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親年 2
은영은 집에만 돌아오면 노래를 불렀다. 본래 노래를 엄청나게 못했던 은영이 요즈음은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이 바로 이 노래방 기계 덕분이다.
아는 노래,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던 노래, 잘 모르는 노래 가리지 않고 마구 눌러 놓고 고래 고래 소리지르며 노래를 부른다. 물론 한 두잔 걸친 후이다.
처음에는 온 식구가 둘러 앉아 불렀다. 병일이 부르고 어머니도 부르고 딸아이도 부르고 은영도 부르고 돌아가면서 불렀다. 이렇게 라스베가스에서 얻어온 전리품을 온 식구가 즐겼다. 그러나 두어 달 지나면서부터 이도 시들해졌다.
생각해 봐라. 매일 저녁 온 식구가 ‘소리지르며 노래 부르기’ 그거 참 지겨운 거다. 장모와 사위가, 딸과 어머니가, 아빠와 딸이,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 앉아 매일 저녁 노래 부른다. 두어 달도 참 오래한 거다.
모두 지겨워 했다. 결국 은영만 남았다. 대형 스크린에 바다도 나오고 설악산, 지리산도 나오며 멋진 배우와 가수들도 나온다. 그리고 어느 구석에 가사가 나타난다. 가락에 맞춰 적당히 가사를 읊조리며 소리를 지른다.
노래방 기계는 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항상 첫 음절을 강하게 하면 높은 점수가 틀림없다. 아무리 노래를 잘하는 사람도 소리를 작게 내면 높은 점수를 얻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라스베가스에 다녀 온 후에 나타난 부작용치고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은영은 라스베가스에 가고 싶었다. 매일 매일 라스베가스에 가고 싶었다. 아니 그 기게소리가 그리웠다. 덜덜덜덜, 다다다닫, 앵애애앵이, 은영은 거의 미쳐가고 있었다.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일도 하기 싫고 병일이 필 때 장난으로 한 두 모금 빨던 담배를 언제부턴가 사서 피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 갑 사면 한 달 이상 그냥 있었는데 이제는 시간 날 때마다 담배를 핀다. 어쩌다 한 두 대 피던 은영이 이제는 가게에서 일하다가도 피고 싶었다. 그 날도 담배 피는 다른 종업원들과 주방 뒤로 나와 담배를 피고 있었다.
“이젠 제법 세련되게 피는데. 담배는 폼이 중요하다구.”
“왜, 내 폼이 달라졌어?”
“그럼, 예전처럼 연필 잡듯이 잡으면 보기 흉하지. 꽁초 주워 피는 것 같고”
엄지와 검지로 연필 잡듯이 잡지 말고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고 빠는 게 멋지다며 함께 일하는 동료 웨이츄레스인 미스 김이 얘기했다. 여기서는 모두 미스다. 혼인여부,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 미스다.
미스 김은 골초다. 몸에서 담배냄새가 날 정도니까 아주 심한 골초다. 골초와 함께 생활하다 보면 모두 골초가 된다.
이제는 은영도 손가락 사이에 담배 냄새가 밸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 껌을 씹어도 입안의 담배 냄새를 감추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폼도 중요하지만 담배는 뿜어내는 맛에 피는거야.”
은영이 연기를 하늘로 힘차게 내뱉으며 말했다. 미스 김도 맞장구를 친다.
“물론 그렇지, 연기를 뿜어내면서 가슴 속에 숨어있는 나쁜 것들을 모두 한 번에 토해내는 거야.”
은영은 정말 답답한 가슴을 털어내고 싶었다. 연기를 힘차게 뱉어 내면서 말했다.
“난 매일 밤 라스베가스에 가는 꿈을 꿔.”
“그럼 한번 다녀오지 그래? 그리고 라스베가스까지 갈 필요도 없어. 여기서 한 시간 내지 두 시간만 내려가면 카지노가 있어.”
“엉? 그럼 일 끝나고 갔다 와도 되잖아.”
“그렇지. 9시에 일 끝내고 떠나서 한 서너 시간 놀다 오면 네 다섯시에는 집에 돌아 올 수가 있지.”
“그럼, 한 네 다섯시간 자고 일 나갈 수 있겠네.”
“미스 김, 오늘 저녁 우리 갔다 오자.”
“괜찮겠어? 신랑이 기다리잖아.”
“전화하지 뭐, 자기 집에서 자기랑 얘기하다 자고 간다고……”
은영은 미스 김이 우울증에 빠져 있어 위로한다며 미스 김네 집에서 밤을 보낸 적이 몇차례 있었다. 그 때마다 병일은 우울증에는 약이 따로 없고 밤낮 없이 얘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가장 좋은 약이라며 잘 살펴주라고 했다.
조금 가깝기는 하지만 페창가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부담스러우니까 조금 더 가자고 하면서 미스 김은 팔라로 간다고 했다. 가는 자동차 안에서 은영은 집에 전화를 걸었다.
병일은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 고단했지만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스 김의 우울증이 심각하게 도져서 누군가가 보살펴 주지 않으면 위험할 것 같아 함께 얘기하면서 있겠다고 병일에게 말했다. 병일은 은영의 친구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며 좋은 친구가 곁에 있는 미스 김은 꼭 이겨낼 것이라고 하면서 미스 김을 잘 살펴주라고 했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가 병일을 바꿔주기 전에 한 마디 한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기로 했다.
“야, 이 미친년아, 지금이 몇신데 집으로 빨리 안 기어들어오고 전화질이냐? 또, 착한 신랑, 뭐라고 홀리려고 하냐?”
어머니는 별로 톤도 안 높히고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친정 어머니가 시어머니보다 더 하다.
팔라의 카지노는 라스베가스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곳으로 팔라 인디안 보호구역 안에 있다. 우선 라스베가스보다 훨씬 거리가 가깝다. 또, 가는 길이 사막의 한 가운데를 뚫고 가야 하는 라스베가스에 비해 5번 프리웨이로 내려 가다가 76번 동쪽으로 갈아 타고 가는 길이 그럴 듯 하다. 구불구불 산 길을 가기도 하고 거의 도착할 무렵에는 우측에 제법 커다란 호수도 가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라스베가스보다 더 편안한 마음을 조성해 준다. 집에서 불과 1시간내지 1시간 30분 거리에 있으니까 집안에 갑작스런 일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아도 쉽게 갈 수 있다. 사실 가까운 곳으로 따지자면 페창가가 더 가깝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기 때문에 부담스럽고 팔라가 아주 적합한 장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