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체투지 五體投地
五體投地
두 발을 조금 벌리고 선다. 두 손 끝은 붙이고 손바닥은 연봉우리처럼 벌려 합장한다. 합장한 두 손을 허리 아래로 내려 다시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합장한 손 식지로 이마, 턱, 가슴을 차례로 가볍게 짚는다. 허리와 무릎을 굽혀 두 손바닥을 땅에 댄 후 무릎을 꿇는다. 두 팔을 어깨 넓이로 벌려 미끄러지듯 땅에 엎드리되 양 팔꿈치, 이마, 양 무릎이 땅에 닿게 한다.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이마를 가볍게 땅에 댄다. 팔굼치는 땅에 붙인 채 두 손을 합장해 머리 위로 든다. 양손을 바닥에 대고 일어나 선 채로 두 손을 합장한다. 오체투지(五體投地)의 과정이다.
중국 티베트 자치구의 정치와 경제, 교육, 문화의 중심지인 라싸시에 있는 조캉사원(Jokhang Temple, 大昭寺) 앞은 언제나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라싸시는 1965년 신설된 중국 티베트 자치구의 청사 소재지이다.
중국은 1950년 10월 티베트를 침공하여 점령한 후 1951년 5월 강제 합병하였다. 이후 티베트인들은 그들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독립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지만 번번히 중국의 탄압으로 실패를 맛보고 있다.
라싸 시내 중심부에 있는 조캉사원은 중국과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조캉사원은 641년부터 3년여에 걸쳐 티베트 왕조 제 33대 왕인 송첸 감포 왕에 의해 건축됐다. 조캉사원은 현존하는 티벳의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당시 티베트 왕조의 힘은 매우 강력해 당나라와 네팔에서 공주를 티베트 왕국의 왕비로 바칠 정도였다고 한다.
송첸 감포 왕은 네팔의 공주 브리쿠티와 당나라 태종의 조카 문성공주를 아내로 맞이했다. 이들을 위해 각각 조캉사원과 라모체사원(Ramache, 小昭寺)을 건립한다. 라모체사원은 본래 문성공주의 뜻에 따라 중국 양식의 사원으로 건설됐으나 화재로 인해 소실되고 티벳 양식의 3층 사원으로 재건됐다.
문성공주는 티베트로 시집오면서 석가모니 불상을 가지고 와 처음에는 라모체사원에 봉안했으나 후일 조캉사원으로 옮겨졌다. 이 불상은 티베트에 봉안된 첫 불상으로 12세가량의 어린 석가모니 부처 모습을 하고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이를 조워(jowo)라고 불렀으며, 조워 부처님이 봉안된 건물을 ‘조워 부처님을 모신 집(캉, khang)’이란 의미로 ‘조캉’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 조워 석가모니 불상은 조캉 사원 내부의 정중앙에 위치한 법당에 모셔져 있다. 불상의 크기는 1.5미터에 불과하지만 불상 앞에는 언제나 티베트 순례자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주워 불상을 모신 법당 왼쪽에는 손첸 감포와 문성공주, 브리쿠니공주를 모신 법당도 있다.
이런 연유로 오체투지에 나선 사람들은 조캉사원을 종착지로 여긴다. 그들은 각자 사는 지역에 따라 오체투지를 하며 눈 덮인 산을 넘기도 하고 돌길을 지나기도 한다. 그렇게 오체투지하며 지나온 거리는 수백에서 수천 km에 달한다. 그 기간이 수년에 이르기 경우도 있다. 그러고 보니 손과 무릎 등에 보호대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몸이 성할 리가 없다. 차림새도 멀쩡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무엇을 위해 몸을 던져 기도를 하는 것일까?
오체투지의 기원은 자신을 한없이 낮추면서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큰절을 올리며 상대방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고대 인도의 예법에서 찾는다. 머리·팔·가슴·배·다리 오체를 땅에 닿도록 엎드려 부처나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接足禮)에서 유래된 오체투지는 자신을 낮추어 몸과 마음에 있는 교만을 떨쳐 버리고 하심(下心)의 의미를 되새기는 티베트인들의 오랜 기도법이다.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어 전생의 악업을 끊고 현세에 지은 죄를 참회하기 위한 고행의 과정, 오체투지의 목적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체투지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향한 절규와도 같다.
그럼에도 오체투지를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이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주장이 옳든 그르든 간에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저항의 도구로 오체투지를 행하는 것은 낮춤이라는 본래의 의미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것임에 분명하다. 또 자신을 향한 참회가 아닌 사회를 향한 분노와 투쟁이라는 점에서 오체투지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가기 위에 라싸에 잠시 머물고 있다.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은 소리 내어 말하거나 옆을 돌아보지 않았다. 사람 소리라고는 관광객들의 수군거림뿐이었다.
낮춤은 그렇게 실천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