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네 친구들
비오는 날- 비가 아주 많이 왔다-, 공사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어릴 적 친구 K를, L 부부와 함께 찾아가서 불러냈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K는 한때 음악방송 DJ로 이름을 날리던 친구다. 우리는 성당에서 만나 청소년기를 함께 했었지만 서로 가는 길이 다르고 생활터전이 달라 자주 만나지 못하고 가끔 십여 년에 한 번 정도 만났었다. 이번에는 거의 20년 만이다.
죽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 번 보자는 K의 극단적인 말에 덜컥 약속을 해놓고 K가 일하는 충청도 한 도시의 공사현장까지 어떻게 가야하나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가나, 기차를 타고 가나, 버스타고 기차로 바꿔 타고 가나.
그때 L의 전화가 왔다. K로부터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내일 K만나러 함께 가자며 우리집으로 모시러 오겠다고 했다.
L의 부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빗속을 뚫고 달리고 달려가 우린 어렵게 만났다.
배터지게 먹고 마시고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래방에 손님은 우리가 전부였다. 어릴 때도 친구들은 노래를 잘 불렀다. K와 L은 돌아가면서 네 다섯 곡씩 불렀다. 나는 부를 줄 아는 노래가 무엇인가 한참 생각했다. 그리고 딱 한 곡 불렀다. 두 친구는 예전에도 노래방에서 어울린 적이 있었던 모양인데 나는 그들과 노래방에 온 적이 없었고, 노래방 자체가 익숙치 않다.
담배 골초에 말술을 마시던 L은 술을 한 잔도 하지 않았고, 담배도 끊었다고 했다. K는 여전히 찌렁찌렁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담배를 수시로 피웠고, 술도 마셨다. 그의 변화는 눈에 있었다. 20년 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눈이 맑아졌고 깊어졌다. 그때 그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노동이 식당일보다 사람 눈을 맑게 하는가 보다.
옛날 얘기를 하면서 우리들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