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Las Vegas

Cmaker 2017. 12. 3. 03:48


   어릴 적에 라스베가스를 생각하면 화려한 불빛과 현란한 몸짓이 떠올랐다. 영화속의 라스베가스가 나의 전부였으니까. 가보기 전까지는 알 도리가 없지 않은가?


   드디어 1993년 미국 이주하던 해 친구들과 어울려서 다. 한 친구가 블랙잭을 한다고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태우면서 수영복 차림의 아가씨들이 가져다 주는 위스키를 거푸 들이키며 받은 패를 눈을 찡그리며 들여다 보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져온 돈을 다 잃고 크레딧 카드로 머신에서 돈을 뺄 때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저 다 잃고 친구는 내게 $500달러를 빌려 달라고 했다. 미국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돈이 있는 줄 빤히 아는데 안 빌려줄 수도 없었다. 친구는 그 돈 마저 잃었고 아직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친구는 소식조차 없다. 


   한 동안 라스베가스를 잊고 살았다. 


   1999년 다시 가게 되었다. 비디오 테이프 홀세일을 할 때였다. 일년에 한 번씩 열리는 쇼에 A라는 직원과 함께 갔다. A는 자신이 운영하던 업체를 내게 판 사람, 즉 당시 내가 운영하는 업체의 전 주인이었다. 나보다 적어도 6~7살은 더 위였으며 그 업체를 인수하면서 그 분도 함께 일하기를 내가 원했기 때문에 함께 일하고 있었다.  


   라스베가스 쇼에 간다고 하니까 자기도 함께 가도 되겠냐고 따라 나섰다. 그리고 호텔측에 전화해서 방을 공짜로 잡았다. 자신이 의류사업을 할 때 라스베가스를 자주 갔었으며 그때 인연으로 전화만 하면 호텔 방을 공짜로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가는 길에 엄청 비가 내렸다. 단 한 시도 윈도우 블러쉬를 쉬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졌다. 일을 좀 일찍 마치고 서둘러 떠났지만 깊은 밤 쏟아지는 빗속에 라스베가스로 향하는 길은 그리 편치 않았다. 그래도 둘이라 다행이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주로 그의 화려했던 과거 이야기- 나누며 가다보니 휘양찬란한 불빛이 손짓하고 있었다.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A는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나는 죽은 듯이 골아 떨어져서 잤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A는 보이지 않았다. 식당에서 거하게 아침을 먹고 한 바퀴 돌아보니 A는 밤을 꼬박 새워 지친 눈으로 패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쇼에 가야 할 시간이라고 하자 마지 못해 엉덩이를 들었다. 체구도 작은 분이 엉덩이는 어찌나 무거운지.


   주로 포르노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쇼장에는 유명 포르노 배우들이 사인을 해주기도 하고 방문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수많은 포르노 영화사들이 자사의 테이프를 팔기 위해 각종 기념품도 나눠주며 판촉을 하고 있었다. 잠시 걷다 보니 A가 없어졌다. 혹시 관심있는 업체 부스에서 딜을 하고 있는가 해서 유심히 부스들을 들여다 보았으나 그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회사와 거래하고 있는 비디어 스토어들에서 잘 나갈 만한 영화가 있을까 혼자 여유있게 찬찬히 둘러보았다. 워낙 방대한 공간에 수 백 개가 넘는 업체들이 펼쳐 있어 한 바퀴 돌고나니 진이 빠지고 허기도 졌다. 서너 시간은 족히 지났을 거다. 그러나 A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혼자 숙소로 돌아와 혹시 여기 있는가 겜블링하는 곳을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여전히 작은 체구를 움크리고 어깨도 피지 않은 채 피곤한 눈을 하고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젯밤을 꼬박 새우지 않았는가? 점심은 커녕 아침 식사도 제대로 했을 리 없다. 점심이나 먹자고 했다. 식사도 다 공짜아닌가. 호텔측에서 준 쿠폰만 내밀면 되니까. A는 마지 못해 일어났다. 적당히 식사를 하더니 또 내빼듯이 가버렸다.  


   다시 쇼장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A는 눈에 촛불을 키고 블랙잭에 올인하고 있었다. 나보다 나이나 어리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나이도 훨씬 위인 분에게 함부로 말하기도 그렇고 혼자 침대에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다가 잠도 오지 않고 해서 다시 쇼장으로 갔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몇 개 업체에 영화들을 주문하고 저녁식사를 위해 호텔로 돌아왔다. 그는 여전히 겜블에 열중하고 있었다. 저녁 먹자는 말에 혼자가서 먹으라고 손짓으로 말했다. 식사하고 이제 가야 할 시간이라고 하니 혼자 들고 오면 그때 일어서겠다고 했다.


   좀 더 앉아 있겠다는 그는 빈털털이가 되어서야 일어섰다. 오는 길에 그에게 얼마나 잃었냐고 하니까 쓴웃음을 지으며 얼마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조수석에 앉아 코를 골고 잤다. 떠나서부터 도착할 때까지.


   라스베가스는 또 다시 기억 저편의 도시가 되었다.


   아들이 지역 농구팀에서 운동을 하게 되어 2006년부터 일 년에 한 번씩 농구경기를 위해 라스베가스를 찾게 되었다. 이때는 농구경기를 마친 후에 아들의 눈높이에 맞춰 써커스 써커스 호텔에 있는 놀이 동산에 가서 놀다 오거나 수영장에서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학부모들끼리 담소를 나누다 왔다. 그러다가 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학교 농구팀에서 활약하게 되어 지역 농구팀에서 빠지게 되면서 라스베가스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2017년 11월 24일, 추수감사절 다음날 라스베가스로 향했다. 친구의 초대를 받았다. 숙식이 해결되는데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베가스로 패달을 밟았다.


   가는 길에 Barstowe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울렛에서 쇼핑도 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고 했던가? 사진 공짜란다. 한 번에 셋 컷을


In & Out Burger를 점심으로


 숙소에 도착하니 잠시후에 친구 부부도 도착했다. 숙소에서 바라다 본 전경

 


공항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나 보다. 비행기들이 자주 날아 오르고 있었다.



   25일은 Death Vally를 찾았었고 26일 아침 일찍 떠나려고 했으나 시내 구경이라도 하고 떠나겠다는 친구를 따라 시내 한 바퀴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