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서
11월 말 제자 C군이 운영하는 택배회사에 갔다. 한국 사는 큰 딸과 손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냥 우체국에서 소포로 우송해도 되나 기왕이면 C군의 사업에 한 푼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 동안 한국에 지인들에게 보내는 물건때문에 몇 차례 이용한 바 있다.
제자는 물건을 한 박스로 보내는 것보다 세 박스 정도로 나눠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손주 넷과 사위, 딸, 그리고 사돈내외 분과 시집 안 간 사돈 처녀 것까지 챙겨 넣다 보니 제법 부피가 커 보였다. 특히 음식이 들은 것은 철저히 확인하는 경향이 있어 음식은 따로 보내는 것이 좋다고 했다. 무슨 음식이 있는가 물으니 초콜렛이 몇 박스 있다고 했다. 사돈 어른들 자시라고 초콜렛을 넣은 것이 생각났다. 하와이에서만 나는 열매가 들어간 초콜렛을 아내가 사서 넣었다.
모든 물건이 들어갈 박스를 그 자리에서 제작해서 만들고 각 박스마다 들어가는 물품의 목록과 주소 등이 새겨진 스티커를 뽑아 박스에 붙히는 것으로 보낼 준비를 마치는데 불과 3분에서 5분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일을 마치고 제자는 커피를 대령시켰다. 둘이 앉아 믹스 커피를 마시며 한담을 나눴다. 그러다가 건강 얘기가 나왔다. 내가 1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래킹을 하고 돌아온 후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제자는 수영을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아, 그 생각을 못했다. 수영. 미국에 처음오던 해 1993년, 미국에 온 몇일 뒤에 DMV에 가서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한 뒤 종이로 된 임시 면허증을 받자마자 체육관에 등록하고 매일 수영하러 다녔었다. 하루에도 두 세 번씩 가서 운동도 하고 특히 수영을 즐겼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단 말인가. 바로 수영장이 있는 헬즈클럽으로 갔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다닌다는 그 곳에 등록을 하고 수영장을 보니 실외에 있었다. 오마이갓, 겨울철에는 추워서 안 될 것 같았다. 아무리 캘리포니아가 따뜻하다고는 하지만 겨울에는 제법 춥다. 사우나만 하고 나왔다.
그리고 집 가까이에 있는 24피트니스에 갔다. 여기는 몇 해 전에 2년짜리 회원권을 사서 등록했었다. 그러나 2년 동안 서너 번이나 갔을까? 다시 등록했다. 그리고 수영을 그날 시작했다. 하루에 왕복 열 번을 하기로 했다. 25야드의 길이를 10번 왕복이니까 500야드를 수영하는 것이다. 1야드가 0.9144미터니까 500야드면 457.2미터가 된다.
수영장에는 부속 시설로 자쿠지가 있고, 스팀 사우나와 건조 사우나가 있다. 한 달 정도 지나서 보니 한국 사람들도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근처에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한인들이 건강에 관심이 많아 체육관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수영장에서 아줌마들의 수다를 자주 보다보니 이런 건 좀 아니다 싶은 장면들을 가끔 목격하게 된다. 바로 어제 일이다. 수영장은 세 개의 트랙으로 나뉘어 있어 각 트랙마다 줄로 구분해 놓았다. 그런데 그 한 트렉 안에서 세 아줌마가 나란히 서서 걸으며 수다를 떠는데 장난이 아니다. 온 수영장이 떠나갈 정도로 크게 얘기하고 웃고 박수치고 마치 자기네 집 수영장에서 얘기하는 듯 했다. 자기집이라도 이웃집에서 신경거슬릴 정도로 크게 떠들고 있었다. 뭐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그것 또한 꼴불견이라는 생각이 들어 입을 다물고 수영을 하자니 짜증이 났다. 그러나 팔 하나 저을 때마다 발과 다리를 흔들 때마다 정성을 들이고 집중하다보니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과히 거슬리지 않았다. 수영을 마치고 사우나에 들어가 앉아서는 신경이 많이 쓰였다. 수영장에는 사람이 그 세 사람과 나밖에 없었지만 사우나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불편할 것이다.
장소와 시간을 얘기하는 것으로 보아 어디에 갔다가 벌어진 일들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가능한한 아줌마들과 마주 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자쿠치에 들어가 있는데 아줌마 셋이 분홍색 슬리퍼를 벗어 나란히 줄맞혀 놓고 탕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힐끔힐끔 곁눈질로 나를 가끔 쳐다보면서 그들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들리는 얘기를 안 들으려고 애쓰면서 따뜻한 탕속에서 물안마를 즐기며 있는데 한 아줌마가 옷을 다 입은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언니들 안녕하셨냐고 묻는다. 운동하기 전에 언니들께 인사하러 왔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이번 토요일 아시지요. 하면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아마 가장 나중에 나타난 사람의 집에서 집들이를 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난 잡채를 해갈게. 아니 무슨 잡채를 해요.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일인데. 그냥 간단한 거 해와요. 나는 나물이나 좀 무쳐갈게요. 옆에 있는 사람은 의식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이야기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어떤 아저씨가 자쿠지에서 영어로 수영장 안이 찌렁찌렁 울릴 정도로 크게 얘기하고 있었다. 역시 한국 아저씨였다. 옆에는 멕시칸 아저씨들 몇 사람이 있었고 미국인도 있었다. 아마 그들과 수영장에서 만나 얘기하며 지내는 사이 같이 보였다. 조용히 얘기해도 좋은데 왜 그렇게 크게 떠드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평소에 왕복 열번을 하는데 다섯 번만 하고 돌아왔다.
사람이 짐승들과 다른 점이 공중도덕을 지킬 줄 아는 것이라면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여럿이 함께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어서는 안 된다. 비단 수영장에서 뿐만 아니라 그 어디에서든지 타인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혹시 나는 이런 짓을 해서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적은 없는지 되돌아 보면서 정말 조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