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엔젤레스에 내리는 눈 6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행사에 들려 한국행 왕복 티켓을 구입했다. 그
리고 마켓에 들려 소주 다섯병에 갈비도 십파운드 샀다. 집에 들어서니 직장에서이제 막 돌아온 수지가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갈비 좀 사왔어요. 소주도 사오고. 오늘 저녁 한 잔 합시다.”
“왠 일에요? 좋은 일 있어요?”
“좋은 일은 요. 그냥 먹고 싶어서 조금 사왔어요.”
“제가 된장 찌개도 끓이고 밥도 하고 좋아하시는 겉절이도 좀 무칠테니까 뒷마당에서 상추하고 고추 좀 따서 씻어 주실래요?”
“그러지요. 갈비 구우면서 상추하고 고추도 준비할게요. 참 앤디는 어디 갔어요?”
“예, 제 사촌하고 나갔어요. 내일이 토요일이니까 사촌 집에서 자고 올 모양이에요.”
챠코에 불을 붙이고 갈비를 먹기 좋게 구우며 소주를 따서 병째 들고 한
모금 마셨다. 부엌에서 내다 보고 있던 수지가 얼음을 맥주잔에 잔득 넣어 건내 주었다. 영일은 늘 소주에 얼음을 타서 마신다. 레몬이 있으면 레몬 즙도 섞어서 마신다. 수지도 생각이 났는지 잠시후에 대여섯개의 레몬을 냉장고에서 꺼내 쟁반에 담아 건낸다. 레몬 꼭지에 소주 뚜겅을 꼬옥 박아 돌린 후 소주 뚜겅 안에 박힌 레몬을 파내고 구멍이 뚫린 레몬을 얼음과 소주가 담긴 맥주잔에 대고 압력을 가한다. 레몬즙이 소주가 담긴 맥주잔에 떨어진다. 레몬즙이 너무 많이 들어가도 안되고 너무 적게 들어가도 안된다. 적당히 짜야 한다. 사람마다 제 입맛에 맞게 넣어야겠지만 영일은 소주를 소주 잔으로 맥주 잔에 두잔을 붓고 얼음을 적당히 넣은 후에 소주 잔으로 오분의 일 정도의 레몬 즙을 넣으면 적당한 맛이 난다. 갈비를 구우며 한 잔, 한 잔 마시다보니 소주 한 병을 다 마셨다. 갈비는 역시 양념 하지 않은 갈비가 더 맛있다.
“자, 준비가 다 됐는데 안에서 드실래요? 밖에서 드실래요?”
“날씨도 그렇고 밖에서 먹지요.”
상추와 고추에 갈비를 씹으며 밥도 한 술씩 먹으며 소주를 마셨다. 본래 술을 잘 안마시는 수지도 영일의 분위기에 휩쓸려 몇 잔인가를 마시고 있었다. 물론 담배를 연신 입에 물고서 음식보다 술 잔을 더 자주 들었다. 입안으로 빨아들였던 연기를 확 내뿜으면서 수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지요?”
“아니요. 정말 아무 일 없습니다. 제게 무슨 일이 있는 것 처럼 보이나요?”
“글쎄요. 평소와 뭔가 다른 것 같은데요.”
“그냥, 한 잔 마시고 싶었어요.”
“혹시 한국에 가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아직 계획이 없는데요.”
“예, 저 술 한잔 더 만들어 주세요. 오늘 오랜만에 취하고 싶네요.”
“그러세요. 수지씨는 아직 취하려면 멀었어요. 저는 벌써 취했걸랑요.”
소주 다섯병을 다 마시고도 둘은 더 마시고 싶었다. 수지가 냉장고에 있던 맥주와 먹다 남은 술들을 모두 모아서 들고 나왔다. 죠니워커 블랙 작은 거 반병, 맥주 다섯 캔, 음식만들 때 몇방울씩 떨어뜨리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정종까지 꺼내 마셨다. 집안으로 들어 설 때쯤 영일은 수지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지난 여러 달 동안 조심스럽게 행동하던 영일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영일을 대하는 수지도 어느새 말을 놓고 있었다.
“수지씨는 한국에 한 번 안 갈 작정인가요?” 했다가는
“수지야, 너 한국에 같이 한 번 가자.” 하기도 하고
“우리 대단하지 않냐? 한 방에서 열달 가까이 자면서도 손 한 번 잡지 않고”
“넌 나랑 하고 싶지 않냐?”
“네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폼 잡냐? 한 방에 갈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