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aker 2019. 8. 3. 09:07

   아침 출근길이었다. 누군가 내 옆차선에 차를 대더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피차 수년 간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았던 중고 동창생이었다. 창을 열고 말했다. "야 오랜만이다. 잘 지내냐?" "응, 잘 지내지." 어디 가는 중이냐고 물으니 어머니 댁에 들렸다가 출근할 거라고 했다. 신호가 바뀌었다. 후에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갈 길을 재촉했다.  


   회사에 도착해서 대충 할 일을 마치고 친구에게 전화했다. 친구의 어머니는 올해 87세인데 거동을 잘 못하신다고했다. 양로병원에 들어가기를 거부해 아파트에 혼자 살고 계시다고 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들려 어머니가 하루 동안 드실 음식을 준비해 놓고 출근한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니 대형 한인마켓 정육부에서 일한다고 했다. 오후 1시에 출근해서 오후 9시 퇴근이라고 했다. 언제 만나자며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친구가 그럼 내일 만나자고 했다. 자기는 목요일이 쉬는 날이라면서. 저녁에 만날까 점심에 만날까 하다가 점심에 만나자고 했다. 오랜만에 낮술도 한 잔 할 겸. 나는 낮술을 참 좋아한다. 비치활어라는 동네 횟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180이 넘는 키에 학창시절 운동선수였던 친구는 꽤 몸관리를 잘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얼굴에 주름도 별로 없고 피부도 고왔다. 50대 초반으로 보였다. 회 한 접시를 시키고 소주를 두 병 시켰다. 친구는 안주도 별로 먹지 않으면서 소주를 물마시듯이 들이켰다. 거참 잘도 마신다. 이제 그만 마셔도 괜찮겠냐고 하니 아직 안주가 많이 남았는데 그럴 수 있냐며 한 병만 더 시키자고 했다. 세 병 가운데 내가 반 병, 친구가 두 병 반을 마셨다. 그러면서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단지 한 말을 계속 반복해서 되풀이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친구가 무서운 말을 했다. 언젠가 친구들과 모였을 때, 내가 자기에게 우리가 뭐 그렇게 친한 사이냐고 하면서 선을 긋더라는 것이었다. 자기는 나랑 친하고 싶은데 그렇게 선을 그어버리니까 연락도 하지 못했고, 만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고 얘기할 이유도 없고 정말 내가 그랬나 보다. 사과를 하면서 친구에게 물었다. "내가 술이 취했었냐?" 취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날 술을 많이 마셨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언젠가 한 번은 우리가 친구들 앞에서 언성을 높여서 다툰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세한 것들을 기억해내면서 이야기 했다. 가만히 듣다보니 희미하게 생각이 난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무언가로 다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어릴 적 사용하던 거친욕설을 내뱉으면서 친구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나 싶다. 


   무조건 사과했다. 난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그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럴 수 있다. 나의 거친 성격과 난폭한 언행을 상상할 수 있다. 


   술자리를 끝내려는데 생선구이와 매운탕 등의 음식이 더 남았다고 했다. 모두 싸달라고 해서 친구보고 갖고 가라고 했다. 운전을 할 거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아니 소주 두 병 반을 마시고 어떻게 운전을 한단 말인가. 커피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를 마시며 술 좀 깬 다음에 가자고 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나도 그와 관련한 십여 년 전의 옛일이 떠올랐다. 혼자 사는 그를 위해 중신을 선 적이 있었다. 지인이 아는 분이라며 현재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인데 혼인할 분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자기 명의로 된 집도 있고, 경력이 있는 간호사이기 때문에 수입도 꽤 된다고 했다. 친구에게 물으니 좋다고 했다. 그래서 상대쪽에다가 친구가 만나자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날과 장소를 정한 다음에 친구에게 연락했었다. 친구는 그날 나간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만나기로 한 당일 아침에 내게 전화했다. 자기가 아직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오마이갓, 그래서 약속을 취소했던 기억이 났다. 


   이야기를 꺼내자 친구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가능하냐면서 결혼할 분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기억나지 않는단 말인가. 본인의 혼인과 관련된 중대사가.


   친구는 계속 한 얘기를 되풀이 하고 있었다. 자기 군대 친구들과 만나는데 나를 특별히 초대하겠다는 얘기를 열 번도 넘게 했다. 같은 군대도 아니고 게다가 나는 방위 출신이라며 내가 왜 가야되냐니까 자기가 초대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했다. ㅎㅎㅎㅎㅎㅎ. 술이 취했다. 


   12시에 만나서 소주 세 병을 마시고 커피집에서 한 말을 계속 되풀이 해서 듣다 보니까 어느덧 4시 30분이 되었다. 친구와 다음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친구는 3주 후에 자기 군대 친구들하고 만나는 날 초대하겠다며 손을 흔들며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