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외출을 준비하는 동안 영일은 아내를 지켜 보았다. 속옷 바람에 화
장실을 다녀와서 화장대에 앉아 바르고 그리고 칠한다. 화장하지 않은 모습
이 더 예쁜데 아내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어쩌면 자신을 감추는 작업을
하는 지도 모르지.
‘딩동 딩동’
누가 이 시간에 벨을 누르지 생각하며 영일이 현관 문쪽으로 가면서 물었다.
“누구세요?”
“예, 저 파출부 아줌만데요.”
“예? 파출부 아줌마요?”
일단 문을 열기로 한다.
“오늘부터 이 집에서 일하기로 한 사람인데요.”
곱상하게 생긴 40대 초반의 여자가 고개 숙여 인사하면서 자신을 소개한다.
“효진이 엄마에요.”
“어, 여보, 내가 아직 말 안했지. 오늘부터 아줌마가 일주일에 두 번 와서 청소하고 빨래하기로 했어요.”
아내가 외출 준비를 끝내고 나오면서 말한다.
“여보, 아침 식사 안 하고 나갈 거야? 미역국 맛있게 끓여 놨는데.”
“먹고 나가면 늦을 거 같아. 지금쯤 나가야 약속 시간에 맞추겠어.”
아내는 커다란 가방, LA에서 변호사들이 끌고 다니는 것을 본 일이 있는 바
퀴 달린 가방을 한 손으로 끌고 다른 한 손에 예쁜 핸드백을 들고 집을 나
서면서 파출부 아줌마에게 말한다.
“방 네 개하고 화장실 두 개, 거실, 부엌 청소하시고 빨래만 하시면 돼요. 그 밖의 다른 일이 있으면 그때 그때 부탁할게요.”
“네, 사모님, 다녀오세요.”
영일은 쭈빗거리며 아내를 따라 나섰다. 엘레베이트 앞에서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뭣하러 돈들이고 파출부를 불러? 내가 집에 있으니까 청소하고 빨래는 할 수 있잖아.”
“아냐, 여보, 남들도 다 그렇게 하고 살아. 일주일에 두 번만 오니까 그리 많은 돈을 주지 않아도 돼. 참, 당신 돈 더 필요하지. ”
아내는 핸드백을 열어 수표를 서너장 내민다.
“여보, 어제 준 돈 아직 그대로 있어. 괜찮아.”
“그냥 넣어놔. 여보, 저 사람 청소하는데 불편하면 친구들이라도 만나든가, 아니면 부모님 찾아 뵈세요. 아직 인사도 안 드렸지요?”
“응, 내가 알아서 할게. 잘 다녀와.”
현관 문이 잠겼다. 벨을 누른다. 파출부 아줌마가 문을 열어 준다. 집으로
들어가 외출복으로 갈아 입고 집을 나선다. 파출부 아줌마가 나오면서 인사
한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예, 잘 부탁합니다.”
아무래도 몇일 더 있다가는 돌아 버릴 것 같다. 미국으로 돌아가자. 아내
는 나 없이도 아이들과 잘 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간이 되어 버렸다. 불과 이년 여 지나는 동안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아내는 돈을 많이 벌게 되어 변했고 아이들도 자신들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고 나만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게 변한 거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영일은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다이알을 돌렸다.
“비행기 스케쥴을 변경하고 싶은데요. 예, 한 주일 당기고 싶은데요. 몇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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