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aker
2023. 6. 2. 20:05
친구와 돈암동 성신여대 입구역 1번 출구에서 만났다. 10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9:30에 도착하니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걸었다. 성신여대 가는 길로 들어섰다. 식당, 술집, 각종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길을 지나 돈암동 천주교회 앞을 지나 성북경찰서를 오른편으로 바라보며 물길을 따라 걸었다. 성당과 경찰서 근처에 살던 친구를 생각하며 한동안 걸었다. 그 친구는 지금 LA에 살고 있으며 가끔 만나고 있다.
걷다가 잠시 쉬기도 하면서 오리들이 헤엄치고 백로가 외로이 서있는 물길을 따라 걸었다. 보문동, 고3 담임 선생님 댁 근처라고 짐작되는 곳을 지나는 듯했으나 그 집을 찾을 수는 없었다. 선생님댁은 한옥이었는데 어디에도 한옥은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댁을 찾았던 그날의 기억은 뚜렷하다. 언제나 내편이 되어주셨던 분이다. 오늘의 내가 있도록 큰 힘을 주신 분이다. 대전 현충원에계신 선생님을 떠올리며 걸었다.
잠시 내려가니 대광중고등학교 건물이 보였다. 매일 동네 공원에서 만나 체조하는 박 목사님이 대광출신이라는 사실이 생각나 목사님께 사진을 하나 찍어서 메시지로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고맙다는 답장이 왔다. 매일 아침 좋은 말씀과 사진을 보내주시는 분이다.
청계천에 접어 들었다. 커다란 잉어들이 헤엄치고있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십여 마리가 수심이 깊지도 않은 물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었다.
청계천에서 나와 동묘를 잠시 둘러 보았다. 위기에 빠진 조선을 돕기 위해 4만3천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왔던 명나라 군대는 전쟁이 끝났으나 철수하지 않고 계속 주둔해 있었다. 그들은 철군 명목으로 사당을 짓도록 했으며 그때 이 동묘가 세워졌다. 동묘 또는 동관왕묘(東關王廟)라고도 한다. 중국 촉나라 장수 관우를 모신 사당이다. 남대문 밖에는 동묘보더 먼저 생긴 남관왕묘가 있었으며, 고종 때에는 북관왕묘와 서관왕묘를 지었다. 남관왕묘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북관왕묘와 서관왕묘는 조선총독부가 철거했다.
동묘 밖은 각종 중고물품을 팔고 사는 사람들로 붐볐으나 동묘 안은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 한가로왔다.
동묘에서 나와 동대문을 향해 걸었다. 친구가 복어요리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동대문 근처의 복어집에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우리는 복어 전골에 맥주 한 병, 소주두 병을 나눠 마셨다.
식당에서 나와 흥인지문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 청계천으로 다시 가서 광화문을 향해 걸었다. 친구는 출발 전부터 광화문까지 걷자고 했다. 전태일 열사의 상반신 조각상이 있는 곳에서 친구는 사진을 찍어 달라며 포즈를 취했다. 단 한 번도 자기를 찍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었던 친구라 깜짝 놀랐다.
청계 5가쯤 되는 곳에도착해서 내가 어려서 놀던 이화동, 서울미대, 서울 의대 방향으로 가고 싶었다. 지금은 대학로가 되어 버린 서울 문리대 자리, 초등학교 시절 내가 놀던 곳이다. 미대와 의대 사이에 작은 국민학교, 한 학년이 6학급에 불과했던 창경국민학교가 나의 모교다. 친구 아버지가 문리대에서 교내 식당을 운영해 가끔 가서 짜장면을 먹곤했다.
방향을 틀어 거리로 나와 효제국민학교, 기독교 방송국을 지나 이화동 4거리에 도착했다. 길건너 좌측으로 가서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학교 자리에는 큰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미대는 없어진지 오래 되었다. 잠시 머물다 골목을 나와 원남동 방면으로 향했다. 원남동 로타리에서 오른쪽에 창경궁 담장이 있고 창덕궁 방면으로 좀 걷다보니 터널이 나온다. 창덕궁은 우리 어려서는 비원이라고 불렀다. 초등학교시절 학교 대표로 이곳에서 있었던 글짓기 대회에 나갔던 기억이 났다.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왔었다. 밤을 한가득 따갖고 갔던 추억까지 소환해냈다.
창덕궁까지 와서 운니동 장은선 갤러리에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창덕궁 맞은편 첫 골목에 있다.
장은선 갤러리는 지금의 라디오코리아 자리로 이전하기 전까지 일년에 한두 번 이상, 라디오코리아 도산홀에서 한국 화가들의 작품 전시회를 주선해서 열었던 장은선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장은선 대표는 내 부탁으로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내 친구를 미국에서 전시회할 수 있도록 도와준 분이다. 그 전시회를 통해 친구가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마침 손미량 작가의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작가는 방문객과 대화중이었고, 장 대표는 사무실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친구는 자기가 화가의 그림 속에 있다며 탄성을 지르며 내게 자기와 닮지 않았냐며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 1학년 1반 12번 그 친구가 그림 속에 있었다. 맞다고 맞짱구 치는데 장 대표가 사무실에서 전시장으로 나오며 우리를 봤다. 처음에는 그냥 방문객이겠거니 하고 나왔다가 나와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달려와 손을 내밀었다. 3년 만이다. 두 해를 한국에 왔다가 연락도 안 하고 갔었다. 그림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흥분한 친구 때문에 우리는 한바탕 소란속에 있어야 했다. 손 작가는 작품을 그런 식으로 감상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라며 친구를 추켜 세웠다. 손 작가는 찾아온 자기 친구와 먼저 나갔고, 장대표는 방문 중인 서울대 김희민 교수와 다른 갤러리로 가야 하는데 다른 약속이 없으면 나도 같이 가자고 했다. 그 갤러리에서 나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면서. 친구에게 다른 계획이 없는가 물으니 함께 해도 좋다고 했다.
잠시후 장대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우리는 안국동로타리를 지나 중앙청 앞을 지나고있었다. 중앙청을지나 경복궁을 우측에 두고 옥인동을 지나 우리가 도착한 곳은 금보성 아트 센터였다. 그곳에서는 전지연 작가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작품 감상을 마치고 작가와 기념 촬영을 한 후에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손가네 민물장어본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4인분을 시켰는데 두 분이 거의 드시지 않아 친구와 내가 배터지게 먹었다. 복분자 한 병과 소주 한 병을 마셨다. 역시 두 분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장 대표는 우리 셋을 창덕궁 앞에 내려주고 갔다. 김 교수는 택시를 타고 갔고, 친구와 나는 전철역을 향해 걸었다. 우리는 5호선을 타고 천호역에서 내려 8호선으로갈아 탔다. 나는 한 정거장 가서 강동구청역에서 내렸고 친구는 잠실역에서 내리면 된다.
이렇게 아침 9:30에 시작한 서울 투어는 12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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