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암을 이겨낸 친구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Cmaker
2023. 6. 9. 16:13
몇해 전 평생을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친구가 은퇴후에 암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고등학교 6년을 함께 다니면서 같은 반을 한 적도 있었던 친구다. 가깝게 어울려 지낸 적은 없었지만 말없이 얌전하게 앉아있던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기억속에 남아있는 친구였다. 암세포가 침투한 장기의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하고 재활 치료를 받고 있을 때, 마침 고국에 와있던 내게 점심을 대접하겠다며 초대했었다.
친구는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친구는 새차를 구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젊어서부터 오픈카를 타고 싶었다면서 신성일이 즐겨 탔다는 무스탕인지 머스탱인지를 살 것이라고 했다. 나는 다음에 올 때는 그 차를 꼭 태워달라고 부탁했었다.
올해초 친구는 내게 좋아하는 문구나 경구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왜 그런가 물으니 붓글씨를 써서 보내주겠다고 했다. 나는 '안빈낙도(安貧樂道)'로 해달라고 했다. 친구는 글씨를 써서 표구까지 했는데 깨질까 걱정되어 미국으로 보내지 못한다면서 서울 딸네 집에 사람을 시켜 갖다 놓았다. 친구의 이름 석자를 인터넷에 쳐보니 친구는 훌륭한 서예가가 되어 있었다. 각종 붓글씨 대회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원로 서예작가로 대접을 받고 있었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취미 삼아 서예를 즐겼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분야에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번 고국 방문 길에 멋진 글씨를 써준 친구에게 보답하기 위해 만나자고 했다. 친구는 무스탕을 타고 나타났다. 차에 타자마자 친구는 '뚜껑을 열까?' 물었다. 우리는 오픈카를 타고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밀린 얘기를 나눴다. 친구는 평소에 즐기던 서예(서도)에 더욱 매진하고 있었고, 댄스(무도)에도 입문하여 각종 서양춤을 비롯해 한국의 전통 춤까지 배우고 있었다. 피아노와 기타도 익히고 있었고, 피리도 배우고 있었다.
친구와 대화를 통해서 암 수술 후에는 치료로 중요하지만 운동, 식사, 스트레스 관리 등 생활 면에서도 여러 가지가 개선되어야더 큰 치유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자신이 어떤 방법으로 극복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으로 추정하자면 다음과 같다.
본래 암 환자들은 심리적 충격 때문에 운동을 시작할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암 치유를 위해서 그 어떤 것보다도 운동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때 운동을 ‘신체 활동’이라고 폭넓은 의미로 생각하면 이해가 빨라진다. '운동이 환자나 재활 중에 있는 사람들뿐만아니라, 운동을 통해 암 예방은 물론 암 치료 효과를 높이고, 직접적으로 재발률과 사망률 감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대한 발표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특히 유방암, 대장암, 난소암, 전립선암, 폐암 등 일부 암에서는 운동으로 눈에 띄게 사망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운동은 체내 염증을 줄이고, 면역 체계를 활성화시켜 종양 세포와 싸울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운동이라는 단어 대신에 춤을 집어 넣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친구가 이 운동으로 택한 것이 바로 춤이었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춤하면 좋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지만 춤보다 좋은 운동은 없다. 팔 다리 어깨 허리 등 온 몸을 쓰고 거기다 이성의 손을 잡고 추는 댄스라면 마음의 설렘까지 동반하는 운동이다.
친구는 댄스 클럽에 가입해 각종 춤을 배우고 익히면서 실제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춤을 추면서 삶의 활기가 생기고 삶의 전체적인 질이 높아졌다고 했다.
다음은 적극성이다. 그리 적극적이지 않던 친구였는데 매사에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생전 다루지 않았던 댄스를 배우고, 피아노, 기타, 피리 등의 악기를 익히려 하다니 자기 자신도 놀라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암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스트레스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이로 인한 무력감은 스트레스 반응을 촉진시켜 면역력을 떨어트린다.친구는 이를 극복하고, 자신의 건강과 삶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이 되지 않았는가 싶다.
암은 감기나 배탈 처럼 정해진 치료제를 먹어 치유가 가능한 질환이 아니다. 사람마다 발병 원인이 다른 것처럼, 치료 방법 역시 개인이 가진 여러 배경에 따라 다르게 이뤄져야 한다.즉, 자신의 건강 상태 체크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하고, 생활 습관 개선 역시 자신의 의지로 이뤄질 때 완치도 더 가까워질 것이다.매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움직임으로써 삶의 활기가 살아나고 삶의 의지가 불타오르게 마련이다.
이성과 의학이 강조되어야 하는 치료 분야에서 운동, 적극성 등을 강조하는 것이 다소 이상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암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이기 때문에 과히 그릇된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고 억눌려 있는 감정들은 건강에 악영향을미친다. 특히 암 환자들은 스트레스와 두려움을 억누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스트레스는 암 세포를 감지하고 제거하는 면역체계를 약화시킨다. 학자들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명상 등의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시작된 마음챙김 기반 스트레스 감소법(MBSR) 프로그램도 효과적이다.
친구의 서예(서도)가 바로 이 부분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조용히 먹을 갈고 먹물에 붓을 담가 촉촉히 적신 뒤에 하얀 종이에 각종 필체로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예를 넘어서 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서예를 서도라고 했던 것이다. 암 수술후 춤과 적극적인 생활방식, 스트레스 해소 등을 통해 암을 극복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나가고 있는 친구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