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

해후[邂逅]

Cmaker 2018. 5. 24. 03:18


   고등학교 선배이면서 대학 선배이기도 한 분과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A 선배 얘기가 나왔다. 얘기를 듣는 동안 잊고 있었던 A 선배와의 일이 떠올랐다. A 선배는 나보다 9년 선배이다.

 

   2001년 아니면 2002년으로 기억한다. 선배들의 요청으로 LA지역 대학 동창회장 직을 맡기로 했다. 함께 일할 동문들에게 임원을 맡아 달라 부탁하고 어느 정도 조직이 되었을 때, K 선배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임원진 모두를 자기 집에서 대접하겠다는 것이었다. K 선배는 나보다 11년 선배다.

 

   K 선배의 어머니와 나의 외할머니가 숙명여고 동창이었다. K 선배는 어렸을 적에 외삼촌하고 어울린 적이 있다면서 만날 때마다 외할머니와 외삼촌 안부를 묻곤 했다. K 선배와 나는 자연히 서로 가깝다고 느끼는 사이가 되었다.

   때문에 내가 동창회장을 맡았다니까 격려도 해주면서 동창회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 초대한 것이기에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임원들에게도 알렸다.

 

   그때 A 선배가 전화를 했다. K 선배 댁에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니까 동창회에 협조도 잘 안하는 사람인데 오란다고 무조건 가냐면서 가지 말라고 했다. 난 가겠다고 했다. A 선배는 임원들에게도 전화해서 가지 말라고 했다. A 선배의 압력으로 참석여부를 확인하는데 몇 몇 사람들이 가지 못하겠다고 했.

 

   A 선배 회사로 찾아갔다. 마침 몇 몇 동문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외쳤다. “ 야 이 XX 놈아 너 평생 대학 동창회장이나 해쳐먹어라. 난 안 한다.”

 

   그러자 선배들이 난리가 났다. 전화가 빗발쳤고, 찾아도 오고. 몇 몇 선배들의 압력에 못 이겨 결국 동창회장을 맡았고, 예정대로 K 선배 댁에 방문해서 재미나게 놀다 왔다. 물론 A 선배의 영향력이 미치는 임원들-돈을 빌려 쓰고 있거나 사업상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K 선배 댁 모임에는 불참했다.

 

   나는 동창회장을 하면서 A 선배에게 도움을 받지 않았다. A 선배도 단 한 번도 동창회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둘에 관한 벼라별 소문이 다 돌았다. 그러나 신경쓰지 않았다. 본래 회장 임기가 1년 인데 2년을 했다. 그리고 후배에게 동창회장직을 넘기고 나도 동창회 활동에 뜸하게 되었다. 2004년 지금하고 있는 사업을 새로 시작했고 아이들도 어려서 여러 가지 활동으로 분주했기 때문이다.

 

   약 17년가량 만나지 않고 살았던 선배 얘기를 듣게 되었으니 감개가 무량했다. 둘 사이가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꽤 자주 어울리던 선배였기에 가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A 선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선배에게 혹시 A 선배의 전화번호가 있느냐고 물었다. 갖고 있다고 했다.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전화했다.

 

   A 선배는 반가워했다.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린 419() 만났다. 다른 동문들도 세 사람이 함께 했다. 거하게 먹고 마셨다. 선배는 술을 끊었다고 했다. 한 잔도 들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그 집에서 제일 비싼 정종을 병째로 시켜 다 비웠다.

 

   옛이야기를 나누던 중, 17년 전에 있었던 ‘K 선배 댁 방문에 관한 일이 화제가 되었다. A 선배도 잊고 있었다면서 자기가 K 선배하고 나쁜 사이가 아닌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K 선배와 만난 것이 언젠가 회상해 보았다. K 선배는 가끔 스포츠 카를 타고 회사로 찾아와서 점심도 함께 하기도 하고 따로 만나기도 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연락이 끊어졌다. 적어도 7~8년은 넘은 것 같았다.

 

   A 선배가 당신이 K 선배와 이웃에 사는 분과 연락이 닿는다며 따로 만남을 주선하겠다고 했다.

 

   지난 513() 어머니날, 선배들과 만났다. K 선배는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걸음을 똑바로 걸을 수가 없어 지팡이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일주일에 3일을 투석을 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다며 건강을 주의하라고 했다. 귀도 잘 들리지 않는지 조그만 소리로 얘기하면 잘 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몇 차례 강조해서 말했다. “여자 조심하라고.”

 

   A 선배는 자기가 왜 그때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K 선배에게 사과했다.  K 선배는 전혀 기억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