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남산 걷기

Cmaker 2021. 6. 4. 20:09

   5월 28일(금) 친구와 남산 길을 걸었다. 한국에 올 때마다 친구와 북한산을 걸었었다. 그날도 북한산을 걸을 계획이었으나 친구가 당일 아침 남산을 걷자고 했다. 마침 충무로에서 점심 약속이 있었는데 참 잘되었다. 하느님은 언제나 내 편이시다.

   점심 먹고 부지런히 전철을 두어 번 갈아타고 정릉까지 갈 생각이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부지런을 떨지 않아도 되어 마음 편히 점심식사를 마치고 만나기로 한 한강진역 1번 출구로 갔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서울에서 다녔고, 대학 졸업후 1년 6개월 의정부에 근무한 것을 제외하고 교사 생활 16년을 서울에서 근무했다. 심지어 대학은 남산에 있는 학교에 다녔음에도 남산에 오른 기억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남산에 오른 것이라고는 초등학교 때 당시 남산 입구에 있던 드라마 센터에서 우리 반 친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화랑관창이라는 연극을 보러 왔던 것이 전부다. 그래서 더 신이 났다. 친구는 전철 6호선 한강진역 1번 출구에서 만나자고 했다. 친구의 안내로 근처에 있는 용산 국제 학교를 끼고 돌아 남산길로 접어 들었다. 남산은 초입부터 서울 타워까지 그리고 내려오는 전 구간이 말끔하고 깨끗했다. 그 어디에도 휴지 한 조각 버려져 있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하고 걸었다. 친구는 숲속으로 접어들면서 마스크를 벗었다. 나도 따라 벗었다. 사실 나는 2차 접종까지 마친 사람이다. 게다가 미국에서 한국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이고 14박 15일 격리생활까지 한 사람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나타나면 나는 마스크를 다시 썼다. 그러나 친구는 태연하게 마스크를 벗고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친구가 잠시 주춤하더니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타를 켰다. 담배를 태우면서 걷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으나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그 뒤에 좀 떨어져서 걸을 뿐이었다. 혹시라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 지 궁금했고 그와 내가 일행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친구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는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 걷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서 담배 피워도 되냐교? 친구는 안 되는데 그냥 피운다면서 계속 피웠다. 맞은 편에서 사람이 오면 연기가 나오는 것이 정면에서 보이지 않도록 담배 들은 손을 자기 뒤쪽으로  하지만 냄새는 그들을 자극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갔다. 다행히 친구는 얼마 가지 않아 담배를 끄고 꽁초를 손에 들고 걸었다. 친구는 과연 꽁초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계속 지켜보았다. 친구는 남산 서울타워 근처에 가서 휴지통에 버렸다.

 

   나는 가급적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산다. 그런 한도 내에서 하고 싶은 것 하며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 인생을 즐기되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남에게도 잘해주자. 나를 희생까지는 못하겠고, 힘자라는 데까지 도와주자. 굳이 남에게 못되게 굴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남이 잘못된 행동을 할 때는 왠만하면, 즉 내게 어느 정도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냥 눈감고 지나치는 편이다. 

 

   친구가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되는 장소에서 담배피는 것을 보고 난 어떻게 했는가. 만일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담배를 피고 걷고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나의 평소 태도대로 친구에게 무어라고 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더라도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는 타워 꼭대기까지 올라가지 않고 전망대에서 사방을 둘러 보았다. 참 깨끗하고 멋지게 잘 해놓았다. 친구가 저녁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하나는 고기전을 잘하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도가니탕을 잘하는 집인데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충무로로 내려가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독립문역에서 내리면 된다고 했다. 내려 오는 길은 계단이 많았다. 친구는 계단이 없는 길로 가려면 한참 돌아야 하기 때문에 빠른 길을 택했다고 했다. 한참 내려오는 도중에 친구가 또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참지 못하겠던 모양이다. 아까와 같이 담배든 손을 자기 몸 뒤로 하고 피우며 내려가는데 이번에는 뒤에서 오는 사람이 그의 손에 들린 담배를 보았다. 그 사람은 우리를 지나쳐서 조금 가다가 다시 돌아와 친구에게 한 마디 했다.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 곳이니까 담배를 끄시라고.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을 똑바로 쳐다 보고 있었다. 나는 뒤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며 긴장했다. 만일 심하게 다투거나 물리적인 충돌이 생기면 나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할 것인가. 긴장감이 감돌았다.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그사람을 쳐다 보았다. 그러자 그 사람은 고개를 돌리고 오던 길을 계속 갔다. 내가 말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그냥 가는데 그 사람은 용기가 있는 사람인데. 친구가 말했다. 내가 잘못한 것이지. 친구는 그러면서도 몇 모금 더 들이 마시고, 꽁초가 다 되어서야 불을 끄고 꽁초를 들고 걸었다. 이번에는 어디다 버릴 것인가 지켜 보았다. 한참 내려오다가 보니 친구 손에 들렸던 꽁초는 어디론가 버려지고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충무로역에서 전철을 타고 독립문에서 내려 근처의 도가니탕 잘하는 집에서 소주 각 1병에 도가니탕을 한 그릇 씩 먹었다. 친구는 아흔 다섯 살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데- 같은 집은 아니고 아버지는 아래층, 본인은 위층에 살고 있다. 친구는 아버지 식사를 챙겨드리고 있다고 했다. 워낙 건강하셔서 음식도 잘 드시고 잔 병도 없으신데 기력이 없으셔서 걷기를 싫어하신단다. 그 아버지께 드리고 자기도 한 그릇 더 먹겠다고 두 그릇을 사갖고 가겠다며 나도 두 그릇을 사주겠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는데도 막무가내다. 내가 안 먹으면 딸과 사위라도 갖다주라는 것이다.

 

   도가니탕은 한 그릇에 12,000원이다. 우리가 각각 한 그릇 씩 먹었으니 24,000원에 친구가 2인분 주문을 했으니 또 24,000원, 거기다 나까지 2인분 추가하면 또 24,000원, 72,000원이다. 거기다 우리는 소주도 각 1병씩 마셨다. 거이 집 소주 값이 싸서 좋다고 하는데 한 병에 3,000원이다. 서울 시내 소주 3,000원 받는 집이 없는데 이 집은 계속 3,000원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아무튼 두 병이니까 6,000원, 친구가 돈을 너무 많이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다 하게 하는 것도 없는 백수인줄 알고 있는데 어찌 친구에게 큰 돈을 쓰게 한단 말인가. 내가 돈을 내려고 했다. 그러나 친구는 심하게 화를 내면서 어떻게 내가 사면 안 되냐고 했다. 오마이갓, 그래서 기껏 생각해낸 것이 나는 해장국을 갖고 가겠다고 했다. 해장국은 한 그릇에 6,000원이다. 다만 얼마라도 줄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12,000은 절약 된 것이 아닌가. 

 

   신나게 걷고 식사까지 잘 대접 받고 거기다 내일 아침 먹을 해장국까지 안겨 줬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딸에게 친구가 사준 해장국을 건네 주었다. 다음날 아침, 너무 맛있다고 했다. 해장국 갖고 오길 정말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