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과
저녁에 세 명의 제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둘은 1학년 때 내가 담임을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우리 학급의 바로 옆반 학생이라고 했다. 여학생이다.
여학생은 현재 미국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으며 교장연수를 받았고, 자격시험에도 합격해서 곧 교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공부도 계속하고 있어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 제자는 내가 워싱턴 DC 여행중에 친구집에 머무르고 있을 때, 자기 집 근처에 내가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2시간을 직접 운전해서 찾아와 인사하고 간 적도 있다. 해마다 여름방학때 한국에 나와 인강 녹화를 하고 간다고 했다. 화학과 물리 두 과목. 물론 돈을 받고.
담임을 했던 제자 중 한 사람은 현재 모기업 대표로 일하고 있고, 미국에 와서 내게 연락해 두 차례 만난 적이 있다. 한 번은 가족들과 와서 내 아내도 함께 바다에 나가 놀기도 했었다. 다른 한 사람은 의사가 되어 있었다. 이 제자가 모임 전에 간단한 건강검진을 하자며 자기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강남역 5번 출구에서 내려 '연세휴가정의학의원'을 찾아갔다. 제자는 피검사를 통해 현재의 건강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며 피를 여러 통 뽑았다. 그리고 누우라 하더니 수액을 두통 달아 놓고 1시간 정도 주무시라고 했다. 뭔지도 모르고 좋다니까 그냥 누워있었다. 다른 제자들도 이미 옆방에 누워 있다고 했다.
1시간쯤 뒤 병원에서 나와 근처 한우고기 집으로 자리를 옮겨 배터지게 먹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가운데 압권은 내가 당시 담임했던 학급 학생들 전체를 보이스카우트에 가입시켰다는 것이었다. 하룻밤을 교실에서 자면서 야영도 했고, 60명 전체에게 노란 티셔츠를 입혀 학교 뒷산을 오르내리던 얘기를 하며 깔깔거렸다.
그때 우리 학급 학생들 가운데 검사가 2명, 변호사가 5명, 의사가 7명이라면서 그자리에서 전주지검에서 일하고 있는 제자에게 전화해서 통화도 했다. 내가 2017년 아버지 상을 당했을 때 조문왔던 제자다. 당시는 청주지검에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전주를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모 대학병원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제자를 바꿔주어 통화 했다. 세월이 바뀌긴 바뀐 모양이다. 제자들의 세상이 된 것이다.
제자는 건강검진을 위한 피검사 결과가 나오면 연락을 드리겠다며 그때 또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2주 뒤 전화가 왔다. 검사결과가 나왔는데 선생님 언제 편하실 때 오라고. 그래서 21일 가겠다고 하자 그럼 오후 5시까지 오라고 했다.
드디어 21일 잔뜩 긴장하고 병원으로 갔다. 이미 다른 제자들도 와서 또 수액을 맞고 있었다. 모든 건강상태가 완벽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1. 유전적으로 위암과 대장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면서 신경을 최대한 쓰라고 했다. 어머니가 이 병으로 수술을 했고, 5년간 치료를 받다가 69세에 세상을 뜨셨기에 신경쓰고 있노라고 했다. 사실 나는 해마다 내시경 검사를 하고 있다.
2. 예전에 B형 간염 백신을 맞은 것 같은데 항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며 다시 맞아야 하는데 오늘 일단 1차 접종을 하고 가라고 했다. 그리고 미국가서 두 번 정도 더 맞으면 항체가 형성될 것이라고 했다.
3. 비타민 D가 약간 부족하다고 나온다며 처방을 해줄테니 약방에 가서 사서 드시라고 했다. 아니 거의 날마다 햇볕에 나가 걷고 있는데 왜 부족하다고 나올까 물으니 태양을 쐬는 것이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비타민 D 절대량을 충족시켜주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제자들은 3인 이상 집회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식당에 갈 수 없으니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고르라고 했다. 첫째, 기업 대표로 있는 제자 사무실로 가서 음식을 시켜 먹는다. 둘째, 의사인 제자 집으로 가서 시켜먹는다.
어디가 가까운가 물으니 의사인 제자 집은 병원 바로 옆이라고 했다. 가까운 데로 가자고 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자리를 옮겼다. 3분쯤 뒤에 제자 집에 도착했다. 가족들이 반겨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아무도 없었다. 아들 둘이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어 엄마가 학원 근처에서 머물고 있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귀가하는 시각이 10시 30분이라고 했다. 오마이갓!
무엇을 먹을 것인가? 또 선택을 나보고 하란다. 회, 고기, 장어, 양식 등등..... 그날이 복날이라 낮에 고3때 짝쿵을 만나 탕을 한 그릇 했기에 이번에는 장어를 먹자고했다. 그리고 멕시칸 식당에 쉽게 먹을 수 있는 타코와 샐러드도 시켰다.
그리고 이번에는 술을 고를 차례, 낮에 소맥을 거하게 했기에 가볍게 와인으로 하자고 했다. 와인을 마시며 장어, 타코를 맛나게 먹었다. 솔직히 타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나는 한 젓가락도 그리 뻣지는 않았다. 장어는 정말 맛있었다.
술을 어지간히 먹었을 때 제자들에게 팔굽혀펴기 20회를 시켰다. 어릴 때로 돌아가 열심히 한다. 나도 했다. 지들보다 내가 더 잘한다고 했다. 나야 매일 하는 사람이고. 지들은 30년 만에 하는거고. ㅎㅎㅎ.
와인을 두어 병 따고 졸음과 싸우고 있을 때-나는 9시면 취침에 들어야 한다- 정확하게 10시 30분이 조금 지났을 때, 피로에 지친 두 아이와 엄마가 나타났다. 아이들도 엄마도 피로에 쩔어 있었다. 아,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미국이 천국이구나. 아이들에게도 엄마들에게도. 당연히 아빠들에게도.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용돈을 쥐어 주고 집을 나섰다. 기업 대표로 있는 제자가 근처 호텔에 묵고 있는 미국에서 온 선생님을 먼저 내려주고 나를 집까지 모셔다 주고 갔다. 참고로 운전을 위해 이 친구는 술을 마시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혀두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