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주년 광복절을 보내며
출근 길, 빗방울이 떨어졌다. 차창에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제법 방울이 굵어졌다. 회사에 도착하니 검은 구름이 하늘을 제법 덮고 있어 비가 금새 그칠 것 같지는 않았다. 계단을 올라 이층에 막 발을 디디려는 순간 사무실에서 담배 동지 셋이 우루루 몰려 나오고 있었다. 아침 담배를 태우려 흡연지역(재털이가 있는 곳)으로 몰려 가는 중이었다. 내게도 같이 가자고 한 동지가 손짓을 하길래 오늘은 아니라고 하자 막무가내로 같이 가자고 붙잡는다. 거참 한 번 혼자 담배피우기 심심하다며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가서 오랜 만에 한 대 피운 적이 있는데 그때를 생각하고 하는 소릴게다. 거참 친구 잘 사귀어야 하는데.....
그 친구가 담배를 한 대씩 나눠주었다. 가만히 보니 한국 담배였다. 미국 담배가 한 갑에 7달러 내지 8달러 정도로 워낙 비싸니까 담배 값이 싼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한국 담배를 사다가 피우거나, 한인 마켓에서 사다 피우는 것이리라. 한인들이 한국에 갔다 오면서 여러 갑 사온 것을 마켓에다 약간의 구전을 남기고 팔면 한인 마켓에서 조금 이문을 얹어 팔고 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정식으로 수입해서 팔 수 없으니까 이런 일종의 밀수품을 파는 것이다.
두 사람도 최근에 담배를 줄이기 위해 노력중이었다. 담배로부터의 해방,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일제로부터의 독립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거족적인 일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를 혼흡의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내 건강을 버리고 한 대씩 빨기로 한 것이다. 쉽게 말해 친구 때문에 담배를 피우게 된 상황이다. 뭐 어차피 피는 것, 폐에 연기가 확 들어가도록 깊게 빨아 마신다. 몇 모금 빠니 골이 팽 돈다. 빙글빙글, 이 맛에 담배 피우는 거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마구 늘어 놓으며 잠깐 사이에 모두 어질어질 도는 세상을 만든다.
흡연실에서 바라다 본 세상
창 밖에는 비오고요
나 태어나기도 전인 72년 전 오늘을 생각하며 밖으로 나갔다. 주차장에 무궁화는 빗속에도 활짝 웃고 있었다.
비오는 날은 월남국수의 날, 내근하는 직원들과 점심 시간에 월남국수 먹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정작 점심 시간이 되자 비는 그쳤고 하늘은 파랗고, 뭉게 구름만 하늘을 뒤 덮고 있다. 한국의 장마철 비갠 뒤의 맑음.그래도 월남국수집으로 우루루 몰려가 각자 자기 기호에 맞춰서 국수를 시켜 먹는다. 신나게 먹고 회사로 돌아와 사무실로 올라가지 않고 72년 전의 만세 소리를 들으며 근처를 한 바퀴 돌아 오기로 한다.
출발
월마트 주차장으로 들어서는데 입구에 떠돌이 고양이들을 위한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헐벗고 굶주린 고양이들을 위해 동네 사람들이 준비해 놓은 것이리라. 참, 살맛나는 세상이다. 남을 위한, 그것도 사람이 아닌 짐승을 위한 따뜻한 배려, 그저 감사할 뿐이다.
대형 쇼핑몰이다. 그러나 다 죽어가고 있었다. 비즈니스들이 모두 망해 나가고, 문을 닫았다. 3년 전 쯤에 월마트가 들어왔다. 그러면서 몰 전체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물론 값비싼 것들을 사려고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아니다. 주민들이 그리 잘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니까. 영화관도 얼마 전까지 1달러였다. 최근에는 7달러 50센트로 가격이 올랐다. 물론 단 한 번도 이곳에서 영화를 본 적은 없다.
쇼핑몰 끝이 Brookhurst 길로 이어진다. 그 길 바닥에 라디오를 틀어 놓고 한 남자가 앉아 있다. 지난 번에도 거기 앉아 그러고 있었다. 하이! 인사한다. 그 친구도 인사를 받으며 환하게 웃는다. 뭐하고 있냐? 물으니 라디오 듣는다고 한다. 거참 괜히 물었네. 그래 즐거운 하루 만들어. 오케이.너도.
큰 길가에 핀 꽃들은 어딘지 아름다움이 덜한 것 같다. 왜 동네 좁은 길에 핀 꽃이 더 아름답게 보일까? 아, 그래 산길에서 본 야생화들이 더 아름다웠다. 왜 그럴까?
드디어 한 바퀴 돌아왔다. 아, 2시에 약속이 있다. 얼른 땀을 좀 식혀야 한다. 땀투성이로 손님을 만날 수는 없다.
정확한 시각에 손님들이 도착했다. 한 분의 얘기를 주로 듣는다. 재밌다. 한인 사회의 각가지 소식을 듣는다. 어느덧 4시를 지나고 있다. 손님에게 전화가 왔다. 광복절 기념식해야 하는데 언제 오냐고 묻는 모양이다. 그제야 서로 본론을 얘기하고 오늘 미팅을 마무리 한다. 이 분은 언제나 서론은 두 시간, 본론은 3분이다. 결국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방의 기쁨을 맛본다. 두 분은 기념식 참석차 떠나고 나는 나홀로 광복을 기념한다. 무궁화 꽃을 바라보면서
오는 가을에 할 한인 축제를 준비하는 분이다. 아리랑 축제 재단의 정철승 회장과 이성수 이사
이렇게 광복절, 하루가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