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줄을 걸어 줄침대를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잠을 청했고, 나는 땅바닥에 침낭을 펴고 그 안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두 사람이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잠시 왔다가 지나가는 비가 아니고 제법 쏟아질 기세였다.
우리는 서둘러 짐을 싼 후에 뱀사골 산장으로 대피했다. 산장에는 비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으며 밤이 제법 깊었기에 모두 침상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엉덩이를 침상 끝에 걸친 후에 살살 좌우로 틀면서 공간을 확보한 후에 몸을 살살 비벼 눕는 방법으로 자리를 차지한 후에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하늘을 보니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았다. 간단하게 아침을 해 먹고 우리는 산등성이를 따라 걷다가 한신 계곡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하루 종일 걸었다. 빗속에 산길을 걷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겉옷이 다 젖은 뒤에 속옷까지 젖고 몸에 옷이 착 달라붙은 상태에서 계속 움직여야 한다. 이날 우중 산행 때문에 나는 무릎에 문제가 생겼으며 어느 정도 걸으면 무릎에 통증이 오는 문제를 평생 갖고 살게 되었다.
빗속에 점심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루 종일 걸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남원으로 갔으나 마침 벌어지고 있었던 춘향제 때문에 빈 방이 없었다. 우리는 전주까지 나와서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나는 두 선배를 젖혀두고 새까만 후배임에도 목욕탕에 먼저 들어갔다. 탕에 물을 받아 놓고 들어가 장시간 즐기고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버릇없고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두 분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그런 추억을 함께 했던 홍선생님이기에 다른 그 어떤 스카우트 지도자들보다도 더 반갑다. 홍선생님은 예전과 좀 달라진 모습이었다.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어딘지 걸음걸이와 손놀림이 예전과 달랐다. 그러나 우리들과 대화에 큰 문제가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홍 선생님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생활에 지장이 있지만 병이 발병했을 때보다는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 온 김에 남미 3개 국을 관광하고 가겠다며 여행을 떠났다. 그는 자기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의 부인이 알려주었다.
이는 자기 병을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병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병에 걸렸지만 자기 스스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살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가 미국에서 한인 보이스카우트 지도자 훈련을 개설하면 무조건 훈련강사로 와서 봉사하겠노라고 만날 때마다 얘기하는 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건강함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예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건강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고 싶은 것이다.
홍선생님은 어제(8월 2일) 남미로 떠났다. 이제 열흘 후에 돌아와서 일주일 정도 더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간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한 번 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추억을 함께 했던 보이스카우트 스승이요 평생 동지인 홍 선생님이 남미여행을 무사히 잘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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