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에 다녀왔다. 1980년대 중반에 다녀오고 30여 년 만이다. 그 당시 안내하던 병사의 아들 벌 되는 병사가 안내자로 나왔다. 김일병은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시종일관 지시 일변도로 안내했다.
"이곳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북쪽을 향해 손가락질하지 마십시오."
"북측 경비병들에게 말을 걸지 마십시오."
"두 줄로 서서 따라 오십시오."
30여 년이 흘렀지만 달라진 것이라고는 없었다. 움직이는 병사들은 북측 남측 할 것 없이 과장된 걸음걸이로 긴장감을 만들고 있었다. 또 경계 태세로 상대를 쳐다보며 부동자세로 서있는 병사들 역시 긴장감을 조성시키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김일성, 김정일이 세상을 떠났고 그들의 손자요 아들인 김정은이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 밖에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 한 가지 있다. 판문점 남측의 자유의 집으로 부르는 건물이 과거보다 훨씬 크게 현대식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분위기와 달리 판문점은 관광지화 되어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수많은 버스들이 도착하여 사람들을 쏟아내고 있었고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병사들이 안내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부녀자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 외국에서 온 많은 남녀노소 관광객들이 줄지어 병사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하고 사진촬영이 허용된 지역에서 분주히 사진을 찍었다. 병사의 지시는 절대적이었다. 다음 코스로 이동할 때는 언제나 두 줄이었다.
그 당시 분단국가였던 동서독은 통일되었고 지금 독일을 이끌고 있는 총리는 동독 출신이다. 그런데 한반도는 바뀐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고 있었다. 핵공포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고 미사일 발사하는 북한을 보며 공포에 떨고 있지 않은가. 협박과 위협을 하면서도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은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3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이곳을 찾을 계획이다-그때 나이가 몇인데 판문점을 다시 찾겠는가 걱정하는 분도 있겠지만 지금의 추세대로 산다면 120살까지는 너끈히 살 것이기에 그리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때 오늘 안내하는 병사의 아들 정도의 병사가 안내할 때 모습을 상상해 본다.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곳은 남북한이 회담장소로 이용하던 곳으로 우리 역사의 현장으로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저기에 남북한 경계가 있었으며 그 경계를 사이에 두고 북한 병사와 남한 병사들이 서로 마주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 여러분들이 이곳을 찾았더라면 지정된 곳이 아니면 사진촬영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으며 남북을 왔다갔다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통일된 지금, 여러분은 마음껏 사진 찍고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며 즐기십시오. 그리고 몇 시까지 버스에 오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