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우영 선생님
고 함우영 선생님
2008년 6월,
고 3때 담임이신 함우영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동창회 사이트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내가 만난 선생님 모든 분들이 훌륭한 분들이었지만
특히 함 선생님은 내 인생에 커다란 가르침을 주신 분이었습니다.
나 역시 고등학교 선생을 하면서(1976년부터 1993년까지)
17년간을 선생님을 닮으려고 애쓰며 생활하였습니다.
특히 졸업식날(1972년 1월 21일) 우리 3학년 9반 교실에서 하신 말씀은
나 역시 3학년 담임을 하면서 내 고3때 담임 선생님께서 졸업식날 하신 말씀이라고
하면서 똑 같은 어조와 말투를 흉내내곤 했었습니다.
무덤 속에 들어가는 날까지 공부하라는 말씀,
" 고등학교를 졸업한다고 공부가 끝난 것이 아니다.
또, 대학을 졸업했다고 공부가 끝난 것이냐?
그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공부하는 것이다.
무덤 속에 들어가는 날까지 공부하는 것이다. "
고3이 되어 처음 대면하던 날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숙제를 주셨습니다.
30년 후의 나, 인생의 목표,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라는 숙제
난 내 생각을 옮겨 적었습니다.
200자 원고지 20장이상을 채우라 하셨기에 채워서 제출했습니다.
해군사관학교에 가서 해군 제독이 되고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대통령하는데
해군사관학교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 어떻겠냐고 썼던가?
아무튼 해군사관학교에 가겠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내 글을 기억하고 계시다가
4월인가 5월에 공군사관학교 견학하는 학생들 속에 나를 추천해서
보내 주셨습니다.
학생회 간부 두서너명과 함께 학교 대표로 공군사관학교를 견학하고
대구까지 비행기를 타고 내려가 101전투 비행단을 견학하고 다시 공군사관학교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처음 비행기를 타보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내가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내가 담임한 학급 학생들의 첫번째 숙제로
내주었습니다. 30년후의 나라는 제목으로 200자 원고지 20장 이상 써서 내라는 것이
내 첫번째 숙제였습니다.
후에는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1학년 학생들의 첫 과제로 주었습니다.
그 원고를 담임교사들이 읽고 학생들 지도에 참조하고 원고지는 보관하였다가
졸업식날 나눠 주도록하였습니다.
해군사관학교로 떠나기 전 날
안암동 자택으로 찾아갔을 때, 선생님께서는
간밤에 드신 약주로 몹시 취해 계셨습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시고 앉아서는 자꾸 옆으로 쓰러지시면서도 바로 앉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황급히 큰 절을 드리고 내일 사관학교로 떠난다고 인사드렸습니다.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해군사관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올라와 선생님께 인사드
리러 가니 재수하지 말고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어떠냐 하시어
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은 선생님께서 정해 주셨고
과는 내가 선택하였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선생님을 따로 찾아 뵙지 못하다가-우리 졸업과 함께 선생님께서
도 교직을 떠나셨지요-
1980년대말 내가 가르쳤던 제자가 결혼식하는 에식장 계단에서 만나
뵙는데 선생님께서도 늦으셨는지 급히 가시고 나도 급히 가는 바람에
긴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었습니다.
종종 친구들을 통해 선생님 소식은 전해 듣고 있었으나 이렇게 갑작스레 선생님께서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접하니 몸도 마음도 어쩌지 못하겠습니다.
말로만 존경한다고 ....
내 존경하는 선생님 중에 이런 분이 있다고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자주 얘기했었는데......
그냥 말로만 그치고.....
찾아 뵌다 찾아 뵌다 말만 앞세우면서 어영부영 33년의 세월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뒤늦게 후회해 봐도 때는 늦었지요.
선생님께 늦게나마 때늦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선생님! 편히 가십시요.
선생님 말씀대로 무덥 속에 들어가는 날까지 공부하는 자세로 살아가겠습니다.
졸업 사진(엘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