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지난 5월 6일 고국에 도착하여 14박 15일 간의 격리생활을 마치고 5월 20일부터 공적으로 혹은 사적으로 여러 곳을 방문하여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제주도에서 생활한 6월 한 달을 제외하고는 서울에 머물면서 하루, 혹은 이틀 일정으로 충북 제천, 영동, 경기도 곤지암, 양평, 강화, 수원, 충남 대전, 천안 등지를 다녀왔다. 내일은 강원도 동해시에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올 예정이다.
지난 5년 동안 해마다 찾았던 영동군은 과거의 산골짜기 시골이 아니었다. 각종 과일 등으로 만든 와인의 산지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고, 영동군 출신 문인들을 기념하기 위한 문학관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경기도 곤지암에는 골프장이 들어서서 분주히 차량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논밭 사이로 공장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었고, 양평군이나 강화군도 도시와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의 편린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전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편히 다녀올 수 있었다.
친구들과 찾은 경복궁은 그야말로 멋진 궁궐로 위엄을 갖추고 있었고, 두 번이나 올랐던 남산은 갈 때마다 깨끗하고 아름답게 잘 가꾸어진 도심 속의 공원으로 손색이 없었다. 멋진 고궁과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도심 속의 공원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자랑스러웠다. 물론 서울에서만 느꼈던 것은 아니다. 6월 한 달 동안 제주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얼마나 잘 다듬고 가꾸고 있는지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방방곡곡 어디에서든 만나는 사람들의 행동과 말씨, 태도 등을 보면서 내가 고국을 떠나던 1993년의 대한민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밖으로 드러난 모습뿐만 아니라 제도적인 면에서도 탄성을 멈출 수 없었다. 의료보험제도, 자동차 면허 제도, 각종 국민복지 제도, 서비스의 완벽함에다 종사자들의 친절함까지 더해져 미국에서 만났던 불친절하기 짝이 없었던 일부 병원 의료진들이 떠올랐고, DMV와 사회보장국, 이민국 등에서 만났던 공무원들의 상냥끼 없는 눈길과 빨리 볼일 보고 가라고 재촉하는 듯한 모습과 대비되었다.
만나는 사람들이 '고국에서 무엇을 느꼈는가?'라고 물을 때마다 '선진국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봐도 이렇게 깨끗하고 대중교통이 발달한 나라는 없다. 국민복지면에서도 손색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
나의 이런 생각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지난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는 대한민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유엔회원국들에 의해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축하할 만한 일이며, 1964년 UNCTAD 설립이후 지위가 격상된 최초의 국가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선진국'은 영어 'Developed Country' 혹은 'Advanced Country'를 번역한 것으로 경제가 고도로 발달하여 다양한 산업과 복잡한 경제체제를 갖춘 국가, 또는 지속적으로 경제개발을 하여 최종적인 경제발전 단계에 접어든 국가를 가리킨다.
그러나 단순히 부국(富國)이나 강국(強國) 등 자본이 많거나 소득이 높은 나라, 혹은 군사력이 강한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IMF는 십억명이 넘는 인구를 바탕으로 세계 2위의 GDP를 자랑하는 중국이나, 오일머니로 1인당 GDP가 세계 최상위권인 카타르나 아랍에미리트 같은 나라를 선진국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선진국 분류 기준을 세계 어떤 기구나 기관도 뚜렷하게 정해 놓은 것 같지는 않으나 대체로 몇가지를 공통적으로 참조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경제적 여건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1인당 GDP 혹은 GNI를 지표로 삼고 있으며, 인간존엄성과 삶의 질을 살필 수 있는 인간개발지수(HDI), 삶의 질 지수(PQLI) 등을 고려하며, 아울러 세계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고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해-개발 도상국 원조 여부를 알 수 있는- DAC 가입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조건에 부합하여 대한민국이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몇몇 사람들이 물었다. 불편한 것이 무엇인가? 그때마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딱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하면 교통질서를 들 수 있겠다. 빨간불 파란불이 의미가 없고 인도와 도로의 구별도 없다. 공간만 있으면 인도로 올라와서 자동차를 주차시킬 수 있고, 사람이 없으면 신호등 불빛은 큰 의미가 없다. 우선 멈춤의 표시는 사람이 있건 없건 무시해도 좋다. 적당히 사람들 사이를 피해서 지나가면 된다. 앞차가 조금만 지체하는 듯 하면 빵빵 누르고 본다. 내가 가는데 사람이나 자전거가 나타나거나 자동차가 끼어들 듯 하면 클락션을 누르고 본다. 택시나 버스 등의 영업용 차량만 그런 게 아니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그러했다. 오히려 규정속도와 신호를 지키면서 운전하는 사람들은 내게 미안해 했다. 천천히 가서 미안하고 답답하게 운전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두 사람이 그러했다. 한 분은 81세의 고령인 분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종교인이었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차를 집앞이나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두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닌다. 자동차는 사람들이 구비해야 할 덕목이나 갖춰야 할 가구처럼 그냥 갖고 있어야 할 것, 그 이상이나 이하도 아니었다. 아, 가끔 여러 사람이 함께 이동할 때 사용하기는 한다. 마치 비올 때 꺼내 쓰는 우산과 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러나 우산과 달리 자동차는 없어도 된다. 대중교통만으로 얼마든지 전국 어디나 편히 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차 없는 집이 없는 듯 하다.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주제를 다시 한 번 써보고 다시 시작한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근거를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국민들의 준법정신을 들 수 있겠다. 코로나19의 감염을 막기 위해 몇 단계로 나누어 방역수칙을 정해서 국민들이 시행하도록 한 바 있다. 미국에서는 식당의 영업을 아예 못하게 하거나 식당 밖 주차장이나 거리에서 하도록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상당수의 식당들이 실내영업을 그대로 하기도 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지키면서 영업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국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벌금을 물어가면서 버젓이 영업을 지속한 업체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본 대한민국은 전혀 달랐다. 예전 같으면 당국의 눈길을 피해 영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업소들이 6시가 되기 전에 6시 이후에는 세 사람 이상 함께 식사할 수 없다고 알려줬고, 모인 사람들도 6시가 되기 전에 모임을 파했다. 사람들도 낮에는 4인만 만남이 가능하다고 꼭 4사람만 모이고 있었고, 종로의 어느 식당에서는 낮에 5 사람 이상 모일 수 없다는 방역수칙에 따라 5사람이 일행인 경우는 아예 두 사람은 이층으로 세 사람은 아랫층으로 자리를 따로 완전히 분리시켜 앉도록 하고 있었다. 이상으로 볼 때 준법정신 면에서도 분명한 선진국임에 틀림없는데 어찌 교통질서는 그렇게 엉망인지 알 수 없다. 점잖은 분도 운전대만 잡으면 터프해지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